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참 똑똑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할 필요도 없이 내 몸의 기능이 일정하게 조절되죠.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구성된 자율신경계에 의해서 말입니다. 교감신경은 위급상황에서 신체가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힘을 만들어 냅니다. 대표적으로 심장 박동, 혈압, 혈당량을 증가시키고 폐 세기관지를 이완시키는 등의 작용이 있죠. 부교감신경은 위기에 대비해 신체의 에너지 이용을 최소화하여 에너지를 보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감신경과 반대로 혈압, 심박수, 호흡수를 정상보다 낮은 상태로 조절합니다. 이처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내 몸 내부의 상태와 내가 처한 외부환경에 따라 필요한 작용을 하므로, 둘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겠죠.
안타깝게도 나의 자율신경계는 부교감신경이 종종 과도하게 일을 해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게 조금 불편한데 크게 탈이 나지는 않는 정도이기 때문에 특정한 병으로 진단하고 치료하지는 않으니, 그냥 건강관리를 잘하면 된다고 대략 20년쯤 전에 병원에서 들었습니다. 요즘에도 그렇게 진단하는지는 모르겠네요.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내 경우엔 그때 병원에서 들은 말이 맞았습니다. 가끔 심하게 어지러우면서 그로 인한 증상 몇 가지가 딸려 나타나는데 잠깐 참으면 사라집니다. 보통은 몸이 축 처지는, 매우 게으른 상태가 되는 정도입니다. 특히 어둡고 조용하면 부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됩니다. 깊은 물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사방에서 물이 내 몸을 누르면서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그럴 때면 커피를 마셔서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 심박수를 높이고 뜨개질처럼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을 일부러 찾아서 해야 합니다. 막상 뭐든 하면 또 아무렇지 않게 하니까요. 왜 여태 뭉개고 있었나 싶고요. 무엇보다도 좋은 방법은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바람을 쐰다고 하죠.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국어사전인 우리말 샘에서도 “바람 쐬다”는 관용구의 뜻을 설명하면서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는 표현을 딱 붙였네요. 바람을 쐬면 기분전환이 됩니다. 워낙 대기질에 둔감해서 미세먼지 농도는 느끼지도 못하고, 어느 정도 덥거나 추운 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매일 다니는 길이라 익숙하거나 마땅히 볼거리가 없는 동네여도 좋다고 다닙니다. 걷기 체질이죠. 특히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면 더 좋습니다. 햇볕을 받으며 걷다 보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고 어디를 가볼까, 뭔가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나에게는 겨울이 세상 쓸모없는, 버리는 계절입니다. 부교감신경이 필요 이상으로 아주 열일을 하니까요. 볕이 잘 들지 않고 코끝이 시린, 분명히 공기는 색이 없다는 걸 알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것처럼 보이는 집 안에서 담요를 덮고 웅크린 채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카페인도 소용없고 뜨개질은 그때뿐이고, 볕 좋은 낮 시간에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면 좋겠지만 거리 풍경도 서늘해서인지 의욕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사람도 혹시 겨울잠을 자는 경우가 있는지 의학논문을 찾아보라고 했을 만큼 겨울에 유난히 무기력하죠. 나는 그게 다 부교감신경 때문이라고, 또 내 부교감신경이 그러는 건 다 햇볕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봄이 오면 환장할 수밖에.
그렇다고 봄볕만 좋은 건 아닙니다. 지난 2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면서 내 평생 하늘을 본 시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하늘을 보았네요. 거의 매일 밖에서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란 날이 있고 파란색이 거의 없는 날도 있고, 새하얀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는 날이 있고 구름이 거의 없는 날도 있습니다. 비가 왔다가 그친 날은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분홍색과 회색이 얼룩지는 멋진 저녁노을을 볼 수 있더군요. 가끔은 구름을 따라 걷습니다. 구름이 수증기 덩어리이고 그래서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구름이 흘러 다닌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권적운, 권운, 적운, 적란운, 오래전 과학시간에 배운 구름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늘 좋습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에 햇볕을 받으며 바깥에서 걷고 있다는 자체가 큰 행운이죠. 어렵지 않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니까요.
