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 고생만 시키는 남편의 엉터리 심리학 5

짐꾼 동행욕구

by 작은별송이

“올레길에서 실종 됐대!”

큰맘 먹고 떠난 제주도 가족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렌트카 차창 밖 가로수에 걸린 현수막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육십대 할머니가 올레길 산책을 나갔다가 행방불명 됐다는 내용이었다. 현수막은 자녀들이 만든 것인지 ‘어머니를 애타게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내도 걱정되는 듯 탄식을 토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가슴 아픈 현수막을 지나쳐 신호등 빨간불이 들어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를 슬쩍 곁눈질했다. 이어서 고개를 돌려 뒷좌석의 두 딸을 힐끔거렸다. 감사했다. 우리 네 식구 모두 제자리에 무사히 있음에. 기도했다. 실종자 가족이 어머니를 꼭 찾을 수 있도록.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남몰래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내가 없다면, 별아와 수인이에게 엄마가 없다면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될까?’


나는 살기는 살 거다.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생기와 활기는 잃어버릴 게 뻔하다. 오로지 아이 키우는 낙으로 삶을 견디기만 할 것 같다.

아이들의 삶은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엄마가 두통이나 몸살만 앓아도 훌쩍훌쩍 우는 아이들이니……. 아이들이 울보가 된 이유가 있다. 우선 별아는 유치원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친구의 엄마가 하루아침에 하늘나라로 가는 바람에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엄마가 조금만 아파도 ‘우리 엄마도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친구 엄마가 세상을 뜬 뒤 얼마 안 지나 엄마가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은 것도 영향이 컸다. 그 사건은 죽음의 무게를 한청 더 늘려 주었다.

수인이는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하다. 여린 천성에 엄마가 아프면 무서움에 눈물샘이 터진다. 천성과 상관없이 언니가 울면 따라 울기도 한다. 이건 그 또래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비행기 밖 하늘은 구름 몇 조각만 떠다닐 뿐 파랗고 상쾌했다. 그러니까 도리어 마음에 먹구름이 끼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없는 삶은 어둠뿐일 것만 같았다. 부끄럽게도 문득 별아와 수인이가 무거운 짐처럼 여겨졌다.


‘나 혼자 이 짐들을 잘 이고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은 충격적인 깨달음을 끄집어냈다.


‘혹시 아내를 짐꾼으로 여기고 있던 건 아닐까?’


내 삶의 짐을 나누어 지고 가는 짐꾼. 소름이 돋았다. 마음속에 아내를 그저 짐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살았던 건 아닌지…….


‘결국 난 동행하던 짐꾼이 자리를 비울까 봐 걱정했던 건가?’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낯 뜨겁고, 창피했고, 미안했다. 행여 나는 아내에게 짐만 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나의 이기적인 걱정을 ‘짐꾼 동행욕구’라 표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참 비겁하고 바보 같은 욕구다.

그나마 비행기에서 뛰어내리지 않은 건 잘한 짓이다. 뛰어내렸으면 아내뿐 아니라 아이들, 승무원과 승객들에게까지 짐이 되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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