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들들 볶는 아빠의 엉터리 심리학 8

보호자 보호본능

by 작은별송이

‘보호자 보호본능’이란 용어를 만들어 보았다. 별아의 한마디가 아이디어를 던져주었다.

봄이 무르익어갈 무렵 나는 직업 가이드북 원고 쓰기에 매달려 있었다. 자료 수집할 게 굉장히 많고, 오류가 없는지 확인할 것도 산더미고, 집필 진도도 잘 안 나가서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마감일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워 걸핏하면 후아후아 한숨을 흘렸다. 한숨의 이유를 묻는 별아에게 나는 “아빠가 하는 일이 잘 안 돼서.”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하루는 방문을 연 채 컴퓨터로 정보 확인을 하던 중이었다. 내 방을 지나치던 별아가 슥 들어오더니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 일은 잘돼?”


뜻밖의 어른스러움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잘돼. 걱정 마.”


아빠를 걱정해주는 별아가 대견하기도, 고맙기도 해서 머리를 살살 어루만져 주었다. 별아가 얼굴에 미소를 그린 채 또 말했다.


“힘들면 쉬면서 해.”

“큭큭, 그래.”


별아가 방을 나간 뒤 “아빠, 일은 잘돼?”라는 별아의 질문을 찬찬히 곱씹었다. 그러자 문득 ‘보호자 보호본능’이란 신조어가 떠올랐다. 어린이인 자녀에게도 어른인 부모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미 세상에 이런 말이 떠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별아는 요즘 죽음을 의식한다. 열한 살 때 친구 엄마가 급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죽음을 떨쳐내지 못한다. 때문에 가끔 뜬금없이 이런 말들을 던진다.


“아빠, 죽으면 안 돼.”

“엄마 아빠 죽으면 어쩌지?”

“난 안 죽었으면 좋겠어.”


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그저 농담처럼 맞받는다.


“아빤 오래 살 거야.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오래 살아야 돼.”

“어쩌긴. 너는 더 행복하게 살아야지.”

“우린 천국에 갈 거니까 죽는다고 너무 슬퍼할 건 없어.”


별아는 희미하게 웃고 만다. 어차피 아빠에게 해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뚜렷한 해답이 없다는 걸 자기도 안다는 듯.


별아의 마음 상태를 기존 심리학에 초점을 맞춘다면 ‘분리 불안’ 정도로 볼 수 있을 거다. 더 깊이 들어가면 ‘자기 보호본능’과도 맥락이 닿는다고 생각된다. 별아의 가슴에서는 부모의 죽음으로 동생과 단둘이 남겨질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우러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빠, 일은 잘 돼?”라니. 별아는 본인도 힘든 처지에 어떻게 아빠 걱정까지 해주는 걸까? 이 걱정 또한 자기 보호본능의 일면일까? 아빠 일이 잘 안 되면 집안 살림이 어려워지고, 그러면 행복이 깨어질 수 있다. 별아는 행복이 깨어질 위기에서 본능적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혹시 자기 보호본능을 보호자 보호본능으로 승화한 것은 아닐까? 별아가 무의식적으로 보호자 보호본능을 돌파구로 선택했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엄마 아빠를 잃고 행복마저 잃는다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자신이 엄마 아빠를 보호하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직업 가이드북 원고를 쓰는 동안 별아는 몇 번 더 일은 잘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한번은 수인이가 옆에서 따라 했다.


“아빠, 일 잘되는 거야?”


한편 우스우면서도 괜히 짠하기도 해서 이렇게 대꾸했다.


“응, 잘돼. 돈 많이 벌어서 너희들 맛있는 거 많이 사줄 생각하니까 아주 잘돼.”


곧바로 두 딸은 기쁨의 비명을 질러댔다. 수인이는 그렇다 치고, 별아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아이다.

그건 그렇고, 진짜로 내가 하는 일이 좀 잘됐으면 좋겠다. 일이 잘돼서 두 딸한테 보호받지 않아도 될 만큼만 돈을 벌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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