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 고생만 시키는 남편의 엉터리 심리학 2

인생 가로본능

by 작은별송이


어느 날 아내가 거실 바닥에 누우면서 말했다.


“아휴, 피곤해. 아빠들이 주말에 집에서 누워만 있으려고 하는 거, 정말 이해가 된다니까.”


두 딸의 등교와 등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침이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서 별아가 고학년인데도 등굣길에 동행한다.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수인이는 유치원 차량이 따로 없어서 내가 아내와 수인이를 차에 태워 데려간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푹 쓰러지는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그 모습이 한편 우습기도 했다. 피로를 풀어 주고 싶은 마음과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여보, 자긴 집에선 24시간 누워 있는 거 몰라? 난 자기가 서 있는 걸 본 적이 없어.”


아내가 아이처럼 까르르 웃었다. 내 말에 과장이 심하지만 꽤나 동의한다는 웃음이다.

아내는 집에 있을 때 틈만 나면 눕는다. 그럴 만하다. 발목 인대도 안 좋고 하지정맥류를 앓는데도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치킨집에서 꼬박 서서 일한다. 오전부터 출근 전까지는 아이들 챙기느라 쉬지 못한다. 하루하루 겹겹이 쌓이는 피로를 이겨낼 도리가 없으니 눕는 시간이 절박할 수밖에 없다.


“잠깐만 누워 있을게.”


어쩌면 아내가 집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눕는 아내는 이내 조용해지곤 한다. 빼꼼,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쪽잠에 빠져 있다. 늘 그러는 건 아니지만 열의 일곱은 이런 장면을 연출한다. 그 연출력이 빼어난 아내에게 나는 광고 카피를 빌려 이런 농담을 건넨 적이 있다.


“자긴 가로본능이 있어.”


진짜로 아내는 눕는 걸 좋아한다. ‘인생 가로본능’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큼. 누운 채 새우깡 먹으며 텔레비전 보는 게 취미일 정도니까 내 분석은 정확하다. 신혼 때는 그 모습이 참 낯설고 의아했다. 아기 낳기도 전이라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맛집도 찾아다니면 좋을 텐데, 내가 그렇게 하라고 등 떠밀어도 소극적이었다. 굳이 비율을 정한다면 외출 20퍼센트에 집에서 놀기 80퍼센트? 아내는 정말 타고난 집순이였다.


눕는 횟수로 따지자면 신혼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는 없다. 하지만 그 성격은 퍽 다르다. 지난날엔 놀고 싶어서 누운 거고, 요즘엔 쉬고 싶어서 눕는 거다. 기운이 펄펄했던 그땐 본인 의지로 누운 거고, 쇠잔해진 지금은 몸의 의지로 눕는 거다. 그래서 애처롭다. 힘겨운 일상에 누울 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아내를 보기가 미안하다. 막말로 내가 돈을 잘 번다면 적어도 아내의 노동시간만큼은 줄여줄 수 있을 텐데…….


누움은 누구에게나 달콤함을 주지 않을까 싶다. 땅과 하늘과 바다가 수평이라 사람 몸도 수평일 때 가장 안락하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철학적 견해와 상관없이 누우면 그저 편안한 게 사실이다. 아내는 그 달콤함과 편안함을 보다 좋아할 뿐이다. 이제는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찾아야만 하는 처지가 점점 되어가고 있지만.


아무튼 아내가 실컷 누워 지냈으면 좋겠다. 몸이 아파서, 장애가 있어서 도리 없이 누워 지내야만 하는 분들에게는 누움이 고역일지 모른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음껏 서기를, 걷기를 꿈꾸는 분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의지로 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기적인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내가 그 감사한 일을 한껏 누리기를 바란다.


“여보, 내 눈치 보지 말고 팍팍 누워. 내가 애들 더 놀아주고, 집안일 더 열심히 하면 돼. 돈 버느라 힘들어서 좀 눕자는데, 누가 뭐래? 자기는 ‘인생 가로본능’이 남들보다 좀 강한 편이지만, 괜찮아. 누울 집이 있고 누울 여건이 허락된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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