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이들의 풋사랑
2029년 5월 28일 월요일, 진짜 맑음
건빵이 녀석, 자고 있으니까 얌전한 아기 같다. 오늘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피곤했나 보다. 나쁜 할아버지한테 쫓기고, 나한테 잡혀 오고, 풋! 아무튼 깨어 있을 때와 잘 때가 극과 극이다. 근데 주인 먼저 자는 강아지도 있나?
영어 학원 끝나고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아 집에 간 게 ‘신의 한 수’였다. 평소대로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렀다면 건빵이를 만나지 못했을 거다. 오늘따라 집에 일찍 가기 싫었다. 요즘 엄마가 게임 시간을 한 시간이나 줄여서 놀 게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신기하다. 꿈만 같다. 세상에 말하는 강아지가 있다니! 건빵이는 어떻게 사람 말을 할 줄 알까? 치사하게 왜 물어봐도 안 가르쳐 줄까? 빨리 친해지는 수밖에 없다. 나랑 친해지면 말해 줄지도 모르니까.
건빵이가 코로나에 엄청 예민하게 구는 것도 많이 이상하다. 나한테 집에서도 마스크 쓰고 있을 거 아니면 2미터 떨어지란다. 농담인 줄 알고 가까이 다가갔더니 무섭게 크르릉거렸다. 이것도 친해지면 나아지겠지?
근데 곰곰 생각해 보면 건빵이는 코로나 덕분에 만나 게 된 거다. 건빵이가 그 나쁜 할아버지에게 쫓겼던 이유는 장기판을 엉망으로 만들어서다. 할아버지가 자기 친구와 마스크도 안 쓴 채 장기를 두고 있어서 건빵이는 장기판 위로 날아들어 장기알을 흩어버렸다. 두 분은 내기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나쁜 할아버지가 이기고 있었다. 그래서 나쁜 할아버지는 화가 난 거다.
건빵이는 코로나 19도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코로나 29가 정말 싫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픈 사연이 있는 듯했다. 아마도 큰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코딱지만 한 강아지가 할아버지들한테 덤빈 건 무모한 짓이었다. 자기도 ‘할아버지’여서 만만하게 생각했나? 건빵이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열두 살인데, 사람으로 치면 여든이 넘은 나이란다. 그래서 제가 할아버지뻘이란다. 뭐, 할아버지여도 좋고 할머니여도 좋다. 건빵이가 나 같은 어린이라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백 세 시대라니까 건빵이도 오래 살 거다. 말을 할 줄 아는 특별한 강아지니까 더 오래 살지도 모른다.
코로나 19는 2019년에 중국에서 생겨났지만, 우리나라에 크게 번진 건 2020년이라고 했다. 2020년에 나는 엄마 배 속에 있었다. 코로나 19는 2021년 10월,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고 넉 달 뒤에 가라앉았다. 치료제가 그 무렵 나온 덕분이다.
코로나 29는 2029년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일본에서 터졌는데, 그 뉴스가 나오고 며칠 뒤 엄마에게 코로나 19에 관해 들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2미터씩 거리를 두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고 했다. 학교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가고, 화상 수업을 받았다고 했다. 영어 학원도 한 교실에 아홉 명씩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친구네 놀러가지도 못했고,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 수도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코로나 19 때나 코로나 29 때나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도 똑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화상 수업 기술뿐이란다. 지금은 특별한 안경을 쓰면 실시간 화상 수업 화면을 3D로 볼 수 있다. 친구들은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실감 나서 좋다는데, 나는 어지러워서 그 기능을 거의 안 쓴다. 선생님이 화를 내면 진짜 실감 나서 더 안 쓴다.
근데 강아지랑 코로나랑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코로나 19가 강아지에게 심각한 피해라도 입힌 걸까?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인터넷도 검색해 봐야겠다.
건빵이는 현재 수수께끼투성이다. 빨리 그 수수께끼들을 풀고 싶다.
말하는 강아지와 같이 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진짜진짜 기대가 된다. 어쩐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 물론 건빵이가 내 말을 잘 듣는 게 우선이겠지만.
우건빵, 잘 지내보자. 나 알고 보면 괜찮은 애다. ㅋㅋ
일기장을 덮는데 아쉬움이 밀려왔어. 건빵이가 자기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풀어놓았다면 더 많이 썼을 텐데…….
난 일기장이 두 개야. 하나는 학교 검사용, 나머지 하나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일기용. 난 비밀 일기 쓰기를 좋아해. 글쓰기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또 글솜씨가 빼어나지도 않지만 비밀 일기는 즐겨 써. 스트레스가 풀리거든.
“픽!”
하하! 건빵이 방귀 소리야. 지저분하게 자면서 방귀를 뀌냐. 뀔 거면 시원하게 뿡 뀌든가 웬 바람 빠지는 소리?
난생처음 시킨 목욕 치고는 깨끗하게 된 것 같아. 밤이라서 그런지 털에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 느낌인데? 고민이다. 건빵이는 지금 방문 옆에서 자고 있어. 침대로 데려와 같이 자고 싶어. 그러다 걸리면 2미터 안 떨어졌다고 화를 낼까? 아침에 내가 먼저 깨서 몰래 방문 옆에 도로 갖다 놓을까?
아무래도 첫날이니까 이대로 자는 게 낫겠어. 괜히 건빵이 속을 긁을 이유는 없겠지. 그러면 친해지는 데 더 걸림돌만 될 거야. ‘괜히 건드리지 말자’. 이건 엄마와 지내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야. 열 살 생애에 처음으로 얻은 깨달음이랄까?
자려고 누우니까 이모 얼굴이 떠오르네. 이모한테는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해. 내가 막 졸라서 썰매를 받기로 한 건데…….
지난 겨울방학 때 이모네 말티즈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아서 강아지가 모두 세 마리가 됐어. 4월 초였나? 이모네 집에 놀러갔었는데, 새끼들이 참 귀엽더라. 둘 중에서도 솔직히 썰매가 더 눈에 들어왔어. 그래서 이모한테 달라고 했더니, 이모가 단번에 거절하는 거야. 이모는 밥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하거든.
난 썰매를 생일선물로 달라고 막 떼를 썼어. 생일이 6월인데 미리 달라고. 이모는 어처구니없어 하다가 조금 화까지 냈어. 덩달아 엄마도 씩씩대면서 내가 애기처럼 군다고 나무랐어.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이모에게 매달렸어. 정말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니까. 결국 이모는 나한테 항복했지. 두 손을 맥없이 들면서 강아지를 준다고 하더라.
다만 당장은 썰매가 너무 어려서 안 되고, 이모가 보살피다가 내 생일에 맞춰 준다고 했어. 그런데 말을 맺는 순간 이모 눈에 눈물방울이 핑글 맺혔어. 그때 티는 안 냈지만 솔직히 엄청 놀랐어.
그렇게 이모 속을 뒤집어 놨는데, 이제 와서 강아지 필요 없다고 말하려니 마음이 무거워. 어제 이모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별 준비를 다 마쳤다고 했어. 뒤늦게 마음을 바꾸면 다시는 날 안 본다고 했어. 내가 마음을 바꿨으니, 이모는 정말 날 안 볼까? 이모를 잘 달래 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어른을 달래는 데 뭐가 좋은지 이것도 인터넷으로 알아봐야겠어.
갑자기 숙제가 엄청 쌓인 기분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