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욕구 비대증
“에라, 이 좆같은 새끼야!”
공원에 자리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는데 낯뜨거운 욕설이 들려왔다. 귀를 의심했다. 욕을 뱉은 사람은 팔순은 돼 보이는 할머니였다. 물론 할머니라고 해서 육두문자 섞은 욕을 쓰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내가 놀란 건 욕을 받은 사람이 비슷한 연세의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흰머리와 얼굴 주름에 긴 세월과 연륜이 배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쌍욕이 튀어나오는 상황이 빚어졌을까?
“지금 나한테 좆같은 새끼라고 했어? 이 씨발년이 진짜!”
할아버지도 붉으락푸르락하며 쌍욕을 날렸다. 주변엔 등나무 벤치가 있었고, 몇몇 어르신들이 이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렸고, 누군가는 무관심했다. 하지만 두 분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나도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분 사이에 끼어들기가 좀 애매했다.
“이 벼락 맞을 놈아,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처자라!”
할머니는 또 한 번 욕설을 뱉고 홱 돌아섰다.
“좆같은 년아, 너나 집에 가!”
할아버지도 할머니 등에다 욕설을 던졌다. 할머니가 아랑곳없이 갈 길을 갔기에 싸움은 더 번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잠시 할머니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뗐다. 그러고는 빈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집으로 향하며 일부러 할아버지 앞을 지나갔다. 할아버지는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리며 손부채질을 했다.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재빨리 주변을 스캔했다. 할아버지 벤치 주변에 담배꽁초 몇 개가 눈에 띄었다.
‘혹시 담배 때문일까?’
흡연이 불씨가 되어 일어난 다툼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다. 공공도서관 앞 등나무 벤치는 주로 어르신들 쉼터로 쓰인다. 많은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담소를 나누고, 정치인 욕도 하고, 장기도 두고, 술담배도 한다. 갈 곳과 쉴 곳과 교제할 곳이 상대적으로 적은 어르신들이기에 그분들이 무엇을 하든 동네사람들 대부분 너그럽게 지나가는 분위기다.
그런데 가끔 담배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주로 담배를 피우는 어르신과 안 피우는 어르신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다. 나는 도서관 갈 일이 잦아서 그런 광경을 몇 번 마주했다.
‘할머니가 혹시 담배 피우는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했나? 할아버지는 그 말에 발끈하고.’
추측을 한층 키웠다가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억측은 장점보다 단점이 크니까.
아무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욕설 배틀은 왠지 안타까웠다. 물론 늙었다고 해서 욕하고 싸우면 안 되는 건 아니다. 늙지 않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르신들만의 심정과 세계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못내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같이 늙어가는 처지잖아. 조금만 서로를 딱하게 여긴다면 쌍욕까지는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집에 다다를 때까지 이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이 들면 대접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거다. 아무래도 우리의 어르신들은 그 마음이 아랫세대보다는 더하지 않을까 싶다. 윗사람 받드는 게 미덕이자 도리로 배우고 살아온 분들이기에. 윗사람을 받들며 살다 이제 그 윗사람이 되었으니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할 법도 하다.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지만, 갑질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들의 가슴속에도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갑질을 제일 많이 하는 부류가 사오십대 남성이라는 사실은 그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남성들은 어릴 때, 젊을 때 여성에 비해 수직관계에 대해 더 강요받는 편이다. 권력지향적이라는 남성 고유의 특성 탓도 있지만, 군대나 기업 등의 조직이 수직관계를 지향하는 문화 탓도 있다(예전에 비해 한결 달라지긴 했지만).
여하튼 이삼십대 남성들은 대체로 대접하는 위치에서 살아간다. 사오십대에 이르러야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다. 동네에서도 진정한 ‘아저씨’로 등극하며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위치에 거하게 된다. 그때쯤 되면 본인이 대접하던 윗사람은 조직을 떠나거나 영향력이 약해진다. 즉 대접할 일은 사라지고 대접받을 힘은 생기니 갑질의 욕망이 꿈틀거릴 수 있다. 다른 세대나 다른 성별보다 더 강하게!
언젠가 노인 대상의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노인 독자 대상의 잡지를 기획하고 있었기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강사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젊은 사람들이 잘 안 챙겨주고 양보 안 해주면 화나고 섭섭하지요? 그게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래요.”
그때 많은 어르신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반감을 가진 분도 있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동의하는 분위기가 더 짙었다.
‘대접’이란 낱말을 ‘존중’이란 낱말로 바꿔보자. 그래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한다. 남녀노소 똑같다. 다만 나이 먹으면 그 마음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럴지도 모르고, 욕하며 싸웠던 어르신들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 ‘존중욕구 비대증’이 될 수 있다. 이게 심하면 남을 업신여기거나 아랫사람을 짓밟는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내가 그러니까!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나는 특히 가족들과 있을 때 존중욕구 비대증이 일어난다. 아마도 가족들이 편하고 만만해서겠지…….
그날 할머니 할아버지의 욕설 배틀도 존중욕구 비대증에서 나온 행동이라 정의한다. 다만 일시적인 과잉 행동이라 생각하고 싶다. 원래 넉넉하고 너그러운 분들인데, 어느 순간 좀 심하게 뒤틀렸을 거라 믿고 싶다. 그리고 바란다. 어르신들도 어르신들끼리 서로 더 존중했으면 좋겠다. 모진 풍파 다 견디고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는 동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