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주 가끔은 특별하게
단편소설 [ 쩨쩨한 히어로 ]
도서관
두 달 전쯤,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학교도 회사도 그렇게 다니기 싫었으면서 늦지도 빠지지도 않고 몇십 년을 다녔으니 성실함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고, 그래서 회사를 안 다니더라도 빈둥거리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자괴감이 들기 시작할 때였다. 누가 억지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정한 일과인데 그에 맞춰 하루를 보내는 걸 왜 못 하는지, 나는 공부도 일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살아왔던 건지 당황스러웠다. 이것도 못하면서 글을 써서 먹고살겠다는 목표를 어떻게 이루겠는가 싶고, 지금 비록 직장이 없지만 대책 없는 실직 상태는 아니라며 스스로 다독이던 마음이 무색해지고 비참해지려고 했다. 아무래도 회사처럼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 같아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래, 사람이 다 그렇지 뭐. 너무 제약이 없으면 손을 놓게 된다고. 어느 정도의 구속은 있어야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되지 내가 의지가 약하고 게을러서가 아니야. 버스에 앉아서 익숙한 듯 낯선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애매한 시간, 누군가는 레스토랑의 햇살 좋은 창가나 테라스 같은 데 앉아서 여유 있게 브런치를 즐기는 그 시간 도서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대부분 공부를 하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창가나 커다란 테이블의 가장자리처럼 조금이나마 더 여유 있는 자리와 책상 위에 콘센트가 설치된 자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거지. 적당한 데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이전에 몇 줄 쓰다 만 글을 이어서 쓰기로 했다. 역시 집에서보다 진행이 잘 됐다. 중간중간 옆 사람이 노트북 키보드를 말 그대로 ‘치는’ 소리가 거슬리고, 저 멀리에서 시시때때로 한숨을 쉬는데 왜 나한테까지 잘 들리게 하는지 모르겠고, 헤드폰을 써서 제가 내는 소리는 못 듣는 채 요란하게 책을 넘기고 중얼거리며 펜을 연신 돌리는 앞의 옆 사람을 때려주고 싶긴 했지만 그 정도의 분노는 머릿속으로 응징 시뮬레이션을 한 번 돌리고 나서 삭힐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여기까지만 마무리하고, 하면서 배고픈 것도 참고 노트북에 충전된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그대로 앉아 글을 썼다. 뿌듯했다. 모처럼 느껴지는 성취감이랄까.
이제 나가서 잠시 쉴까 하고 고개를 들었다. 뻐근한 목과 어깨를 움직이려고 의식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그 사이 열람실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게 앉아 있고 몇 명은 통로를 천천히 어슬렁 거리며 혹시 빈자리가 있는지, 누군가 일어나려고 하는지 매의 눈으로 찾는 중이었다. 문득 공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 같기도 하고 제법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태양열 같기도 한 그 뜨거운 공기는 무겁기까지 했다. 커지고 커지고 더 커지다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빗방울이 되어 쏟아지기 직전의 비구름 속 수증기처럼, 열람실 안의 공기도 한 방울 한 방울이 커지고 무거워져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열람실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저마다 합격을, 취업을, 또 무언가를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절박함에 짓눌려 있는 것 같았고 그 속에 있는 나도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답답함이 느껴졌다.
옛길
도서관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아마도 한동안은 도서관에 가지 않겠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역시 집에서? ‘해리 포터’의 작가처럼 카페에서? 작업실을 구해야 하나?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 밖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그저 낯설었다. 한낮 더위의 기세가 상당하지만 걸으면서 기분전환을 하기로 했다. 평일 오후에, 해가 높이 떠 있는 시간에 하늘을 보면서 걷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충분히 기분전환이 되고 생각도 정리될 것이다. 주말에 가끔 산책하는 고즈넉한 옛길이 마침 근처에 있었다.
이 동네에서는 가장 큰 길인 4차선의 도로변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린 후, 바로 횡단보도를 건너서 건너편 블록의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옛길을 만났다. 오래된 도시조직과 근대 건축물의 정취가 남아 있는 그 블록 안에는 잎맥처럼 골목길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 주맥과도 같이 블록 전체를 관통하며 중심이 되는 골목길은 차가 다니지 않는 좁은 길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지나치면서 서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는 있다. 길 양 옆으로 돌담이다가 붉은 벽돌담이다가 하면서 담장이 이어지기 때문에 ‘돌담길’이라고 많이 불린다. 주맥과 같은 돌담길 곳곳에서는 측맥처럼 더 좁은 골목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 길들은 막다른 골목이기도 하고 블록 바깥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자랑할 게 별로 없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그 정도면 꽤 그럴듯한 관광명소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늘 오가는 사람이 있고 남의 사진에 찍혀 인터넷에서 떠돌지 않도록 카메라를 피해 다녀야 한다. 그런데 그날, 여름 평일 낮의 돌담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더운 바람이 작게 불어서 담장 위를 가득 메운 담쟁이 잎들이 잔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햇살에 눈을 찡그리고 땀을 흘리면서 혼자 걷다가 문득 이 시간에 내가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고 여기에 서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못 보던 세상을 보니 들뜨기도 하고 발 디딜 데를 찾지 못해 두렵기도 했다. 줄타기처럼.
