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고 싶지 않은 동네 아저씨의 엉터리 심리학 4

생존 증명심리

by 작은별송이

‘생존 증명심리’라는 말을 지었다. 계기는 도서관에서 목격한 어르신들의 모습이다. 큰 사전을 떡 펼쳐놓고 영어공부를 하는 할아버지, 문학소녀처럼 달뜬 얼굴로 책 읽는 할머니,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신문과 씨름하는 할아버지……. 처음엔 이 모든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이를 잊은 채 하나라도 더 익히려고, 얻으려고 열정을 불태우는 어르신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어쩐지 측은했다.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엾게 느껴졌다.


‘사람은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삶을 견딜 수 없는 걸까?’


어르신들이 삶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루덴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지은 네덜란드의 역사가 하위징아는 ‘놀이’가 삶의 본질임을 꿰뚫어보았다. 정확한 시선이다. 놀이 없는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지겨울지……. 놀이 없이 사는 건 그냥 숨만 쉬면 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듯하다. 놀이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삶의 본질인 놀이는 사람을 즐거움에 젖게 하며 많은 것을 잊게 만든다. 시간, 걱정, 아픔, 무료함, 나쁜 기억, 그리고 죽음…….


삶을 견디는 일은 곧 죽음에 맞서는 일이라 생각한다. 삶이 힘들면 죽고 싶어지고, 그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면 정말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지 않는 한 누구나 죽음과 줄다리기하듯 살아간다. 아직 노년을 살아보지 못한 나는, 지금 중년을 살고 있는 나는 어르신들에게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는 똑똑히 알지 못한다. 다만 더 자주 생각날 거라, 더 두렵게 느껴질 거라 짐작은 한다.


아흔 넘어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이부자리 펴고 누우면 자다가 덜컥 죽는 거 아닌가 솔직히 무섭구나.”


공원 가로등 벤치 할아버지들의 대화에서 우연히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아 있네’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눈떠지는 게 감사하지, 뭐.”


‘놀이’는 어찌 보면 주관적이다. 공놀이나 윷놀이나 음주가무처럼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놀이만 놀이라 못 박을 수는 없다. 일이나 공부도 본인이 ‘놀이’라고 느끼면 놀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즐거운 놀이인지, 지루한 놀이인지는 다음 문제다.


도서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서 나는 놀이하는 모습을 보았다. 당신들만의 놀이를 하는 그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비쳤다. 그런데 오히려 그 달아오른 모습이 가슴을 짓눌렀다. 더 열심히 놀려 애쓰는 것 같아서, 놀이로써 살아 있음을 드러내려 몸부림치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오버한 걸까? 어르신들을 모욕한 걸까?


나의 노년을 상상해 보았다. 늙은 나도 도서관 생쥐처럼 책에 파묻혀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도 나는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딘다. 먼 훗날 나는 도서관에서 이런 혼잣말을 하며 남몰래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근데 내일은 또 무슨 책을 보며 하루를 보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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