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병인 페르소나
‘엄마 목에 좋은 음식’이란 제목의 문서 한 장을 냉장고에 붙였다. 갑상선암에 걸린 아내를 위한 먹거리와 먹을 때 주의사항을 정리한 문서다.
“아빠, 이거 왜 붙인 거야?”
낯선 내용의 문서에 별아가 호기심과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엄마가 목이 아프잖아.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말끝이 흐려졌다. 설핏 별아의 얼굴도 흐려졌다.
“엄마 수술하면 낫는 거지?”
“그럼그럼! 수술만 하면 돼. 걱정하지 마.”
나는 잽싸게 별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때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수인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엄마 수술해?”
‘수술’이란 낱말이 귀에 꽂힌 모양이다. 수인이는 얼마 전 어린이 유튜브 방송에서 수술에 관해 배웠다.
“응. 근데 간단한 수술이야. 금방 끝나.”
둘러대는데 괜스레 진땀이 났다. 별아도, 수인이도 엄마가 갑상선암에 걸린 줄 모른다. 그냥 목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수술해야 하고, 수술하면 싹 낫는 줄로 알고 있다.
갑상선암은 효자암이라고 불리듯 아내도 수술만으로 깨끗이 나을 것으로 기대가 됐다. 문제는 난소암마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받을 병원을 찾다가 난소암 의심 소견을 들었다. 갑상선암 수술도 급한 상황이라 부랴부랴 대학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난소암이면 대학병원에서 한날에 갑상선암 수술과 난소암 수술을 같이 받을 계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딸들에게 진실을 감춘 채 태연하기가 참 버거웠다. 나는 평소보다 더 다정하고 유쾌한 아빠인 척 가면을 써야 했다.
천만다행으로 난소암은 비켜 갔다. 난소에 달렸던 커다란 혹이 자연적으로 터졌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아내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갑상선암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코로나가 절정인 터라 보호자는 한 명만 입실이 가능했고, 병실에 한 번 들어오면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머물러야 했다. 병원 밖을 나가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아야만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별아와 수인이를 할머니댁에 맡기고, 나는 아내와 더불어 3박 4일간 병원살이에 들어갔다.
감사하게도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의사는 무리 안 하고 잘 쉬면 금방 회복할 거라 말했다. 나는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서 얼른 활기를 되찾아주겠다 마음먹었다. 아내를 간병하는 게 두 번째라 자신 있었다. 아내는 10년 전에도 자궁근종 복강경 수술을 받느라 2박 3일 입원했었고, 나는 병실에서 먹고 자며 아내를 보살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힘들었다. 열 살이나 더 먹은 나이 탓일까? 떨어져 있는 두 아이를 신경 쓰느라 정신적으로 피곤해서일까? 아무튼 첫 번째 간병에 비하면 몇 배 더 힘들었다. 아무래도 그때는 별아 낳기 전 우리 부부만 살던 때라 몸도 마음도 가뿐했던 건 사실이다.
“살살 일으켜 줘.”
“침대를 너무 높이 세웠잖아.”
“물 조금만 따르라니까.”
아내의 요구사항과 불만사항이 콜센터처럼 쏟아졌다. 나는 철저하게 교육받은 콜센터 직원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든 미소로 응대하고 솟아오르는 짜증을 꾹 참았다. 입원 기간이 3박 4일이라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4박 5일이었다면 제풀에 지쳐 쓰러졌을지 모른다. 5박 6일이었다면? 음…….
아내는 무사히, 건강하게 퇴원했다. 내 간병 덕분이라 생색내고 싶지만 솔직히 그건 아니고, 아내가 스스로 잘 이겨낸 덕분이다.
그 3박 4일을 되돌아보면 내가 한 가지 잘못한 게 있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돌보고자 달려들었다는 거다. ‘간병인’의 마음가짐으로 나섰다면 돌봄이 훨씬 수월했을 거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persona)를 써야 했다. 바로 간병인 페르소나. ‘부부’라는 두 글자를 넣어 ‘부부간병인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 쓰였던 가면이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이 개념을 자신의 이론에 적용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 특히 직업인들은 ‘나’를 숨기고 직업에 따른 가면을 쓴다. 의사는 의사의, 승무원은 승무원의, 콜센터 상담원은 콜센터 상담원의 가면을 철저하게 써야만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가면에 염증을 느끼고 ‘나’를 드러내려 하면 사회생활이 피곤해진다.
부부라면 일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배우자의 병바라지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 경험에 비추면 이때만큼은 페르소나가 필요한 것 같다. 간병인 페르소나를 단단히 써야만 본인이 편해진다. 아내가 다시는 병원 침대에 눕지 않기를 바라지만 또 그런 순간이 닥친다면 진짜 잘할 거다. 간병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