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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송이 Nov 15. 2023

시>불의 시작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을 글감으로 썼던 시를 올려 봅니다.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송구한 마음으로...



불의 시작

― 그날, 불이 어두운 지하철도를 달렸다.      

 


   열차 안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늙은 광대처럼 파닥거리며 기름먹인 불씨를 뱉었다

   졸던 아이가 고개를 떨굴 때 불은

   젊은 엄마의 종아리를 타고 올랐고

   어둠은 그때를 틈타 출구를 폐쇄했다

   목소리들이 철문을 두드리다 타들어 갔다

   사랑해, 불타는 입술을 빠져나온 한마디는 

   송화기를 타고 나가다 녹아 내렸다

   검은 연기가

   가물거리는 눈동자들을 삼켜버렸다     

  

   새는 광장으로 날아갔다, 가서  

   “평생 불을 먹고 살았다,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울부짖으며 바람 속을 뒹굴었다

   그러나 장기를 두던 노인들도   

   서로의 입속에서 혀를 굴리던 연인들도 

   알지 못했다

   불은 어디서 오는가를, 왜 그 뜨거운 씨앗은      

   체온이 있는 것들의 가슴 속에      

   둥지를 트는가를     

 

   새가 날개를 접은 뒤에도

   울음은 열대야처럼 광장을 울렸지만

   노인들은 귀를 막고 장군 멍군을 외쳤다,

   연인들은 나비처럼 꽃밭으로 달려갔다

   그 밤,

   달은 철없는 아이의 눈 속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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