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에나 있는 어느 누군가
단편소설 [쩨쩨한 히어로 ]
작은 집
몽롱하다. 늦게까지 충분히 잤고 커피를 마신 지 얼마 안 됐는데 정신이 바짝 들지 않는다. 멍하니 노트북 모니터를 보다가 핸드폰을 집어 든다. 뭘 확인하려고 했더라……. 기억이 안 나서 핸드폰을 그대로 책상에 내려놓는다. 다시 노트북 키보드 위에 양손을 살짝 얹어 놓고 눈은 모니터를 보는데 머릿속이 새하얗다. 글을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서는 몇 시간째 노트북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기만 하는 중이다. 당연하지, 꼭 써야 할 것도 없고 딱히 쓰고 싶은 것도 없으니. 마음속에 있는 문장은 하나뿐이다. ‘뭘 쓰지?’
아무래도 이 공간이 문제인 것 같다. 창의력이나 예술적 영감 하고는 영 거리가 먼,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생긴 공간. 내 집이다. 침실, 거실, 주방, 욕실 겸 화장실이 하나씩 있고 마당이 있으며 그 모든 게 다 작은 1층 단독주택. 오래된 저층 주거지역 안에서 드물게 남아 있는 단독주택 중 하나이다. 집의 내부는 이전에 살았던 방 한두 개짜리 다가구주택들과 다르지 않게 생겼다. 좁은 땅을 4층 다가구주택들이 에워싸고 있는 데다가 담장이 높아서 가뜩이나 채광이 좋지 않은데 그나마 있는 창문은 맞은편 건물에서 내려다보기 딱 좋은 위치라 암막커튼으로 항상 가려놓는다. 8월 한여름 낮에도 어둑해서 형광등을 켜야 하는 와중에 천장에서는 열기가 내려온다. 작은집이라고 작은 벽걸이 에어컨 하나만 설치했더니 한껏 달궈진 집안을 골고루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 더운데 뭘 좀 하려고 집중하거나 움직이면 땀이 난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온종일 쌩쌩 틀어 놓자니 전기요금이 무섭고.
돋보기를 한참 썼더니 눈이 뻐근하다. 안경을 벗고 시선을 멀리 두어 눈을 쉬려고 고개를 들어도 집이 좁으니 시선 닿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 자꾸만 몽롱하고 정신이 안 차려지는 게 내 집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영감을 얻으려면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신기술 개발이 생명인 기업들이 업무공간을 테마파크처럼 만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이 좁고 아무렇지 않은 공간 안에서는 더 이상 쥐어짜도 나올 게 없으니 밖에 나가서 걷는 게 좋겠다. 걸으면서 생각을 해야지. 더운 날씨 때문에 나갈 엄두가 안 난다는 핑계로 이렇게 지하실 같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니 글이 안 써질 수밖에. 지금 시각이 오후 5시 반. 불같은 열기는 한풀 꺾였겠다.
산책
집을 나선다. 일몰은 아직 멀었지만 거리 풍경에는 벌써 주황빛이 번지고 있다. 미지근하고 습도 높은 공기가 눅눅하게 옷을 적시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모처럼 쐬는 바깥공기가 상쾌하다. 시야를 넓게 멀리 두니 눈도 시원하고. 어제 비가 꽤 오다가 그쳐서 거리가 깨끗해 보이는 건가 했는데 길가에 불법 주차한 차들이 없어서 그런 거군. 이렇게 좋을 수가. 천천히 걷자. 생각을 정리하면서.
산책의 즐거움은 시작하자마자 깨진다. 몇 걸음 앞에서 개똥 묻은 휴지를 길에 버리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러워 죽겠다는 듯이 손가락 두세 개로 대충 들고 있다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지도 않고 냅다 길바닥에 던져 버렸다. 휴지를 그렇게 버린 걸 보면 개똥도 치우지 않았겠지. 그가 손에 쥔 목줄을 하고 있는 앙증맞은 퍼그는 가만히 서서 꼬리를 흔들며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아마 개가 아니라 아이였으면 휴지를, 그것도 개똥 묻은 휴지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어린이집에서 배운 그대로 그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와 그의 퍼그는 바로 자리를 떠서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있지만 다들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그의 만행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너, 혼 좀 나야겠다. 제대로 반성하고 다시는 쓰레기를 길에 함부로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도록 내가 만들어주마. 저 똥 묻은 휴지를 그대로 저 자의 가방에 넣어 줘야지. 제 손으로 휴지통에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다. 결자해지는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걸어 다니면서 영감을 얻기로 한다. 특별할 거 없는 길에서 무언가 다르게 느껴지면 멈춰서 사진을 찍는다. 회사에 있던 시간에 밖에 다녀보니 익숙한 곳들이 낯설어 보일 때가 있고, 실제로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그걸 못 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얼마 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기록해 두려고. 나중에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최신형도 아닌 핸드폰의 자동모드로 사진을 찍는 데다가 노안 때문에 액정이 잘 안 보여서 감으로 찍는 거지만 나만의 관점과 사유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뭐든 팬시하게 보여야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 눈에는 그저 평범한 사진이겠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멋있게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다시피 하는 앱을 쓰고 보정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자고로 예술이란, 작품에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글은 뭘 써야 하나. 이런저런 단어들이 떠오르긴 하는데 영 맥락이 안 잡힌다. 얕은 감상을 몇 줄 적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고. 쓰는 사람도 자기가 느끼는 게 뭔지 잘 모르는 게 분명한, 단어 몇 개를 나열한 수준인 데다가 그마저도 비문인 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읽기를 너무 안 해서 뭐가 잘 쓴 글인지 알아볼 줄 모르는 요즘 사람들이 그런 걸 ‘감성’이라고 하면서 좋아하고 소비한다니! 사문난적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씁쓸하네.
