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히어로

by 정오월


마당 생활 이제 4 년 차, 아직 꽃밭을 배우는 중입니다. 물건을 사도 사용설명서를 안 읽고 조작 먼저 해보는 나는 꽃밭도 막무가내로 가꾸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독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꽃시장이나 동네 꽃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무작정 사서 심은 다음 최소한의 관리만 하면서 잘 자라는지 지켜봅니다. 보통은 계절에 따라 적당하다 싶은 만큼 물을 주는 것 외에 딱히 하는 게 없죠. 식물들이 역경을 겪어봐야 강인해질 것 같아서 가끔 미니 가뭄 체험을 시켜주고, 흙에 양분을 보충해주려고 봄가을에 두세 번씩 드립 커피 만들고 남은 원두찌꺼기를 바짝 말려서 뿌려주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다 대충 감으로 하는 거라서 뭐가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과 같은 상태로 살아보라고 손도 안 대다가 반대로 반려동물처럼 매일 만지고 다듬어 주기도 했습니다. 작은 포트 4개를 심은 것으로 기억하는 국화가 몇십 그루가 되어서 1미터 높이까지 자라 휘청거릴 때, 아이비가 담벼락을 뒤덮으며 타고 올라 집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때에는 조금 무서웠습니다. 한참을 방치했다가 무성하다 싶으면 삭발에 가깝게 잘라내는 게 기본 패턴이 되었네요. 봄이 되면 꽃밭 관리의 시작으로 가지치기를 했었는데, 그게 지난가을에 애써 올라와 힘들게 겨울을 버텨낸 꽃가지를 싹둑 잘라버린 거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죠. 어쩐지 방치하면 꽃이 잘 피고 손대면 잘 안 피더니 말입니다.

무작정 심는다고 했지만 이왕이면 꽃밭의 전체적인 모양새를 좋게 하는데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크고 가지가 풍성한 나무 종류는 뒤에 작은 꽃들은 앞에 배열하면서도, 화려하고 눈에 띄는 꽃이 가운데에 있으면 좋겠죠. 그 와중에 볕을 잘 받아야 하는 친구와 덜 받아도 괜찮은 친구를 고려해야 하고요. 심을 때 이런 원칙들을 생각은 하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결과가 의도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자라는 모습을 봐야만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가끔 과감하게 자리를 옮겨 줍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뿌리와 주변의 흙을 같이 퍼내려고 해도 좁은 땅에 다닥다닥 심겨 있기 때문에 뿌리가 잘는 일이 다반사네요. 잔뿌리가 뜯어지면서 “두두둑” 소리가 날 때는 정말이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해살이 식물이 혹시나 더 오래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정말로 한 해만 살더군요. 실내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식물이라도 남부지방이라면 밖에서 월동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조금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기도 합니다만, 나는 항상 진심이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사랑하는 달리아가 생명력이 그렇게 강하다는데 왜 우리 집 꽃밭에선 심기만 하면 바로 시드는지, 작년에 꽃을 안 피운 튤립이 올 해엔 어떻게 세 송이나 피었는지. 앙상한 겨울 꽃밭을 보며 다 망했구나, 하는데 봄이 되어 초록이 솟아 나오는 걸 보면 여전히 기적 같습니다. 라일락이랑 장미는 왜 이렇게 잘 자라고 꽃도 알아서 척척 피울까요. 볕도 적고 해주는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과외 한 번 안 하고도 공부 잘하는 내 새끼처럼 기특하기만 합니다.


그저 결과를 보고 유추해 보는 정도입니다. 손바닥만 한 꽃밭인데 우주만큼이나 어렵군요. 다행히 지금 5월엔 자주색 미니장미가 활짝 피었고, 다홍색의 큰 장미는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가을에 자리를 잡아준 후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정착한 듯합니다. 그런데 이제 장미꽃에 익숙해진 걸까요, 자꾸 괭이밥 꽃에 눈이 갑니다. 네, 흔하디 흔한 괭이밥이요. 지금까지 살면서 본, 열심히 찾아본 게 아니라 그냥 눈에 띄어서 본 게 몇백만 개는 족히 될 것 같은 그 괭이밥 말입니다. 당연히 내가 심은 건 아니고 그냥 어디선가 날아와 마당 구석구석에서 불쑥 자라나는데 지금까지는 꽃을 이렇게 존재감 있게 피운 적이 없었죠.



괭이밥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어렸고 “괭이”라는 말에 곡괭이, 정확히는 누군가가 곡괭이를 휘두르는 이미지가 떠올라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고양이를 뜻하는 괭이라고 알려주었지만 그때는 고양이도 무서워했기 때문에 여전히 무서운 이름이었죠. 진짜로 고양이가 먹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고양이의 밥”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귀엽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곡괭이도 고양이도 무섭지 않기 때문이겠죠. 고양이가 괭이밥을 먹는 건 내가 본 적도 없고 누군가 봤다고 하는 얘기도 못 들어봤지만, 괭이밥을 먹은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 심지어 나도 먹었죠.


