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마당이 있습니다. 작고 볕이 잘 안 들지만 평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그토록 원했던 마당입니다. 나에게 집은 당연히 “단독주택”이었죠. 면적이나 방의 개수 같은 조건들은 상관없이 대지 하나에 집 한 채, 한 가족 단위로 생활하고 마당이 있는 주거시설 말입니다. 아파트공화국에 살면서도 아파트를 내 집으로 꿈꿔본 적이 없습니다. 단독주택도 아파트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장단점을 비교해서 생각했던 게 아닙니다. 주거시설의 여러 가지 유형 중에서 단독주택이 가장 좋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당연하게 집이라면 응당 단독주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내가 단독주택에 사는 건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그 때쯤 전세계약이 끝나면서 17년 살았던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보자 했는데 마침 이 집이 있었습니다. 충동적이었고 마당 있는 집에 산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서 가능했습니다. 내 예산으로 가질 수 있는 마당은 아주 작지만 그거라도 갖기 위해서 그만큼 작고 매우 낡은, 썩어 간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집을 감당하면서 말이죠. 우리 집의 네모반듯한 마당은 두 면이 집의 건물에, 두면이 담장에 둘러싸여 있는데 담장이 꽤 높아서 햇볕이 깊숙이 닿지 못합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땐 마당에 빛이 잘 들지 않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공간 안에서 채광ㆍ통풍과 보안ㆍ프라이버시를 구현하는 방식은 서로 상충하게 됩니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는 둘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중요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담장을 높게 만든 게 아니라, 원래 담장이 높았는데 그걸 받아들인 것이죠. 지금은 마당의 제일 안쪽 구석에 앉으면 담장이 이웃 건물을 완벽히 가려줘서 안심이 되고 좋습니다. 깊은 욕조 안에 들어앉은 느낌이랄까요, 마음이 편안합니다. 다만, 볕이 부족해서 웃자라는 식물들한테는 진심으로 미안하고 힘겹게 피어난 꽃들이 금방 지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원래는 작은 마당의 3분의 1 정도를 전 집주인이 만든 수경시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담장 중간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도록 큰 돌을 쌓고 시멘트로 붙여서 돌 위로 물이 흐르다가 바닥에 작은 연못처럼 고이도록 만들었는데, 방치된 지 오래되어 고인물이 썩어 있더군요. 말이 수경시설이지 물이 흐르고 고이는 부분은 작고, 어떻게 옮기고 붙였는지 모르겠다 싶게 큰 돌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거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없는 게 낫겠지만 철거를 하려면 비용도 크고 담장이 붕괴될 위험도 있어 보여서 썩은 물을 빼내고 그 자리에 흙을 채워 꽃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3분의 2 정도를 채우고 가장자리부터 식물들을 조금씩 심었죠. 새로 식물을 심을 때마다 흙이 더해지고 돋워져서 지금은 꽉 채웠네요. 나의 사랑하는 꽃밭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집에 살면서 네 번째 봄을 나고 있습니다. 올 해엔 아무것도 심지 않았네요. 그동안 심었던 몇십 종류의 초목류와 초화류 중에서 두 번, 세 번의 겨울을 버티고 살아남은 몇몇 친구들이 꽃을 피워주고 있습니다. 볕이 적게 들기 때문에 담장 바깥보다 늦게 봄을 맞았지만 금방 초록이 풍성해지고 서로 다른 꽃들이 순서대로 피었다 지고 있죠. 네 번째 보는데도 신기하네요. 지난 3월 중순에 아직 바닥의 흙이 보이는 엉성한 꽃밭 가운데에서 맨 처음 짙은 보라색의 크로커스 한 송이가 피었을 때부터, 매일 눈 뜨자마자 마당을 내다보면서 어떤 꽃이 더 피고 새로 피었는지 살피는 게 일과가 되었습니다. 나 물 마시기 전에 꽃밭에 물을 먼저 주는 것도 그렇고요.
언제 심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크로커스 두 송이는 피자마자 꽃샘추위와 함께 내린 찬 비를 이틀 동안 맞고 바로 시들었습니다. 마음 아팠지만 바로 수선화가 피어서 반가웠고 이후로 튤립, 영산홍이 연달아 피었네요. 심지 않았는데 바람에 씨앗이 날아와 뿌리내리고 자란 것으로 생각되는 단풍도 있습니다. 이것도 인연이니 오래 같이 살자며 단풍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죠. 사람으로 치면 예쁘게 생긴 젊은 선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느 사극의 잘생긴 주인공 이름을 따 “남선호”라고 부릅니다. 성이 “남”이고 이름이 “선호”, 그렇습니다. 그런데 막상 옛날에는 단풍의 색이 변하는 것이 변절과 같다고 여겨져서, 변치 않는 굳은 절개를 숭상하는 선비들에게 단풍은 기피대상이었다네요. 괜찮습니다. 핵심은 선비가 아니라 잘생긴 주인공이니까요.