천천히 걸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자주 멈춰 섰는데도 이제 슬슬 지친다. 한낮만큼은 아니어도 높은 기온과 습도 때문인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흔들리지 않게 자세를 잡고 버티며 셔터를 누를 때에는 숨을 참고 있는 게 제법 힘든 일인가 보다.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의 산책을 마무리해야겠다.
결자해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골목 안쪽에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카페로 간다. 여기 사는 사람들 말고는 이런 동네가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거나 반대로 전국 어디에 가도 이렇게 생긴 동네가 있을 것 같은 정도로 그저 그런 동네인데, 그 사건 이후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골목 깊숙한 곳까지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얼마 전 새로 지은 다가구주택의 1층에 들어선 카페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에 적지도 많지도 않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길에 면하는 벽은 전면유리로 되어 있어서 문 바로 옆의 자리에 앉으니 반쯤은 바깥에 앉은 기분이 들면서 카페 내부가 눈에 다 들어온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바깥공기를 느끼면서 시원한 카페라테를 마시고 있으니 이 순간을 사진으로, 글로 남기고 싶어 진다. 원래 나는 음식 사진을 찍는 게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 못 하는 사람인데 커피잔 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단어 몇 개를 문장으로 정리해 본다. 무언가 막 떠오르는 것 같으면서 사진도 문장도 딱히 그 느낌은 아니다.
그때 그가 카페에 들어선다. 회색 트레이닝복 상하의와 분홍색 야구모자 아래로 등 한가운데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무엇보다도 목줄을 하고 함께 있는 앙증맞은 퍼그를 보니 얼굴은 못 보았지만 그가 확실하다. 그는 카운터 앞에 서서 커피를 주문하며 지갑을 꺼내려고 가방을 열었다가 기겁을 한다. 혐오와 놀라움과 공포가 섞인 한 음절의 비명을 내면서 가방을 던지듯 양손을 떼고 한 발짝 뒷걸음쳤다. 그래 봤자 어깨에 메고 있던 크로스백은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갈 리가 없고 그는 어찌할 줄을 모르는 기색이 역력하다가 그대로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다. 주문을 받던 사람도 앉아 있던 손님들도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정지화면처럼 멈춰서 눈만 깜빡이고 있다. 아마 그와 함께 있던 퍼그도 당황했을 것이다. 오직 나만 평온하다. 아니, 즐겁고 통쾌하다. 커피는 더 맛있어지고 웃음이 절로 나면서 한 편으로는 뿌듯하다. 작으나마 정의를 실현했으므로.
부조리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종이 모양의 하얀 바탕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면서 아까 산책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글 쓸 거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핸드폰을 들고 사진 찍은 것들을 본다. 분명히 인상적이어서 찍은 사진들인데 왜 특별하지가 않은 건지. 다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나열해 본다.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하게 통찰하는 시선, 의표를 찌르는 것들이 없네. 아무래도 요즘의 삶이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 영감을 얻기 어려운 것 같다.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해. 내가 너무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소통의 시대인데, 예술가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자기만의 예술 세계에 빠져 있는 게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인데 말이다. 집 밖으로 좀 더 자주 멀리 나가야겠다. 일단 지금은 TV를 볼까. 뉴스 본 지 오래됐지.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그것도 타이틀만 대충 봤으니.
스토킹 하던 회사 동료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가족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화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목소리를 변조했지만 비통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미 들었던 사건이긴 한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큰일이 날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불합리한 시스템과 안일한 대처로 결국 일어났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는 피의자는 그나마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을 거고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이에게 욕을 먹고 있지만, 괜히 일을 키워서 회사를 시끄럽게 한다고 피해자를 비난했던 동료들과 그 이상은 해줄 게 없다고 물러나 있던 경찰과 법이 원래 그렇다고 피의자 처벌에 소극적인 사법부와 떠들썩한 사건이 있을 때에만 목소리를 내고 막상 아무것도 안 하는 국회도 마찬가지로 욕먹고 혼나야 하는데 벌줄 수 없다는 게 더 화난다. 나에게 더 큰 힘이, 더 큰 능력이 있다면! 이렇게 나쁜 사람들을 죄다 벌주고 다시는 못 그러게 할 수 있다면! 분통이 터져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날 내가 했던 대답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