엄마는 괭이밥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줄기와 잎을 씹으면 신 맛이 난다고도 했습니다. 나는 신 걸 안 좋아하고 길에 있는 괭이밥에 흙먼지도 묻었을 테고 또 나는 그 이름도 좀 무서우니까 굳이 그걸 먹어볼 생각은 없었죠. 내 맘을 다 알고 있는 엄마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괭이밥 두 개를 따서 하나를 엄마 입에 넣고 하나는 나에게 건네줬을 때, 나는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닌 척하려고 엄마를 따라 웃으면서 입에 넣었던 것 같습니다. 괭이밥은 질기지 않았고 옅은 풀 맛과 함께 신 맛이 났습니다. 맛있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재밌었고요. 흙먼지를 먹어서 께름칙한 걸 빼면 말이죠.


알고 보니 동네 아이들 대부분 엄마 아빠한테 괭이밥이 신맛 난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몇 번쯤 다 같이 쪼그리고 앉아 괭이밥 시식을 했는데 맛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소꿉놀이할 때 요리 재료로 주로 썼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를 풀죽 먹으면서 보릿고개 넘긴 옛날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망설였는데, 모르는 척 하기엔 기억이 너무 선명하네요. 어쨌거나 보릿고개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얘기입니다. 나는 보릿고개까지의 옛날은 아니고 괭이밥을 먹어본 정도의 옛날 사람입니다. 문득 요즘의 아이들은 괭이밥이 신 맛 나는 걸, 아니 괭이밥 자체를 알까 궁금해지는군요.



우리 집 꽃밭이 정말 작지만 맨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식물이 가득 차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을에 처음으로 심기 시작해서 겨울을 나고 봄에 또 채우고 여름을 지나 다시 가을이 될 때쯤이 돼서야 초록이 제법 풍성해졌으니까요. 그때까지 맨 땅이 드러나는 부분을 볼 때마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잡초라도 생겨나 초록빛으로 덮었으면 했습니다. 괭이밥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넓적하고 예쁜 잎이 땅을 덮으면서 가끔 노란 꽃도 피고, 또 어떤 건 잎이 붉은데 그것도 보기 좋으니까요. 무엇보다 돌봐주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은 대안이었습니다.


한동안 길을 걸을 때면 바닥에 괭이밥이 있는지 살펴보곤 했습니다. 가져다가 우리 집 꽃밭에 심을 만한, 아무도 내 거라고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을 게 분명하면서 쪼그리고 앉아서 캐는 모습을 들킬 염려가 없고 행여나 들키더라도 딱히 이상해 보일 건 없는, 그런 곳에 있는 괭이밥을 찾았죠. 결국 실패했습니다. 소심하고 순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길에 난 괭이밥을 캐다가 반드시 들킬 것 같고, 공공재산을 도둑질한다는 비난받을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려 시도조차 못 해봤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괭이밥이 있는데 가질 수 없다니, 차라리 어디서 씨앗이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나 봅니다. 괭이밥을 키우고 싶은데 모종을 어디서 파냐는 질문이 네이버 지식인에 있네요.



올봄 우리 집 꽃밭에 괭이밥 꽃이 눈에 띄게 핀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키가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땅 위에 납작 엎드려서 자라는 괭이밥만 봤고 노란 꽃이 예쁘긴 해도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죠. 작년까지 우리 집 꽃밭에 살던 괭이밥도 다들 그랬습니다. 괭이밥이 꼿꼿하게 서서 자라니 키가 이삼십 센티미터 정도가 되네요. 그러니 볕도 잘 받고 꽃을 잘 피운 게 아닌가 싶고, 덕분에 매일 관찰하듯이 괭이밥을 지켜봅니다. 하트 세 개가 모여 있는 것처럼 생긴 잎이 우산처럼 접혔다가 펴졌다가 한다는 걸, 잎이 절대로 물에 젖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죠.


노안 때문인지 작은 것들은 노력해야 볼 수 있습니다. 꽃밭에 물을 주고 나서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에서 보니 괭이밥 잎이 보송보송합니다. 물을 골고루 안 줬구나 하면서 그 위에 물을 뿌렸는데 한 방울도 머금지 않고 다 떨구네요. 어찌나 기특한지요. 고 작은 게 사는데 유리하고 필요해서 그런 기술을 터득했다니 말입니다. 예쁘게 잘 자란 괭이밥을 잘라서 병에 꽂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괭이밥도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고. 잠시 고민하다가 하루라도 더 오래 보려고 그냥 두었습니다. 어느새 열매가 튼실하게 여물어 있네요. 지금 꽃이 절정이고 이제 시들려고 하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증명사진 찍듯이 사진 찍었습니다.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가면 초점 잡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샛노란 꽃이 새삼스럽게 예쁩니다.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잔뜩 수그리고 보느라 여기저기 뻐근한데도 예쁘네요. 우리 집 꽃밭에 있어서 그런 거겠죠.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려는데 나비가 날아옵니다. 괭이밥 꽃처럼 작고 하늘색의 날개를 가진 나비는 어지럽게 팔랑이면서 날다가 제일 키 작은 괭이밥 꽃에 앉습니다. 조금 더 앉아서 지켜보기로 하죠. 나비가 작기는 해도 괭이밥 꽃에 비하면 무거워서 제법 휘청거립니다. 꽃에 앉은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나비의 심정이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내가 웃고 있네요.


< 괭이밥 노란 꽃에 앉은 하늘색 작은 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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