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이들의 풋사랑
놀이터는 한산해. 그네를 타고 있는 여자애들 둘뿐이야. 그런데 한 명은 마스크를 안 썼고, 또 한 명은 턱에 걸치고 있네. 1학년 같은데, 쟤네 엄마들은 왜 자기 아이를 저렇게 내버려둘까?
건빵이가 품 안에서 꼼지락거렸어. ‘코로나 민감증’이 또 발동한 것 같아.
“왜? 여자애들한테 한마디 하게? 이빨로 그네라도 끊으려고?”
건빵이가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했어.
“지금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다멍.”
“귓속말 하냐? 좀 크게 말해 봐.”
“난 꼭 필요할 때만 말한다멍.”
“어제 할아버지한테 쫓겼을 때처럼? 가만, 그럼 너도 내가 필요해서 ‘안아 멍’이라고 말한 거지?”
대답을 안 하네.
“어쨌든 이것도 인연인데, 잘 지내보자.”
또 잠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로 마음먹었나?
무작정 놀이터에 왔지만 딱히 부를 친구가 없어. 친한 친구가 몇 있지만 다 학원에 있을 시간이야. 혼자 놀기도 참 애매해. 건빵이를 내려놓자니 도망갈 것 같고, 안고 놀자니 불편하고. 그래도 미끄럼틀이나 한번 타야겠다. 건빵이 안 놓치게 조심해서.
“우성준!”
누가 날 불렀지? 뒤를 돌아보다 깜짝 놀랐어. 현유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어!
현유가 내 앞에 딱 멈추는 순간 숨이 탁 멎는 것 같았어.
“안녕, 현유야.”
급하게 나오느라 운동복 바람으로 나온 게 후회돼. 단정하게 잘 차려입고 나올걸.
“네 강아지야?”
현유가 건빵이한테 먼저 관심을 보인 건 살짝 서운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응, 예쁘지?”
건빵이가 픽 콧방귀를 뀌네. 제발 가만있어라.
“이름 뭐야?”
“건빵이.”
“건빵아, 안녕! 우리 ‘순이’랑 조금 닮은 것 같다.”
순이는 현유네 강아지야. 여자 말티즈. 현유는 종종 순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와. 순이는 건빵이처럼 건방지지 않고 아주 순해. 솔직히 내가 말티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유가 말티즈를 키우기 때문이야. 그나저나 건빵아, 현유가 인사하는데 눈이라도 좀 깜빡여 봐라. 현유는 마스크도 잘 쓰고 있잖아.
‘언제 순이랑 건빵이랑 같이 놀까?’
이 말을 현유한테 하고 싶은데, 입속에서만 뱅뱅 맴돌아. 현유가 먼저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빵이는 남자니?”
“응.”
“좀 까칠한 것 같지만 우리 순이랑 잘 어울리겠다, 호호.”
“순이는 세 살 아닌가? 얘는 열두 살, 할아버지야.”
“호호, 나이 차가 너무 많은가?”
가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현유랑 같이 놀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있잖아?
“나이 차이 많이 나도 둘이 잘 놀 거야. 건빵이도 아주 순하거든.”
건빵이가 순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내가 좀 우스웠어. 살짝 찔리기도 했고.
“아야!”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모기가 물고 갔나?”
건빵이가 발톱으로 내 팔뚝을 할퀸 거 있지? 두고 보자, 우건빵!
“요즘엔 봄에도 모기가 많더라. 아무튼 언제 기회 되면 둘이 같이 놀게 하자.”
“정말? 좋지!”
현유가 ‘우리도 같이 놀자’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럼 내일 보자. 아니, 내일모레구나. 등교 수업 하는 날이.”
“놀이터에 놀러온 거 아니었어?”
“엄마 심부름 가던 길이었어.”
“그렇구나. 엄마 기다리시겠다. 얼른 가.”
“응, 갈게. 건빵이도 안녕!”
현유가 건빵이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어. 우건빵, 동작 그만! 현유한테 상처 내면 알지?
현유가 놀이터를 벗어나는 순간 건빵이가 소곤거렸어.
“바보, 현유를 그냥 보낼 거냐멍? 맨날 짝사랑만 할래멍?”
이 녀석, 내 마음을 어떻게 알지?
“내일 만나자고 해라멍. 안 그러면 후회한다멍.”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 거절당하면 어쩌라고?
“악!”
건빵이가 내 팔을 꽉 깨물었어.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왜 그래? 괜찮니?”
현유가 내 비명 소리에 걸음을 멈췄어.
“응? 어…… 미끄러져서 넘어질 뻔했어.”
“정말? 안 넘어져서 다행이다.”
“우리 내일 만날래?”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어. 꿀떡, 침이 넘어간다.
“내일?”
“응. 화상 수업 끝나고 여기서 만나자. 건빵이랑 순이랑 같이.”
현유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어. 지금 내 얼굴, 빨간 물감을 바른 것처럼 빨갛지 않니? 엄청 화끈거려.
“그러자.”
현유가 생긋 눈웃음을 지었어.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도 분명 웃음을 그렸을 거야.
“현유야, 오늘 화상 수업 때 나 진짜로 안 졸았어.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선생님 말 못 들은 거야.”
쓸데없이 이런 말이 왜 나올까?
“아하, 특별 숙제? 호호호.”
나는 겸연쩍어서 머리를 긁적였어.
“그럴 수도 있지, 뭐. 아무튼 내일 보자. 나 진짜 가야겠다.”
“맞다. 나 때문에 심부름 늦겠다. 잘 가, 현유야.”
나는 어설프게 손인사를 건넸어. 현유는 다시 한 번 눈웃음을 짓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어.
건빵이가 킁 코웃음을 웃었어.
“좋냐멍?”
“쑥스럽게 왜 묻냐?”
“첫사랑이냐멍?”
“그런 거 아냐!”
사실 맞아.
“솔직히 털어놔라멍.”
“뭘?”
“너 현유랑 친해지고 싶어서 나 이용하는 거냐멍?”
바늘에 찔린 듯 뜨끔했어. 그런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거든. 10에서 3 정도, 아니 7 정도는 있었어. 아니야. 솔직히 9. 사실 이모한테 썰매를 달라고 떼쓴 것도 현유 때문이었어.
“야, 날 어떻게 보고!”
“나이 들면 다 보인다멍.”
“보이긴 뭐가 보이냐? 맞아, 팔을 그렇게 세게 물면 어떡해? 아직도 얼얼하네.”
슬며시 말을 돌리며 팔이 아픈 척했어. 하지만 건빵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쓱 돌렸어. 내가 아무리 아닌 척해도 다 알고 있다는 몸짓인 것 같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창피하네.
와, 엄마 전화다! 평소 귀찮기만 했던 엄마 전화가 정말 반가워. 위기에 빠진 나를 구해 주는 손길 같아서.
“왜 엄마?”
“어디야? 말도 없이 나가면 어떡하니?”
“미안, 놀이터에 잠깐 바람 쐬러 나왔어.”
“집까지 당장 바람처럼 달려와!”
구조의 손길 치고는 참 쌀쌀맞지? 하지만 참을 수 있어. 내일 현유와 단둘이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 아, 건빵이랑 순이도 있으니까 ‘단넷’인가?
단둘이든 단넷이든 현유랑 같이 놀 수 있어서 좋아. 현유도 날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싫어하지 않는 건 틀림없어. 조금은 희망을 품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