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사위 콤플렉스
남자라면 나이스가이(nice guy)로 사는 게 좋다. 그러면 세상이 밝아진다.
사위라면 나이스사위로 사는 게 좋다. 그러면 처가가 밝아지고, 아내 얼굴에 웃음꽃 피고, 본인 가정이 화목해진다. 나이스가이로 사는 것보다 장점이 둘이나 더 많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화 1>
“어머님, 딸 보면 좋으세요?”
“좋지.”
“맨날 싸우시면서, 하하하!”
“호호호!”
대화 2>
“어머님, 친목 모임 나가시는 거예요?”
“응.”
“혹시 저희 몰래 땅 보러 가시는 거 아니죠? 하하하!”
“사위, 장모도 땅 좀 있었으면 좋겠네.”
장모님과 내가 나눈 대화들이다. 단둘이 있을 때는 아니고, 아내도 함께 있을 때였다. 대화 1과 2, 둘 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가물가물하다. 대화 1의 시점은 별아를 낳기 전, 그러니까 결혼 4년차쯤인 듯하다. 대화 2의 시점은 별아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참 버르장머리 없는 사위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화가 아닐 수 없다. 딴에는 곰살맞게 굴려고 한 말인데, 너무 오버한 느낌이 든다. 새삼 장모님에게 감사하다. 두 번 다 웃음으로 넘겨주셨으니까. 아내에게도 감사하다. 아내 역시 웃기만 하고, 날 타박하지 않았으니까.
별아를 낳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장모님을 찾아뵈었다. 별아가 생기며 조금 뜸해지고, 수인이가 생기며 더 뜸해졌다. 지금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로 줄었다. 먹고살기 바쁘고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어서, 라는 핑계를 대며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장모님에게도, 아내에게도 죄송할 따름이다.
아내와 장모님은 가끔, 아니 자주 다퉜다. 전화로 다투고, 만나서 다투고, 다툰 다음 한동안 안 보기도 하고. 결혼 5년차까지는 이런 일이 수차례 되풀이됐다. 그 후 조금씩 줄어들었고, 결혼 15년차를 넘기고 있는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싸워도 가볍게 옥신각신하는 수준이고, 금방 화해한다. 자칫 아내와 장모님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싸움의 이유를 밝힐 수는 없고, 갖가지 이유로 싸웠다는 말로 넘어간다.
결혼 초기에는 장모님과 아내가 다툴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누구 편도 들기 곤란하고, 섣불리 중재에 나서기도 무엇해 그저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정말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나무토막으로 세월만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죽을 각오’로 ‘대화 1’을 시도했다. 물론 장모님과 아내가 한창 싸우는 중에 한 건 아니다. 싸우고 나서 화해했을 때 한 거다. 이 시도가 제법 먹혀들었다. 괜찮은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후 당돌한 농담을 시시때때로 던졌다. 그 한 예가 바로 ‘대화 2’다. 나의 농담들이 장모님과 아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좋았다. 농담을 하고 나면, 장모님과 한결 친해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지금에 와서 하나둘 톺아보면 장모님과 아내의 다툼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와 딸만이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사랑. 그 사랑을 장모님과 아내는 조금 과격하게 주고받았던 것 같다. 일흔을 향해 달려가는 장모님과 마흔을 훌쩍 넘긴 아내는 이제 그 사랑을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간다. 둘의 전화통화나 대화에서는 다정함이 물씬 풍긴다. 엄마와 딸은 나이 들면 친구가 된다더니, 둘은 정말 친구가 되었다. 그것도 단짝친구로 지내며 서로 배려하고, 위로하고, 편들어 준다.
나는 스스로에게 공치사를 한다. 장모님과 아내 사이가 도타워지고 따뜻해진 바탕에는 나의 선을 넘는 농담이 있었다고. 둘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 공을 강조하고 싶다. 나의 농담은 나이스사위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 노력은 통했다.
출판 관련 프리랜서로 살아온 시간이 11년에 이르렀다. 출판계 불황 탓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일감이 점점 줄고 있다. 다른 업계는 모르겠지만 출판계는 늙은 프리랜서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낮은 임금에 맘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젊은 프리랜서를 선호한다. 일감이 줄어 수입도 줄었다는 걸 장모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 몹시 걱정하신다.
“자네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정착해야지.”
장모님의 이 말씀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프리랜서는 냉정하게 말해 정착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아 늘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다. 대다수 프리랜서들의 사정이 비슷하다.
내가 수입이 줄면서 아내의 노동시간은 더 길어졌다. 장모님의 마음을 낱낱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딸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지셨을 거다. 아내는 몇 년 전부터 각종 여성질환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 질환들에서 피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장모님은 돈을 적게 버는 사위가 못마땅하실 수도 있다. 괜찮다. 내가 장모라도 그럴 테니까.
“어머님, 너무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하하하!”
시름 깊은 장모님 얼굴을 마주하며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의미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장모님은 웃었다. 곁에 있던 아내도 웃었다.
앞으로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나는 계속 버릇없는 농담을 던질 거다. 이건 고칠 수 없는 나만의 ‘나이스사위 콤플렉스’다. 누군가는 억지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겠으나 이 콤플렉스는 결코 나쁘지 않다. 장모님과 아내를 웃게 만드니까. 내가 웃음을 줄 수 있는 일은 농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