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육아 보상심리
“뛰지 마!”
거실에서 욕실로 달려가는 수인이를 보자 자동으로 이 말이 튀어나왔다. 뒤이어 한숨이 폭 새어나왔다.
‘또 뛰지 말라고 말했네.’
공동주택에 살아서 층간소음에 민감하다. 나는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도, 뛰려는 기색만 보여도 바로 제지한다. 문제는 제지법의 차이다. 아니, 어쩌면 차별일지도 모르겠다.
별아는 이제 뛰는 일이 아주 드물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핸드폰이 울릴 때 급한 마음에 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외에는 늘 걸어다닌다. 물론 지금 수인이만 할 때는 아무 때고, 아랑곳없이 뛰어다녔다. 그때 나는 별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걸어다니자.”
‘뛰지 마’라고 말하지 않은 건 금지의 지시를 내리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안을 제시하며 행동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게 정서에 좋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수인이에게는 ‘뛰지 마’라는 표현을 버릇처럼 쓰고 자빠졌다. ‘걸어다니자’라고 안 하고 번번이 금지의 지시를 내린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네다섯 살까지는 걷기 유도를 곧잘 했는데, 그 이후로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아빠에게 뛰지 말라며 제지를 당한 수인이는 움찔 놀라 멈춰 섰다. 그러고는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며 욕실로 들어갔다.
‘미안해.’
나는 쩨쩨하게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이어서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비꼬았다.
‘미안하다고 하면 뭐 하냐? 다음에 또 그럴 거면서.’
수인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별아를 키운 경험이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한 번 시행착오를 겪었으니까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웬걸, 내 자신감과 확신은 금방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뛰는 행동에 대한 제지부터가 그랬다. 애초 나는 수인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집에선 사뿐사뿐 걷자” 하고 타이를 계획이었다. 우습게도 그건 진짜 계획에만 그쳤다. 별아가 어렸을 땐 식탁에 밥을 흘려도 아홉 번 참고 열 번째에 화를 냈다. 하지만 수인이가 그러면 세 번밖에 못 참았다. 별아가 징징댈 땐 달랠 마음부터 품었는데, 수인이가 징징댈 땐 짜증부터 냈다. 나는 차별 끝판왕 아빠로 변해버린 거다.
나는 왜 변했을까? 무엇이 나를 나쁜 아빠로 변하게 했을까?
내가 변한 까닭은 내가 못난 탓이다. 나를 나쁜 아빠로 변하게 한 건 바로 나다.
아무래도 내 눈높이에서 아이의 잘못이라고 여기는 일을 두 번 보기가 싫었던 것 같다. 별아에서 딱 그치기를 바랐던 게 가려진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맏이가 저질렀던 잘못된 행동을 둘째에게서 또 보게 되었을 때 아빠로서 넉넉히 품어줄 줄 알았다. 인색하게 밀어낼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몰랐던 얼굴이 아빠인 나의 진짜 얼굴이었다. 수인이는 가엾게도 아빠의 짜증과 화를 뒤집어쓰면서 아빠의 거울이 되어준 거다.
나는 막연히 보상을 받기 원했던 게 아닐까 싶다. ‘1차육아 보상심리’가 작동했다고 해야 할까? 1차 때 맏이를 키우느라 힘들었던 걸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게 틀림없다. 이걸 진작 알았더라면 2차인 수인이에게 지금보다 '아주 조금은' 잘해 주었을 것 같은데……. 불현듯 등골이 오싹해진다. 혹시 그 보상을 수인이에게 받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어서.
나에게는 수인이가 ‘알아서 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바로 보상 심리가 아닐까?
아무튼 수인이를 키우면서 별아만 키울 때보다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배는 많아졌다. 수인이한테 미안한 점도 많지만, 별아한테 미안한 점 또한 많다. 수인이는 아빠한테 혼나면 언니한테 가서 울면서 안긴다. 별아는 언니답게 수인이를 달래며 다독인다. 그 모습이 아빠인 내게 무한 죄책감을 불러온다. 별아는 아빠에게 혼났을 때 울면서 안길 사람이, 토닥이며 안아 줄 엄마가 곁에 없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별아야, 아빠가 야단치고 화낼 때 많이 무서웠지? 혼자 감당하느라 얼마나 외로웠니?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서, 또 미안하구나.’
불안하다. 맨날 사과만 하는 사이 딸들이 쑥 자라날 것 같아서 말이다. 도대체 사랑은 언제 주려고 이러고 있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