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들들 볶는 아빠의 엉터리 심리학 9

사랑채움 콤플렉스

by 작은별송이

나는 별아가 밥숟가락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말했다.


“양치하고, ‘엄마 숙제’부터 하자.”


엄마 숙제란 엄마가 출근하기 전 정해준 수학문제집 풀이를 가리킨다.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는 별아는 엄마에게 짬짬이 수학을 배운다. 나한테는 국어와 영어를 배우고.


“푸우우…….”


별아는 큰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어서 느릿느릿 남은 밥을 먹고 있는 수인이를 보며 푸념하듯 말했다.


“내가 수인이였으면 좋겠다.”

“왜?”

“얜 공부 안 하니까.”


내가 픽 웃으며 말했다.


“너도 수인이만 할 땐 엄마 아빠가 공부 안 시켰어. 그리고 수인이 부러워할 거 없어. 얘도 초등학생 되면 너처럼 공부할 텐데, 뭘.”


별아는 그런 말은 위안이 안 된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욕실로 들어갔다. 언니가 양치하는 사이 밥을 다 먹은 수인이는 자동으로 거실로 가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나는 얼른 수인이에게 말했다.


“언니 양치하고 나오면, 너도 양치하고 텔레비전 보는 거야, 알았지?”

“텔레비전 많이 보고 양치하면 안 돼?”

“안 돼. 언니도 바로 양치하잖아.”


그때 언니가 욕실에서 나왔다. 수인이의 언니 별아는 동생에게 부러운 시선을 힐끔 던지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별아의 방문이 탁 닫히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기 싫을 땐 보통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나?’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공부를 안 하고 사는 줄 알았으니까.


‘별아가 수인이처럼 어려지고 싶다는 건 자궁회귀본능의 표현일까?’

별아는 열두 살 먹은 지금도 장롱이나 책상 밑에 숨는 행동을 종종 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자궁회귀본능에 따른 행동을 꾸준히 보이고 있는 거다.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별아가 가여웠다. 수학을 너무 어려워해서 학교생활의 즐거움마저 한 조각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수학 과목을 왜 그렇게 어렵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가여움에서 이어진 아픈 기억이 따끔 가슴을 찔렀다.


‘자주 혼나서 그런 걸까?’


아내도, 나도 공부를 가르치면서 별아에게 화를 자주 냈다. 미술, 피아노, 태권도를 다니는데 영어와 수학까지 다니면 아이가 너무 힘들 거라면서, 그래서 아이를 위해 몸소 가르치기로 했으면서 툭하면 못한다며 나무라는 거다.


‘별아는 사랑받고 싶은 거구나. 수인이처럼…….’


수인이는 엄마 아빠가 언니만큼 공부를 안 시키기 때문에 언니만큼 혼나지 않는다. 별아는 엄마 아빠에게 공부를 많이 배우기 때문에 자주 혼난다. 엄마 아빠에게 배우지 않는다면 별아도 야단맞을 일이 적을 거다.


형제자매 사이에서 맏이가 동생에게 느끼는 질투. 그 질투가 별아에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심하지 않다. 동생을 시샘하는 마음이 한 움큼이라면 감싸는 마음은 한 아름이다. 이렇게 대견하게 맏이 몫을 잘하고 있는 별아를 공부가 좀 달린다고 잡아댔으니, 얼마나 서러웠을까?

별아도 아직 어린이일 따름이다. 덜 혼나는 동생이 더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그 차별 사랑의 원인이 공부이므로 공부가 싫어지는 건 당연하다. 공부를 조금만 하는 동생을 향한 부러움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별아가 엄마 아빠를 미워한다 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어떻게 예뻐할 수 있겠는가.


별아는 ‘사랑채움 콤플렉스’에 걸렸다. 마음 상자에 엄마 아빠의 사랑을 가득 채우고 싶어 조바심을 내고 있다. 늘 차 있었던 그 상자에 빈 공간을 만든 건 엄마 아빠, 특히 아빠다. 엄마와 공부할 땐 아빠가 집에 있는데, 아빠와 공부할 땐 엄마가 일터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한테 꾸지람들은 별아는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었다.

아빠는 사랑채움 콜플렉스를 일으킨 바이러스다.


“별아야, 아빠가 미안해.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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