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 고생만 시키는 남편의 엉터리 심리학 8

김기사 증후군

by 작은별송이

“오늘은 피곤해서 운전 연습 못 하겠어.”

아내는 정말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내의 운전 솜씨가 얼른 늘었으면 하는 바람에 강행군을 하고 싶었지만 뜻을 굽혀야 했다. 어제 치킨집이 바빠서 새벽 2시에 돌아온 아내에게 무리를 시킬 수는 없었다.

요즘 아내는 나한테 운전을 배운다. 정확히는 주차 강습을 받고 있다. 수인이를 차로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아파트 주차장에서 아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빈 주차공간에 차를 대는 연습을 한다. 주차에 능숙해지면 도로에 나갈 예정이다. 부부 사이에 운전 강습은 금물이라지만, 나에게는 우리 부부는 잘해낼 거라는 신념이 있다.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성격을 믿는다. 아내 성격도 믿는다. 혹시나 내가 좀 나무라도 아내는 잘 참아 줄 거다. 정말로 잘 참아…… 주겠지?


주차 실습 두 달 동안은 다른 차가 없는 기둥 옆이나 벽면에만 주차를 했다. 한 단계 높여서 다른 차들 사이에 차를 집어넣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현실에서는 내 차만 댈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만나기 어려우니까.

어느 날 비교적 두 차 사이가 넉넉한 공간을 만났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은 뒤 아내에게 물었다.

“오늘은 저기다 대 보자. 자기 이젠 할 수 있을 거야.”


아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냐아냐. 아직은 안 돼!”


너무나 단호한 태도에 두 번 권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석 달이 넘어가는 지금도 아내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손사래친다. 여전히 벽면과 기둥 옆만 찾고 있다. 도로에 나갈 날은 까마득하다.


최근 고민이 생겼다.

‘아내가 운전 실력이 늘었을 때 혼자 운전을 하게 둬도 괜찮을까?’


이런 고민이 생긴 건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처리 방식 때문이다. 차량 블랙박스에 담긴 영상을 소재로 하는 방송을 누구나 한 번쯤을 보았을 법하다. 길을 건너는 어르신을 부축하거나 응급 환자를 도와주는 훈훈한 장면도 많지만, 교통사고를 해괴하게 처리해서 분노를 일으키는 장면도 꽤 많다.

나도 화가 났던 방송이 몇 개 있다. 혼자 자전거 타다 넘어진 할머니가 구호 조치를 해준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은 사건, 킥보드로 과속하다 넘어진 이십대 여성이 운전자가 안부를 물었음에도 뺑소니로 신고한 사건,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를 친 운전자에게 아이 부모가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한 사건. 이 세 가지 사건을 다룬 방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교통사고에서 잘잘못을 따질 때 보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는 있다. 문제는 사고 처리의 열쇠를 쥔 경찰이나 보험회사가 무성의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특히 차 대 사람 사고일 때 무조건 차의 잘못으로 모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가령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잘 지킨 상황에서 무단횡단자를 쳐도 경찰은 운전자를 가해자로 정한다. 보험회사는 일단 치료비를 물어주고 운전자에게 보험료 할증을 매긴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한민국에서는 법을 어긴 사람이 보호받고 법을 지킨 사람이 벌을 받는다"라는 한탄이 나온다.

어이없는 내용의 방송을 자주 보다 보니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기가 꺼려졌다. 내가 옆에 타고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혼자 운전하다 사고가 생겼을 경우 아내가 꿋꿋이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아내를 너무 낮잡아 보는 걸 수도 있다. 내 걱정 따위가 무색하게 아내는 당당하고 지혜롭게 사고를 처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삶은 힘겨워진다. 방송에도 정말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소송까지 벌이는 사람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치르는 고통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소송이 얼마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지 해본 사람은 알 거다.


고민 끝에 나는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일에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우선은 교통사고 처리 방식이 개선되는 일에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봤자 방송에 댓글 쓰는 게 전부지만, 댓글은 곧 여론이 될 수 있으므로 무익하지는 않을 거다.

개선의 그날까지는 충직하고 든든한 ‘김기사’가 되고자 한다. 흑기사는 못 되더라도 김기사가 되어 아내를 차로 편히 모실 작정이다. 나는 스스로 ‘김기사 증후군’에 걸리기로 한 거다. 내가 성이 김이라서 그런 거지 이 땅의 수많은 김씨들을 비하하려는 뜻은 없다.


“여보, 내가 몸에 탈이 나는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자기한테 운전을 권한 건데, 걱정 마. 나 아직 튼튼해. 운전 배우느라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이 김기사를 맘껏 부려먹어. 자긴 그럴 자격 있어. 내 아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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