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생 티내기욕구
일주일에 한 번 대청소를 한다. 보통 아내가 쉬는 날이나 쉬기 하루 전날을 고른다. 대청소를 하는 사람은 나 혼자다. 아내가 동참하려 해도 일부러 내가 막는다. 한 2년 전부터 아내의 집 밖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더불어 피로도가 부쩍 높아지면서 나는 오롯이 홀로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다짐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대청소는 두 딸의 등교와 등원을 마친 뒤 바로 시작된다. 청소 도구는 딱 한 가지 물티슈뿐이다. 큰절하듯 앉아 구석구석, 빠득빠득 닦는다. 로봇청소기를 장만할 계획은 없다. 로봇처럼 정밀하게 청소할 능력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다만 힘은 꽤 든다. 집은 25평이라 크진 않지만 물티슈로만 청소하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장시간의 청소를 마치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 10분 정도는 큰대자로 누워 로봇청소기처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 변이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활개를 치던 무렵이었다. 수인이가 감염의 첫 테이프를 끊고, 이어서 별아와 내가 걸리고 말았다. 코로나와 무관하게 시곗바늘은 무심히 대청소 시간을 알렸고, 나는 평소보다 더 강도 높게 청소를 실시했다. 아내만은 코로나에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더 가열차게 물티슈질을 했다. 문손잡이나 전등스위치처럼 손이 자주 닿는 곳은 알콜솜으로 세심하게 문질렀다.
청소를 끝냈지만 충전할 짬은 없었다. 여느 때보다 더 오래 걸려서 곧바로 점심 준비를 할 시간이 닥쳤다. 식구마다 밥을 따로 차려야 하니 재바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먼저 거실에다 수인이 몫의 밥상을 놓아주었다. 이어서 식판을 들고 별아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짜증이 확 치밀었다.
“휴지 잘 구겨서 버리라고 했지!”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움찔 놀란 별아는 반사적으로 투명봉투 안으로 손을 넣으려 했다.
“손 넣지 마!”
내 목소리는 또 날카로웠다. 별아는 또 움찔했고.
“아빠가 정리할게. 밥 먹어.”
별아가 놀라는 모습에 미안해져서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별아 책상에 조심조심 식판을 내려놓았다. 별아는 어정쩡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임시 쓰레기통으로 만들어준 투명봉투를 집어들었다. 그러자 별아가 나직이 말했다.
“아빠, 다음부턴 휴지 잘 구겨서 버릴게.”
“그래. 아빠도 소리 질러서 미안.”
조용히 뒷걸음질로 방을 나왔다. 왠지 별아에게 등을 보이는 게 미안해서.
문제의 휴지는 별아의 가래를 받아낸 휴지다. 코로나로 가래가 심한 별아에게 꼭 구겨서 버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펼쳐진 채 버려져 있어서 화가 났던 거다.
‘나도 아파서 그런 거야.’
나는 평정심을 잃었던 스스로를 이렇게 합리화했다. 몸이 아프면 짜증이 잘 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심하진 않지만 나도 코로나에 걸린 터라 몸 곳곳이 불편했다. 게다가 대청소까지 하고 쉬지도 못했으니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 자기합리화를 하자마자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MSG를 좀 친다면 가슴에서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아이들 마실 물을 마련하려고 부엌으로 가려다가 무심코 안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뜬금없이, 아내가 잘 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아내는 안방에 숨어 기다리는 게 우리 집의 코로나 방역수칙이었다.
“애들 밥 잘 먹어?”
방문을 연 내게 아내는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를, 가슴에서 열감을 느낀 이유를.
아내가 집에 있을 때 나는 딸들을 향한 감정표현이 더 거칠어진다. 단순한 실수도 아내가 없을 땐 그냥 넘기지만, 이상하게 아내가 있을 땐 지적질하고 꾸짖는다. 어떤 일에 화를 낼 때도 그 정도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런 경험을 여러 차례 겪고 나서 나는 스스로를 진단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진단 결과를 알렸다.
“자기가 집에 있을 때 애들한테 더 화를 내는 이유를 생각해 봤어. 엄마가 없을 때 아빠가 혼내면 애들은 기댈 곳이 없잖아. 그게 가여워서 한 번이라도 더 참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두 번째 진단 결과도 밝혔다.
“솔직히 애들이 울거나 시무룩해지면 내가 더 힘들어지기도 하거든. 달래고 풀어 줘야 되니까. 그러니까 안 울리려고 안 혼내는 면도 분명히 있어.”
아내가 집에 있으면 이런 면들에서 자유로워지니까 나는 고삐가 풀리고 마는 거다.
가족이 코로나를 앓으면서, 아이들이 밥 잘 먹는지 걱정하는 아내의 엄마다운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진단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 진단 결과보다 더 창피한 진단 결과다.
‘아내에게 내가 힘든 걸 티내고 싶었나 보다.’
아내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깊이 도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 없을 때 아이들이 아빠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혼자 두 아이 맡으며 집안일에 업무까지 하느라 고생하는 나를.
정말 내 자신을 바보라고 손가락질하고 싶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감당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아내는 잘 감당하고 있는데, 왜 혼자 힘들다고 난리인가! 정말 개고생을 해 봐야 정신 차릴 텐가!
세 번째 진단 결과는 아직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기약 없이 비밀상자에 봉인 중이었는데, 이렇게 어영부영 열고 말았다. ‘잔고생 티내기욕구’를 다스리고 똑바로 살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고민이다. 아내에게 이 글을 보여 줄지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