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이들의 풋사랑
화상 수업은 이상하게 금방 지쳐. 10분만 해도 힘들어. 오늘은 5분도 안 됐는데 지루해 죽겠다. 내가 싫어하는 사회 과목이라서 그래.
“졸지 마라멍!”
깜짝이야. 나도 몰래 눈이 감겼나 본데, 건빵이한테 딱 걸렸네. 내 뒤통수만 보일 텐데 어떻게 눈치 챘지? 더구나 저는 방바닥에 앉아 있고,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데. 혹시 건빵이는 ‘초능력 강아지’인가? 말도 할 줄 아니까 그럴지도 몰라. 가만, 하늘도 나는 것 아냐?
“안 졸았거든! 졸았으면, 선생님이 지적했겠지!”
“뻔뻔하다멍! 선생님한테 걸리게 그냥 둘걸 그랬다멍.”
“잠깐! 지금 나 걱정해준 거야? 선생님한테 걸릴까 봐?”
“수업에 집중해라멍. 딴짓 말고.”
손톱만큼은, 아니 손톱의 때만큼은 날 걱정해 준 게 틀림없어. 그래도 내가 아주 싫지만은 않은가 봐.
잠깐 현유 얼굴이나 봐야겠다. 맨날 예쁘지만 오늘은 더 예쁘다. 미니마우스 머리띠도 잘 어울려.
현유는 마음도 예뻐. 3월, 새 학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코로나도 심하지는 않았을 때였고. 그날 놀이터에서 현유는 현유 친구랑, 나는 내 친구랑 따로따로 놀고 있었어. 그런데 어떤 꼬맹이가 초콜릿을 바닥에 흘렸다며 울음을 터뜨린 거야.
그걸 본 현유가 아이에게 달려가더라. 그러고는 자기가 먹으려던 막대사탕을 꼬맹이에게 선뜻 주더라고. 그때부터 현유에게 자꾸만 마음이 끌렸어. 예뻐서만 좋아하는 게 아니야.
“선생님이 너 부른다멍!”
정말? 언제?
“우성준, 자니?”
“네. 아니아니요.”
“대답할 땐 마이크 켜야지!”
얼른 마이크 켜고.
“잠은 안 잤는데요.”
“그래? 그럼 선생님이 뭐라고 했을까?”
모르는데, 어쩌지?
슬쩍 건빵이를 곁눈질했는데, 눈 감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 진짜 얄밉다. 혹시 마이크가 켜진 상태라 입 다물고 있는 걸까? 어차피 웹캠에 저 얼굴은 안 잡혀서 상관없는데 너무하네.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어요?”
“죄송한 건 알아서 다행이네. 성준이한테는 특별 숙제를 내줄게.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을 조사한 다음 보고서를 작성해서 등교 수업 하는 날 제출해. 알았니?”
우리 선생님 진짜 맘에 안 들어. 날 특별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특별 숙제를 내주다니! 그나저나 현유 앞에서 망신당했는데, 이건 누가 책임질 거야?
여전히 화상 수업에 집중이 안 돼. 이번엔 엄마 목소리가 방해 돼. 거실에서 전화로 친구랑 수다를 떠는 중인데, 안 들리는 줄 아나 봐.
“나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진짜 힘들어. 애랑 24시간 있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 차라리 땅을 파는 게 나을까? 호호호!”
아! 이 말은 안 듣는 게 나을 뻔했어. 화상 수업 때문에 귀를 막을 수도 없고.
“어제부터 남편 출장이라 한숨 돌리나 했는데, 우리 아드님께서 길강아지를 몰고 오셨네.”
엄마, 제발!
“잠깐만! 전화 들어온다. 이따 다시 걸게.”
다른 사람이랑 통화한 뒤 또 통화하겠대. 올림픽에 ‘전화 오래 하기’ 종목이 있다면 엄마는 금메달감이야. 참, 이어폰이 있었지? 엄마 목소리를 안 듣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화상 수업에 겨우 집중이 되었을 때 벌컥 방문이 열렸어.
“깜짝이야! 노크 좀 해!”
엄마가 팔짱을 낀 채 문턱에 서 있었어.
“노크했다. 이어폰 끼고 있으니까 못 듣지.”
엄마 목소리가 개미 소리처럼 들려서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내가 이어폰을 빼자 엄마가 화상 수업 장면을 힐끗 쳐다보았어.
“마트 갔다 올게. 수업 열심히 해.”
“마트? 나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같은 소리 하네. 강아지 용품이랑 사료 사러 가는 거야.”
“아이스크림 하나 더 산다고 장바구니가 터지는 건 아니잖아?”
“얼른 수업해. 선생님 설명하신다.”
엄마가 찬바람을 쌩 일으키며 돌아섰어. 그러고는 방문을 닫으면서 한마디 툭 던졌어.
