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보호 딜레마
우리 동네에는 언덕이 많다. 곳곳에서 고갯길을 만난다. 지하철역과 우리 집 사이도 높은 고개가 가로막고 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뚜벅뚜벅 고개 넘어 집을 향해 가던 길이었다. 역시나 비탈길인 오른쪽 샛길에서 수인이만 한 여자아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비탈을 급히 올랐는지 여자아이는 언덕에 오르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내 숨고르기를 마친 여자아이는 자신이 올라온 비탈길을 향해 쌩 돌아섰다. 그러더니 두 팔을 쫙 뻗어 올렸다.
“와! 우리나라가 다 보인다!”
여자아이의 말에 쿡 웃음이 터졌다. ‘우리 동네가 다 보인다’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다 보인다’라니!
우리나라를 눈에 가득 담은 여자아이는 이윽고 즐거운 얼굴로 강아지처럼 뛰어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를 불러 세우고 싶었다. “정말 우리나라가 다 보인다고 생각하니?”라고 묻고 싶었다. 아이가 올라온 가느다란 샛길은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큰길과 만나는 언덕바지는 집이나 건물이 없어 시야가 탁 트인다. 언덕바지에 서면 옹기종기 모인 집들과 초등학교가 보이고, 멀리 큰 아파트 단지, 그리고 관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무심코 여자아이가 보았던 그 풍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자주 보던 풍경이 새삼 아름답고 평온하게 다가왔다. 싱글벙글하던 여자아이의 표정이 떠올랐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답고 평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슴 한켠에선 자꾸만 짓궂은 생각이 꿈틀거렸다.
‘다음에 혹시 여자애를 만나면, 우리나라는 이것보다 훨씬 크다고, 네가 보는 건 우리 동네의 일부일 뿐이라고 알려줄까?’
나에게 동심파괴 본능이 숨어 있었던 것인지, 낯선 내 모습에 풋 헛웃음이 나왔다.
어린이의 마음, 동심은 소중하다. 어른은 동심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어린이가 “동심을 간직하고 살면 행복해지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머릿속이 하얘질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대답을 들려줘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선뜻 “그럼!” 하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만 분명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 손해 보고 이용당하는 꼴을 자주 보아서 그런 건지…….
나 역시 동심으로 살고 싶다. 여전히 산타클로스가, 인어공주가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 세상도 동화 속 세상과 같아지리라는 소망을 품고 싶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거나 착해지고, 착한 사람은 상도 받고 요정의 도움도 받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런 꿈과 소망은 사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더 속되게 말하면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
나는 ‘동심보호 딜레마’에 빠졌다. 당장 두 딸에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동심을 지켜줄 것인가 깨줄 것인가. 지켜준다면 몇 살까지 지켜줄 것인가. 무엇이 별아와 수인이에게 도움이 되는 길인가.
3년 전, 그러니까 별아가 2학년 때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별아는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배우고’ 돌아왔다. 별아보다 한층 조숙한 친구가 산타클로스가 가짜라는 걸 알려준 거다. 아내와 나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산타클로스가 엄마 아빠라는 사실을 언제쯤 알릴까 전전긍긍했는데, 꼴이 우스워지고 만 거다.
우리 부부는 할 수만 있다면 계속 산타클로스의 신비를 숨길 작정이었다. 의외로 별아가 담담해서 더 기운이 빠졌다. 왜 산타클로스에 대해 거짓말했냐며 펄펄 뛸 줄 알았는데, 별아는 엄마 아빠를 배려하듯 쿨하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묘했던 그때 기분은 잊히지 않는다. 별아가 동심을 잃은 것 같아 섭섭했지만, 성장하고 있는 별아가 대견하기도 했다. 자라면서 동심을 떠나보내는 것 또한 통과의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어차피 알게 될 것,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게 더 나을지도 몰라.’
나는 이렇게 별아의 산타클로스를 털어버렸다.
이제 수인이 차례다. 여섯 살 크리스마스에 난생처음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은 녀석은 일곱 살 크리스마스를 잔뜩 벼르고 있다. 여섯 살 땐 산타클로스가 주는 걸 고분고분 받았지만, 이번엔 자기가 정말 갖고 싶은 장난감을 받아내려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인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부자 아냐. 너무 비싼 장난감은 고르지 마,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