오랜만에 왔더니 길 중간쯤에 새로 지은 한옥이 있었다. 언뜻 봐도 제법 큰 규모의 신축건물이지만 어색하게 튀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이어온 옛길의 정취를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게 분명했다. 'ㄷ'자 형태로 배치된 한옥은 1층이고 마당이 넓어서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면 키가 작은 사람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이의 담장도 골목길의 풍경과 어울리게 새로 만들었고. 단지 너무 새것의 느낌이 나는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지. 전국 어느 동네에서든 볼 수 있지만 이 블록 안에서는 생뚱맞은 존재일 수밖에 없는 상가건물이나 다가구주택 같은 게 아니라서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남의 부동산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느냐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큰 땅에 이전에 어떤 건물이 어떻게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익숙한 생활 반경 안에 있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인가.
재즈카페
돌담길 끝에서 길을 한 번 건너면 이어지는 골목길. 지도에서 보면 돌담길과 붙어서 하나의 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보면 전혀 다른 길이다. 고즈넉한 옛길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돌담길과 달리 이 길의 양 옆에는 3~5층 정도의 상가건물들이 나란히 붙어 서있다. 길의 폭이 넓어지면서 차가 다니고 어떤 가게에서는 가게 앞에 상품을 늘어놓았고 어느 틈엔 차가 서 있고 사람도 자전거도 섞여서 다닌다. 어수선한 그 길 가운데에 카페가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고농도의 카페인이 절실한 상태가 되어 그 카페로 갔다.
카페 이름이 재즈카페인데 힙합 음악을 틀고 있었다. 카페 안팎을 뒤엎은 그라피티와 레터링 장식의 대부분은 영어단어들이라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이고, 무채색이라고는 벽의 흰 바탕과 바닥 시멘트의 회색뿐인데 그마저도 온갖 알록달록한 것들로 거의 가려져 있으며 그 어디에도 ‘재즈’는 없었다. 마침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바리스타인 사장님 혼자 있는 게 보이니까 들어왔지 안 그랬으면 나 같은 사람은 선뜻 문을 열지도 못했을 저세상 힙이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은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긴 머리가 예수님과 비슷한 정도의 굵기로 구불거리고, 짙은 하늘색 바탕에 커다란 파인애플 그림이 규칙적으로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와 발목까지 닿는 길이의 바지인지 치마인지 분간이 안 되는 하의를 입은 모습이 카페 공간과 무척 잘 어울렸다. 사장님은 세 종류의 원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했는데, 마치 부모가 자식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고 싶지만 어느 한 아이에게 마음이 더 가는 걸 어쩔 수 없는 듯이 한 원두를 조금 더 칭찬했고, 나는 그걸 주문했다. 사장님은 반가워하면서 그날 그 원두를 주문한 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손님이 적었던 건지 내가 유도신문에 걸려든 건지 알 수 없었다.
문 가까이에 있는, 혼자 오는 손님이 눈치 보지 않고 앉기 좋은 자리에 앉으니 사장님이 커피 만드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그라인더를 섬세하게 조정한 후 원두를 분쇄하고 초시계로 시간을 재며 수동 머신을 작동해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드디어 커피를 마시는가 싶은데 사장님이 마셨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라인더를 다시 섬세하게 조정하고 초시계도 조정해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이제는 진짜 커피를 마시는구나 했는데 또 사장님이 마셨다. 아, 그렇게까지 정성 들일 필요는 없고 나는 빨리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사장님은 아까보다 더 크게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에스프레소를 다시 추출해서 드디어 세 번째로 추출한 샷을 나에게 주었다. 처음에 추출했던 게 맛은 있는데 원두가 가진 곡물의 향이 살짝 부족한 듯했고, 기계 세팅을 바꿔 두 번째로 추출했더니 더 별로여서 다시 처음으로 돌린 거라고 했다. 나에게 준 세 번째 추출 샷이 본인이 처음에 맛본 샷과 완벽하게 같을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건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려다가 말았다.
