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보복행동
“아빠, 그림자!”
수인이가 내 그림자를 밟으며 까르르 웃는다. 일곱 살이 되면서 새롭게 시작한 행동이다. 태권도장에 오고갈 때, 유치원 하원할 때, 동네 산책할 때 기회만 있으면 그림자밟기를 즐긴다. 오늘도 놀이터에서 놀고 오던 길에 어김없이 아빠의 그림자를 놀잇감으로 삼은 거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내 가슴이 뜨끔하다. 그림자를 밟히면서 여느 때처럼 허허허 웃긴 했지만 웃음 속에 설핏 당혹감이 스민다.
‘한 대 맞은 기분이네.’
수인이가 하필 내 머리를 밟아서다. 아무리 그림자라지만, 머리를 밟히는 느낌은 이상야릇했다. 반짝, 이틀 전 기억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저 녀석 혹시 복수를……?’
그제 밤 사건이 터졌었다. 한글 공부를 하다가 내가 수인이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쥔 사건. ‘강아지’란 낱말을 열흘 넘게 배웠는데, ‘강슬지’라고 써서 너무너무 속상했다. ‘슬아’라는, 유치원 친구의 이름과 ‘강아지’가 뒤섞인 거다.
수인이는 학습 능력이 몹시 뒤떨어진다. 여섯 살 때까지는 학습 분위기만 만들면 울음을 터뜨려서 아예 공부를 안 시켰다. 일곱 살 먹고서 처음 공부다운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가 숫자를, 내가 글자를 맡았는데, 우리 부부는 수인이를 가르칠 때마다 한숨을 뭉게구름처럼 피워 올렸다. 두 달이 넘어도 1부터 10까지 익히지 못해서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나의 경우 걱정에 휩싸일 때마다 헬렌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였다. 고맙게도 수인이는 헬렌켈러처럼 부모의 가르침에 한 발 한 발 따라와 주었다. 문제는, 아내 말고 나의 문제는, 내가 설리번 선생님의 발끝도 못 따라 간다는 거였다. 사랑과 인내로 단단히 무장해도 그 무장을 스스로 풀어헤치기 일쑤였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것 역시 똑같은 행동이었다.
여하튼 내가 해서는 안 될 짓은 한 것은 틀림없다. 이 지면을 빌려 공식적으로 사과를 전한다.
“수인아, 미안해.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듬뿍 사랑받고 자라야 할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 미안해요.”
수인이의 아빠 그림자밟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딱히 머리를 표적으로 삼지는 않고 아무 데나 발끝 닿는 대로 밟는다. 어디를 밟히든 나는 맘씨 좋은 아빠처럼 허허허허허 웃는다. 솔직히 복수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더 밝게, 크게 웃는다. 그 웃음은 나만의 죄닦음이다. 사실 머리 움켜쥔 것 말고도 수인이한테 잘못한 게 참 많다. 속속들이 늘어놓고 싶지만, 그게 대하소설 분량이라서 어물쩍 넘어가련다.
물론 수인이가 의도적으로 복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녀석은 단지 새로운 놀이를 스스로 찾은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고 가벼이 넘기려 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 탁 걸린다. 사람은 힘들고 괴로울 때 분풀이도 하지만 놀이로써 벗어나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수인이의 무의식에도 그런 마음이 잠자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더구나 그 마음을 심어준 장본인이 아빠인 나이기에 더더더 울적하다.
수인이의 신나는 놀이를 ‘그림자놀이 보복행동’이라 표현하고 싶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수인이가 실컷 보복하면 좋겠다. 그 보복은 내게 뉘우침을 불러일으키므로 쓰지만 좋은 약이 된다.
“수인아, 아빠 그림자 맘껏 밟아라! 네 맘이 후련해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