어느 계절이든 매일 잠깐씩 하늘을 보고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단축되었던 수명 중에 일부는 복원돼서 조금 더 살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학교에서 배우고 시험에도 나왔었는데 그게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자율신경계에 대한 설명에, 덜떨어진 부교감신경을 커밍아웃하면서까지 이렇게 구구절절이 얘기하는 건 봄볕을 위해 변명을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속담이 있죠. 네, 속담. 옛날 말. 요즘 어린 사람들은 이 잔인한 속담을 못 들어봤을 수 있지만 가을볕에 비해 봄볕에 자외선이 훨씬 많은 건 사실이라고 합니다.
아주 어릴 때,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이 속담의 뜻을 알고 나서 나름 충격을 받아 골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만으로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혼자서 한참 생각했죠. 시어머니는 정말로 며느리가 미워서 그런 걸까, 누군가는 밭일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던 걸까, 그렇다면 딸도 같이 내보내지 왜 며느리만 내보냈을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아니, 아들은 뭐하고? 거봐, 일부러 그랬네, 정말 너무하네. 얼굴도 모르는 시어머니가 야속하고 원래 사람이 다 그런 거구나 싶고 내가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하는구나 싶었죠. 그렇게 내 속에 염세주의의 싹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봄볕은 독, 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뜨끔했지만 오늘도 걸어 봅니다. 수백 번은 걸어 다녀서 욀 것 같은 풍경들도 태양의 고도와 방향에 따라, 대기의 온도와 바람에 따라 매번 다르게 보입니다. 봄볕은 옅은 노란색이네요. 알아요, 공기는 색이 없다는 거. 그렇지만 봄볕에는 분명히 노란 기운이 있습니다. 봄볕을 받고 있으면 연노랑의 따뜻한 망토를 두른 것 같은 온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자외선 걱정은 다 잊어버리게 되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봄이 아쉽게도 너무 짧네요. 올 해도 눈치게임에 실패해서 트렌치코트를 한 번도 못 입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남부지방은 벌써 한낮에 여름 기운이 느껴지고 있지만 아직은 5월이고 봄이라며 한 줌이 아쉬운 봄볕을 즐겨봅니다.
오랜만에 동네 공원에 갔더니 나무마다 초록이 무성합니다. 그중에 키 작은 매화나무가 양 옆에 늘어선 짧은 길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의 눈이 참 신기해요. 키 큰 나무들 천지인 공원에 있으니 오히려 키 작은 나무가 눈에 띄다니 말이죠. 낮은 나무터널 아래를 지나가 봅니다. 발에 무언가 밟혀서 보니 매실이군요. 그제야 눈앞으로 늘어진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매실이 보입니다. 아, 지난 3월 초에 짙은 분홍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 터널을 만들었던 매화나무길입니다. 그때 이 꽃길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무심코 공원을 가로질러 가던 사람들도 다가가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으니까요. 매화터널 안에서도 가장 꽃이 풍성하고 길이 꺾이면서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지점에서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었죠.
매화나무 열매가 매실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진분홍 꽃이 흐드러지던 나무에 매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게 참으로 새삼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작은 내 키에도 눈앞으로 가지가 늘어져 매실 열매의 솜털이 다 보이는 게 신기하고요. 몇 년 동안 매실청을 담가 먹어서 매실 보는 게 익숙한데 말입니다. 택배 상자에 담긴 청과물 매실과 공원에 오솔길을 만들고 있는 매화나무에 달린 매실은 다르게 느껴지는군요. 진분홍 매화터널도 진초록 매실 터널도 다 봄볕이 만들어낸 거죠. 이쯤 되면 봄볕이 좀 억울할 만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