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들들 볶는 아빠의 엉터리 심리학 1

변신성장욕구

by 작은별송이

*열두 살 별아, 일곱 살 수인. 두 딸과 씨름하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아빠의 이야기입니다. 글쓴이 마음대로 심리학적 관점을 들이댄 이 글은 정통 심리학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수인이 목욕을 마친 다음 로션을 발라 줄 차례였다. 아이를 눕힌 채 머리부터 발끝부터 마사지하듯 정성들여 바르고 있는데, 뜻밖의 질문이 날아왔다.


“아빠, 왜 아빠만 털이 있고 난 없어?”


수인이의 시선은 내 겨드랑이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 목욕시킬 때는 보통 런닝셔츠 바람이기에 겨드랑이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푸하하, 겨드랑이털?”

“이게 겨드랑이야?”


지적 성장이 느린 수인이는 일곱 살이지만 겨드랑이라는 명칭을 몰랐다.


“응. 너도 어른 되면 털 나. 엄마도 털 있어.”

“언니는?”

“언니는 아직 없어. 털이 나려면 나이를 좀 더 먹어야 돼.”


수인이는 뜻 모를 미소를 입에 물었다. 그러더니 정말 엉뚱한 말을 뱉으며 큭큭거렸다.


“나도 빨리 깃털 생겨서 하늘 날고 싶다.”


순간 ‘깃털’이 아니라 ‘겨털’이라 한 줄 알았다. 하지만 깃털이 맞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겨드랑이털을 방금 알게 된 녀석이 줄임말을 알 리 없고, 겨털로는 하늘을 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아빠도 하늘 못 나는데?”

“그냥.”


그냥이라. 못 날 줄 알지만 그냥 해본 말이란 뜻일까? 수인이는 진짜 깃털 같은 겨털로 비행하는 상상을 하는지 방긋방긋 웃었다. 나는 아이의 기분 좋은 상상을 굳이 깰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미소만 지어 주었다.


그날 밤 수인이의 말을 곱씹었다. 말 속에서 아이의 속마음을 찾아내려고 끙끙거렸다. 겨드랑이털에서 깃털을 연상한 녀석이 신통했지만, 신통함에 만족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자녀 양육에 필요한 메시지가 숨어 있는 것만 같았고, 아빠로서 당연히 그것을 캐내야 했다.

단순히 새처럼 날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어른의 겨드랑이털’과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어 평범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나는 실마리를 얻기 위해 수인이와 함께한 시간들을 곰곰 되새겨보았다. 불쑥, 한 가지 낱말이 새처럼 날아올랐다. 그 낱말은 바로 ‘성장’이다.


수인이는 언니 별아와 다섯 살 터울인지라 ‘찐’ 막내 취급을 받았다. 언니가 라면을 먹을 때 덜 자극적인 우동을 먹어야 했고, 언니가 밖에서 친구와 놀 때 집에서 엄마 아빠랑 놀아야 했다. 언니가 혼자 방을 쓰는 것엔 부러움을, 언니만 핸드폰이 있는 것엔 불만을 품었다. 언니도, 본인도 똑같은 어린이인데, 그 어린 언니와 해와 달처럼 또렷하게 구별되는 삶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느꼈다. 머리가 굵어질수록 그 스트레스가 커지는지 요즘 마음속 짓눌림을 내뿜는 말과 행동을 종종 했다. 단적인 예로, 언니에게 이런 참견을 한 적이 있었다. 언니가 안방에다 핸드폰을 충전시켜 놓고 자기 방에서 슬라임 놀이를 하고 있는데, 수인이가 쪼르르 가더니 엉뚱한 말을 던졌다.


“언니, 아직 충전 안 됐다.”


그 모습이 언뜻 귀여웠지만, 혼자 있고 싶은 언니를 의도적으로 훼방 놓는 모습으로 비쳤다. 충전기에 연결한 지 5분도 안 지난 때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언니는 짧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알고 있어.”


겨드랑이에 깃털을 달고 날고 싶은 수인이. 나는 새의 몸뚱이와 사람 얼굴을 하고 파다닥거리는 수인이를 상상하며 생각했다.


‘빨리 크고 싶은 모양이구나…….’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어서 어른처럼 자라기를 꿈꾸는 수인이의 마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변신성장욕구.’


단숨에 훅 자라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불가능을 아는 수인이는 변신을 통해서라도 성장을 이루고 싶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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