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점포 절도욕
“민지 동생이 <세상문구>에서 도둑질하다 걸렸대.”
저녁을 먹는 중에 별아가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민지는 별아의 단짝 친구, <세상문구>는 온갖 문구와 아기자기한 장난감을 파는 무인점포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철우가?”
“응. <세상문구>에 철우 사진이 붙었어. 그래서 아까 민지 울었어.”
“민지가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네. 철우도 상처받았을 텐데, 큰일이다.”
<세상문구>는 동네에 딱 하나뿐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문구점이다. 슬라임, 포켓몬스티커처럼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끄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참새가 그냥 지나치기 힘든 방앗간 같은 곳이다. 주인 없는 무인점포라 그곳을 찾은 참새 어린이는 맘껏 놀다갈 수 있다.
생긴 지 2년쯤 된 <세상문구>에서는 때때로 도둑질이 일어난다. 주인은 없지만 무인카메라가 지켜보는데도 말이다. 안타깝게도 도둑은 모두 아이들이다. <세상문구>에서는 물건을 훔친 사람의 사진을 가게 안에 붙여놓는데, 아직까지 어른의 사진이 붙은 적은 없었다.
사진에서 도둑의 눈은 검은 선으로 가려진다. 하지만 금방 정체가 탄로난다. 옷이나 책가방은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진을 본 아이들은 옷이나 책가방을 단서로 도둑을 단박에 알아낸다. 이튿날 그 정보는 소문이 되어 반달초등학교에 쫙 퍼진다. 동네에 초등학교는 반달초등학교 한 개뿐이고, <세상문구>는 반달초등학교 뒤에 있다. <세상문구>의 주 고객 및 단골 고객은 반달초등학교 어린이들이다.
별아가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3일 안에 연락 안 주면, 경찰에 신고한대.”
도둑의 사진에는 늘 그와 같은 내용의 문구가 쓰여 있다. 주인이 아이의 부모와 변상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내거는 조건이다.
나는 별아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고 미소 띤 얼굴로 대꾸했다.
“민지 부모님이 알아서 잘하실 거야. 너무 걱정 말고, 민지 잘 위로해 줘. 철우 만나면 평소처럼 밝게 인사해 주고.”
“응, 안 그래도 민지 위로해 줬어. 별일 없을 거라고.”
나는 칭찬의 뜻으로 별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인점포는 창업을 꿈꾸는 서민에게 좋은 기회다. 창업자금이 적게 들고, 운영도 편하고, 투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용객에게도 이점이 많다. 보통 24시간 점포를 열기에 아무 때고 드나들 수 있고, 주인이 없기에 편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주인과 손님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상점이다.
다만 몇몇 몰지각한 이용객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주인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기물을 부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매장 안을 더럽히거나 심지어 용변을 보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말이다. 언론에 소개된 이 사례들의 주인공은 모두 어른들이다. 간혹 청소년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들도 어린이는 아니다. 말 그대로 이들은 하나같이 ‘몰지각’하다.
그렇지만 <세상문구>에서 물건을 훔친 어린이들은 몰지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본능에 이끌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거다. 한문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견물생심(見物生心)’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 맘에 드는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현상은 어른이나 어린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어른은 그 마음을 어린이보다 좀 더 다스릴 수 있을 뿐!
<세상문구>를 찾은 아이들 가운데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약한 몇몇 어린이가 물건에 손을 댔겠지 싶다. 주인이 없으니 갖고 싶은 마음에 더 휩싸였을 거다. 갖고 싶은 마음에 꽂힌 상태에서는 무인카메라가 지켜본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다. 잊지 않는다 해도 나중을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 그게 어린이다.
<세상문구> 주인을 탓할 수는 없다. 주인에게 <세상문구>는 생업이다. 물건을 도둑맞는 건 생계를 위협받는 일이다. 먹고살려면 도난에 대해 변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아쉬움은 살짝 남는다. 옷과 책가방도 모자이크 처리해 주면 좋을 텐데……. 도둑질이 주위에 알려질 아이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 주면 좋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해도 역시 제3자의 입장에서 주인을 손가락질하는 건 곤란하다. 무인점포 특성상 점포에 해를 입힌 사람을 찾아내기는 참 힘들다고 한다. 일일이 경찰에 신고하기도 힘든 노릇이고. 주인도 이를 잘 알기에 깊은 고민 끝에 아이의 사진을 붙이는 방법을 생각해냈을 거다. 소문의 힘으로 아이를 압박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리라 믿는다.
무인점포가 늘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무인점포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각별한 관심과 지도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무인점포는 어린이의 ‘무인점포 절도욕’을 부추긴다.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한 아이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민지 동생 철우 일이 있고 며칠 뒤 별아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너도 <세상문구> 갔을 때 훔치고 싶다는 생각 든 적 있었어?”
별아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훔치는 것까진 아니지만 너무 갖고 싶어서 힘든 적은 있어.”
아찔했다. 내 딸도 무인점포 절도욕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구나!
철우 일은 부모가 변상함으로써 잘 해결되었다. 하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별아, 민지, 철우는 동네 놀이터에서 종종 놀곤 했는데, 일주일 넘게 민지 남매가 자취를 감춘 거다. 놀이터에서 받을 다른 아이들의 따가운 눈총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민지는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느꼈는지 학교 상담선생님에게 상담도 받았다.
열흘 정도가 지나서야 남매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