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잘못 무마행동
이따금 집에서 삼겹살이나 목살을 구워먹는다. 그때마다 내가 빠짐없이 하는 행동이 있다. 두 딸에게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는 일이다. 처음엔 세 번씩 싸서 주었는데, 애들이 컸다는 핑계로 두 번, 아니 한 번으로 줄였다. 여하튼 꼭 한 번은 정성스레 상추쌈을 싸서 먹이는 의식을 치른다. 새끼 제비처럼, 어떨 땐 아기 돼지처럼 받아먹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상추쌈 1회’라는 규칙을 쭉 이어가다가 어느 날 일시적으로 ‘상추쌈 3회’로 규칙을 변경한 적이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었다. 핸드폰 게임만 하는 별아가, 손톱을 까뒤집어 피를 낸 수인이가 신경을 긁었다. 업무에 차질이 생겨 다소 가라앉은 상태였는데, 아이들이 때를 잘못 맞춘 거다.
아빠와 두 딸이 함께하는 저녁식사. 달걀프라이로 때우려다가 오후에 짜증 부린 게 괜히 찔려서 삼겹살을 구웠다.
나는 상추에 고기 한 점 얹고, 쌈장 찍어 바르고, 시금치 한 가닥까지 얹어 쌈을 완성했다.
“자, 수인이부터 줄게. ‘아’ 해 봐!”
나는 일부러 미소를 입에 가득 문 채 쌈을 내밀었다. 수인이는 해맑게 웃으며 입을 짝 벌렸다.
“다음은 언니!”
별아가 먹을 쌈에는 김치 한 조각까지 추가했다. 별아도 기분 좋게 풍성한 쌈을 받아먹었다.
한 번씩 번갈아서 차례차례 두 번씩 쌈을 싸주었다. 세 번째로 수인이에게 줄 쌈을 싸는데 불쑥 별아가 말했다.
“아빠, 내 건 안 싸도 돼. 내가 알아서 먹을게.”
“아냐, 괜찮아. 옛날엔 아빠가 세 번씩 싸서 줬잖아.”
“아빠도 먹어야지.”
그 말이 왠지 뭉클하게 다가왔다. 제법 컸다고 성장한 티가 나는 별아가 대견했다. 딸이 안겨준 뭉클함과 대견함은 별안간 부끄러움을 몰고 왔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체하면서 실은 내 잘못을 무마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세 번의 상추쌈은 짜증 낸 아빠를 잊어 달라는 무언의 당부가 담긴 뇌물이었던 거다.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쥐 잡듯 잡고, 무시하고, 외면했던 게 몇 번일까? 진심으로 사과를 건넨 건 또 몇 번일까? 둘 다 기억이 아련하다. 전자는 너무 많아서, 후자는 너무 적어서.
아이들에게 부모답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대부분 나는 잘못을 덮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평소 한 개만 주던 사탕을 두 개 준다든가,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늘려준다든가 하면서. 사과를 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았다.
그날도 사과를 못 했다. 그저 상추쌈 3회로 퉁쳤다.
이제야 뒤늦게 사과한다.
“별아야, 수인아, 미안해.”
잘못을 덮는 데 급급했던 나의 행동을 ‘부모잘못 무마행동’이라 정의한다. 그러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설마 나만 그러는 건 아니겠지?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러진 않겠지만 많은 부모들이 나처럼 행동할 거야. 애들 키우고 사는 게 뭐, 크게 다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