완전체증후군
아내는 치킨집에서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한다. 새벽 1시 넘어 집에 오기 때문에 두 딸은 맨날 엄마를 못 보고 잔다. 아이들 재우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프리랜서인 나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내가 출근한 뒤 두 딸을 도맡는다. 아이들은 싫든 좋든, 죽으나 사나 아빠와 함께 남은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작은딸 수인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맏딸 별아가 갓난아기 때부터 우리 가족은 이렇게 살았다.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평일에만 쉰다. 쉬는 날 몸도, 맘도 편히 못 쉬고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엄마의 빈자리를 하루에 다 채워 주고 싶어서다. 아이들도 엄마가 쉬는 날은 엄마 껌딱지로 변한다. 열두 살 별아는 이제 좀 덜하지만, 일곱 살 수인이는 한창이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쯤 아내가 쉬는 날을 골라 외출한다. 친구를 만나거나 조용한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온종일도 아니고 기껏해야 반나절쯤 되는 시간인데, 별아는 아빠가 가족과 떨어지는 것을 퍽이나 섭섭해한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엄마가 나가고, 엄마가 집에 있으면 아빠가 나가고…….”
별아가 버릇처럼 하는 이 말은 사실과 꽤 다르다. 엄마는 일하러 나가는 거고, 아빠는 진짜 한 달에 한두 번 나가는 거니까. 어쩌다 엄마도 쉬는 날 친구를 만날 때가 있지만, 그건 정말 서너 달에 한 번 꼴이니까. 엄마 역시 해질녘까지 밖에서 놀다오는 일은 결단코 없다.
별아가 아홉 살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날, 아내에게만 알리고 잠깐 시내 서점에 다녀왔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와 두 딸이 맞아주었다. 그런데 수인이와 별아의 낯빛이 판이하게 달랐다. 수인이 얼굴은 봄처럼 환한데, 별아 얼굴은 겨울처럼 어두웠다.
“별아야, 기분 안 좋아? 무슨 일 있었어?”
나의 물음에 별아는 저기압의 목소리로 동문서답했다.
“아빠, 어디 갔다 왔어?”
“응? 서점에, 일 때문에…….”
그때 느닷없이 별아가 눈물 소나기를 퍼부었다.
“왜? 왜 울어, 별아야?”
“나한테 말을 하고 갔어야지!”
별아는 바락 소리를 지르고는 서럽게 울었다. 당황한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날 뒤로 외출할 일이 생기면 꼬박꼬박 별아에게 보고했다. 그 보고는 지금도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다. 아빠의 보고를 들은 별아는 언제나 웃음으로 외출을 허락해준다. 쓴웃음이 섞인 웃음이긴 하지만.
친구랑 신나게 놀 때,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나들이 갈 때. 별아에게 언제 행복하냐고 물으면 이 두 가지를 꼽는다. 친구랑 놀 때는 내가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온 가족이 모여 놀 때는 별아의 얼굴에 예쁜 달빛이 어린다. 엄마 아빠의 ‘2교대’ 돌봄을 받는 아이에게 네 식구가 하나되는 시간은 최고로 즐거운 시간인 모양이다. 별아는 셋이, 그러니까 아빠나 엄마 중 한 사람이 빠진 채로 뭔가 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넷이 있을 때와 셋이 있을 때의 얼굴이 두 사람처럼 다르다.
네 식구가 언제나 함께하기를 바라는 별아의 마음을 ‘완전체증후군’이라 부르고 싶다. 별아에게 있어 완전체는 곧 행복이다.
딸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