선호가 우리 집에 찾아온 후 주변에 단풍나무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죠. 의외로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옆집의 담벼락 모퉁이에 있는 듯 없는 듯 납작하게 붙어서 살고 있는 단풍나무가 있더군요. 아마도 집주인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 닿아 불편하지 않도록 가지를 많이 쳐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선호의 엄마인 것 같아서 지날 때마다 잘 있는지 보게 되네요. 선호는 우리 집 마당에서 세 번째 봄을 맞으며 지난 한두 달 새에 부쩍 풍성하게 자랐습니다. 우연히 날아온 씨앗이 뿌리내린 탓에 꽃밭 가장자리에 걸쳐 서 있는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제법 튼튼하니 자리를 옮겨도 충격을 잘 견뎌낼 것 같았습니다.
선호를 담장 바로 앞, 커다란 돌을 배경으로 멋진 모습을 뽐낼 수 있는 자리로 옮기는데 이미 뿌리를 깊게 내린 상태여서 거의 뽑다시피 했습니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친구를 괜히 괴롭히기만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풍성했던 잎들이 다 시들해졌네요. 마음 아프지만 추운 겨울을 버티고 봄기운을 얻어 힘껏 뻗어낸 가지를 많이 쳐내야 했죠. 그렇게 뿌리의 부담을 줄여줬는데도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호,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고생만 하더니. 미안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준 게 없는데도 혼자 잘 자라주었듯이 결국엔 버티고 살아날 거라고 믿을께.
지금, 4월 중순에는 수선화와 튤립은 다 지고 라일락이 한창 꽃을 피우는 중입니다. 작은 별을 뿌려놓은 것 같은 라일락 꽃 뭉치가 말도 못하게 예쁩니다. 많지도 않은데 향기로 마당을 다 채우고요. 그런데 그건 마당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네요. 나는 원래 달리아나 러넌큘러스처럼 크고 화려한 폼 플라워(Form Flower) 종류를 좋아하는데, 라일락을 이렇게 사랑하게 된 건 향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꽃밭이 좁아서 백합이 예쁘게 핀 라일락을 조금 가리고 있는 게 아쉽지만, 기특하게도 우후죽순 같은 속도로 솟아오르고 있네요. 머지않아 백합은 제일 높은 곳에서 제일 큰 꽃 네 송이를 피워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낼 것입니다. 모습도 향기도 강렬하죠.
라일락보다 먼저 피었던 분홍색 영산홍은 이제 절정을 지난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미니장미가 봉오리들을 바짝 세우고 있으니 영산홍 다음을 기대해도 되겠네요. 작은 여왕이 여름 꽃밭을 책임지고 나면 가을엔 국화가 피겠지요. 늙어서 뻑뻑한 무릎이 쑤시고 얼마 안 되는 근육이 온통 뻐근한데도 꽃밭 앞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서 꽃들을 바라봅니다. 가끔 마당 제일 안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기도 하죠. 개미들이 옆에서 기어 다니고 커피 잔에 무언가 빠지는 걸 본 것 같지만 괜찮습니다. 마당에 나가기 힘들게 덥거나 비 오는 날씨엔 마당으로 나가는 유리문 앞에 앉아서 바라봅니다. 그냥 이유 없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창 너머로 바라봅니다. 바람이 불면 꽃밭 전체가 윤슬처럼 일렁일 때 담장에 늘어진 마른 아이비가 내는 바스락 소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요!
정말로 손바닥만 한 꽃밭인데 앞에 앉으면 한 시간이 훌쩍 갑니다. 시든 꽃과 잎을 정리하고 햇볕이 골고루 들도록 가지치기를 하고, 그래도 꽃밭 친구들이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으면 자리를 옮기고. 생각나는 대로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언젠가 한 여름에 머리 꼭대기에서 찍어 누르듯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받으며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꽃밭을 정리하다가, 문득 내가 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몸은 온갖 데가 쑤시고 맨 손에 상처가 나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고 있더군요.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라고, 몇 번 하다 보면 귀찮아질 거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