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 고생만 시키는 남편의 엉터리 심리학 4

벼락부자 콤플렉스

by 작은별송이

사촌 여동생 결혼식에서 아내와 내가 접수를 맡게 되었다. 형이 회사 일로 바빠서 아내가 대타로 들어선 거다.

결혼식날,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갔더니 1시간 20분이나 일찍 예식장에 다다랐다. 축의금 접수대에는 앞서 예식을 치르는 가족이 아직 자리하고 있었고, 로비에는 아예 의자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예식홀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막 본식을 마치고 사진 촬영을 시작한 터라 앉을자리가 꽤 있었다. 구석으로 향한 아내와 나는 생판 모르는 남의 결혼식에 하객인 양 앉았다.

“사진 찍는 거 구경이나 하자. 이것도 재미야.”


아내는 나의 제안에 웃음으로 동의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다리를 쉴 곳은 예식홀뿐이니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을 거다.

양가 가족 친지들이 차례로 사진 찍는 걸 보면서 아내와 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나눴다.


“별아랑 수인이 징징대지 않을까? 지하철에 앉을 데 없어서.”

“어머님 아버님 힘드실까 걱정이네.”


우리는 접수 업무 때문에 두 딸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기고 먼저 왔다. 아이들이 예식장에 오래 있으면 지루할까봐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하철을 타고 데리고 오기로 한 거다.

“앉아서만 올 수 있으면 애들이 힘들게 하진 않을 텐데…….”


그때 아내 핸드폰이 울렸다. 역시 접수를 돕기로 한 형수(아내에게는 형님) 전화였다. 아내는 통화를 하기 위해 예식홀을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갔다. 때맞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랑 신부가 사진 촬영을 위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진한 키스였다.

“좋을 때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비꼬려는 마음은 ‘1’도 없었다. 정말 보기 좋았고,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다. 나와 아내의 결혼식에 키스신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키스신 촬영 다음은 부케 던지기였다.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신부가 돌아서고, 신부의 친구가 부케를 받기 위해 무대 앞에 나섰다. 신부가 다소 긴장한 얼굴로 연신 친구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불꽃처럼 터지는 박수와 환호 그리고 날아가는 부케……. 어느 순간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박수를 치고 있었다.

부케 던지기가 끝나자 아내가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웨딩드레스 입은 아내의 모습이 겹쳤다. 한순간 울컥했다. 이제 아내도 꽤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형수가 뒤따라 들어오는 바람에 꿀꺽 삼켰다.


“자기 고생 안 시킬게. 평생 호강하게 해줄게.”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이런 약속은 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을뿐더러 못 지키면 더 미안해질까 봐.


“같이 고생하자. 하지만 생고생하지 않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게.”


내가 한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것도 농담을 건네듯 웃으면서. 미안한 마음에 진지하게 말하기가 겸연쩍었다. 아내도 그저 웃음으로 내 말을 받았다. 나랑 결혼해서 팔자가 펼 거란 기대는 애당초 안 했다는 듯.



여자에게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남자에게는 온달 콤플렉스가 있다고들 한다. 화려한 인생을 선사할 이성을 만나기를 바라는 심리. 이런 마음이 ‘0’인 사람도 있겠지만, 아주 조금씩은 가볍게라도 품고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그저 결혼 전보다 결혼 후의 삶이 배우자로 인해 물질적으로 좀 넉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 정도는 애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냉정하게 콤플렉스로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 애교가 있었다. 아니, 있다.

아내에게도 내 덕분에 살림 좀 펴기를 바라는 마음이 손톱만큼은 있었을 거라,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소망을 채워준 적이 없다. 앞으로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한 6개월 전부터 로또를 시작했다. 성실하게 일하며 먹고살 정도만 벌면 그만이라 생각했던 내가, 복권은 헛된 욕심이라며 쳐다보지도 않던 내가 변해 버렸다. 말 그대로 일확천금을 꿈꾸게 되었다. 나이는 늘어가고, 수입은 줄어가고, 아이들은 커가니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을 잡고 싶었다. 아내와 신랑 신부처럼 키스를 나누며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아니, 다 핑계다. 일하기 싫어서, 과정 없이 결과만 바라서, 편하게 놀고먹고 싶어서 로또에 눈을 돌렸다는 게 맞는 말일 거다. 그런 내가 부끄러워서 괜히 엉뚱한 핑계를 대는 거다.


나는 ‘벼락부자 콤플렉스’에 걸리고 말았다. 아내와 같이 고생하려는 마음조차 희미해졌다. 아내 혼자 고생하고 있는데, 나는 로또를 매주 오천 원 할까 만 원 할까 고민하고 있다. 아내는 재미로 오천 원 어치만 하는데, 나는 점점 당첨금에 얽매이고 있다. 이러다 부자는 안 되고 벼락만 맞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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