“쟨 나 쳐다보지도 않네.”
건빵이한테 한 소리였어. 건빵이는 엎드린 채 앞발 사이에 고개만 파묻고 있어. 건빵이 태도가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엄마가 좀 오버다. 하루밖에 같이 안 지냈는데 자기를 좋아하길 바라다니. 난 10년을 같이 살았어도 엄마가 별로 안 좋은데 말이야.
화상 수업 끝! 끝나자마자 잠이 싹 달아나. 마법에 걸렸다가 풀린 기분이야. 하지만 새로운 마법에 걸린 것 같아. 갑자기 너무 심심해지는 마법.
“우건빵, 놀이터 갈래?”
“싫다멍.”
“왜? 코로나 때문에? 요즘 애들도 없어.”
“네 엄마 기다려야 된다멍. 밥 먹어야 된다멍.”
“잠깐만 나갔다 오자. 안 지루해?”
“목줄도 없잖냐멍. 코로나 때문에 너한테 안기기 싫다멍.”
“어젯밤에, 아침에도 인터넷 검색해 봤는데, 코로나 29 걸린 강아지는 없대.”
“사람들은 잘 모른다멍. 코로나 19 때도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반려견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멍.”
“아! 인터넷에서 봤어. 하지만 겨우 세 마리였대.”
“지금 ‘겨우’라고 했냐멍?”
건빵이가 날 짝 째려봤어. ‘겨우’라는 표현에 마음이 상했나 봐.
“미안.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냐.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내 말의 의미를 넌 모른다멍. 사람들이 아는 게 ‘세 마리’였을 뿐이다멍.”
“몰라몰라. 나 아는 거 하나도 없다. 아무튼 마스크 단단히 쓸게. 그럼 되지?”
건빵이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어. 정말 고집불통, 똥고집 대마왕이야.
전화 왔다. 이 시간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할 사람 없는데, 누구지?
“어? 아빠네?”
“전화 빨리 받아라멍. 벨소리 시끄럽다멍!”
쳇,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네.
“응, 아빠.”
“아들, 길에서 강아지 주워왔다며?”
인사말도 없이 다짜고짜 강아지 얘기부터? 말투도 왠지 딱딱해. 다정하던 우리 아빠가 아닌 것 같아.
“주워온 게 아니라 데려온 건데……. 사연이 좀 있어.”
“아까 엄마한테 대충 들었어. 진짜 키울 셈이야?”
“아까?”
엄마가 통화 중에 전화했던 사람이 아빠였군.
“길강아지가 불쌍해서 그런 거면, 잘 키워 줄 사람한테 맡길게. 아빠 친구가 거의 강아지 박사 수준이야.”
“아빠, 얘는 아주 특별한 강아지야.”
“뭐가 특별해? 말티즈라며.”
“말하긴 좀 곤란한데……. 아! 얘는 사람이랑 같이 안 사는 강아지야.”
“응? 설마 야생동물이란 소리야? 말티즈가?”
“어휴, 그건 아니구…….”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건빵이가 불쑥 끼어들었어.
“아빠 친구한테 보낸다고 하고, 날 풀어 줘라멍.”
“쉿! 조용히 해!”
“지금 아빠한테 조용히 하라고 했니?”
“아니아니, 건빵이가 좀 짖어서.”
“건빵이? 벌써 이름까지 지었어? 진짜 키울 작정인가 보네? 이모가 엄청 섭섭해하겠다. 썰매 주는 거 어렵게 결정했는데.”
“아빠, 지금 안 바빠? 출장 간 게 아니라 놀러간 거야?”
“녀석, 말버릇하고는.”
“맞다! 친구랑 만나기로 한 걸 깜빡했어. 아빠, 내가 바빠서 끊어야겠다. 안녕!”
“우성준! 내일 아빠 가면 다시 이야기하자.”
대답하지 않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어. 전화를 끊자마자 건빵이가 살살 비꼬았어.
“너 거짓말 참 잘한다멍. ‘거짓말 대장’이구나멍.”
친구 만난다고 어쩔 수 없이 둘러댄 걸 가지고 시비를 거네. 다 저를 위해서 그런 건데.
“그럼 어쩌냐? 아빠가 너랑 나랑 떼어놓으려고 하는데.”
“나보고 거짓말쟁이랑 같이 살라는 거냐멍?”
그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어.
“나 거짓말쟁이 아냐! 당장 나갈 거고, 친구도 부를 거야!”
말을 마치자마자 건빵이를 덥석 집어들었어.
“놔라멍! 나가려면 혼자 나가라멍!”
“흥, 반려동물 주제에. 주인이 가자면 가는 거지.”
“2미터 떨어져라멍!”
“싫다. 2센티도 안 떨어질 거다.”
나는 잃어버린 아기를 찾은 엄마처럼 건빵이를 힘껏 부둥켜안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