드디어 캐러멜처럼 윤기 나는 크레마가 얹어진 에스프레소를 작게 한 모금 입에 넣고 삼키는 순간 한 커플이 카페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와, 여기 느낌 개 쩐다.”
세상에 표현력 하고는……. 말세다, 말세.
측은지심
집으로 가는 길에는 벌써 서쪽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일몰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고 벌써부터 석양의 붉은빛이 강렬한 걸 보니 노을이 멋질 것 같지만 그걸 보자고 밖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저녁은 뭘 먹을까, 고단하니까 대충, 사실 따지고 보면 도서관에서 세 시간쯤 글을 쓴 것 외엔 한 게 없는데 왜 고단할까, 오늘의 생산적 활동시간은 몇 시간인가, 저녁 먹고 몇 시간을 더 글을 써야 내가 마냥 노는 게 아닌 게 될까……, 같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다시 줄타기를 떠올리며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데 저 앞에서 당황한 채 서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더운 날 커다란 배낭을 메고 그늘 하나 없는 길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어서 누가 봐도 어딘가를 찾는 모습이었다. 할머니에게 다가가면서 나보다 먼저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조금 긴 커트머리는 온통 새하얗고 마찬가지로 하얀 피부지만 주름이며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이며 할머니 연세가 일흔을 훌쩍 넘을 것 같은데, 혼자서 여행을 하는지 얼굴도 입고 있는 분홍색 폴로셔츠도 땀으로 흠뻑 젖어 지친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한양극장이 어디에 있어요? 오는 길에 만난 사람이 이 근처라고 알려줘서 버스 타고 여기까지는 왔는데 도무지 찾지를 못하겠어요. 너무 덥고. 빨간 벽돌집이 모여 있고 그림도 멋지게 그려져 있는 길이 근처에 있던데 찾지를 못하겠어요. 내가 티비에서 봤거든요. 해가 지기 전에 보고 기차 타고 집으로 가야 되는데. 오늘 너무 더웠어요.”
할머니가 찾는 곳이 한양극장인가 싶어서 지도 앱에서 검색했는데 없었다. 빨간 벽돌집이 모여 있고 그림이 그려진 길은 도무지 어딘지 짐작이 안 되고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잠시 서 있기만 해도 힘들 것 같은 할머니가 몹시 지친 상태로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자 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할머니에게 몇 번을 다시 물어도 할머니가 찾는 곳의 지명을 정확히 알 수는 없을 테니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가보면 좋을 곳을 알려드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이 도시에서 길이라고 하면 돌담 길뿐이니까.
“할머니가 찾으시는 곳이 맞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근처에서 일부러 찾아갈 만한 길이 하나 있거든요. 이 쪽으로 와보세요. 길을 알려드릴게요.”
할머니가 중간에 길을 잃을 가능성이 없을 위치까지 할머니와 함께 걸어갔다. 이 정도의 친절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겠지만 평소의 나는 모르는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너 왜 착한 척이야?’ 했고 나 혼자 뜨끔했다.
“저 앞에 차가 다니는 길이 보이시지요? 그 길 따라 왼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돌담길 표지판이 있을 거예요. 그 표지판 따라서 가시면 돼요.”
할머니는 친절하게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잘 찾아가서 무사히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가셨다. 돌아서 집으로 향해 가는데 할머니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길에 서서 다른 누군가에게 지도에도 없고 웹에서 검색할 수도 없는 어딘가를 물어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무거워 보이던 배낭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울리지 않는 친절이 어색해서 중간에 돌아선 내가 답답했다. 결국 집 앞에서 걸음을 돌려 돌담길로 향했다. 할머니 걸음이 느리고 많이 지쳐 있으니 그 새 멀리 가지는 못하셨을 거다. 그래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덥고 피곤했지만 달리다시피 했다. 숨이 차고 땀이 나면서 마음은 편해졌다. 어쨌든 돌담길에 가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고 할머니가 찾던 곳이 돌담길이면 다행이고, 아니면…… 아니면 시원한 음료수라도 하나 사 드리지 뭐.
마침내 돌담길에 도착했다. 하얗고 커다란 태양이 저 멀리 낮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 아래로 막 떨어지려는 중이고 하늘의 주황빛은 아까보다도 더 넓고 진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걸으니 저 앞에 할머니가 보였다. 돌담길 가운데 있는 새로 지은 한옥의 담장 앞에서 뚫어지게 담장을 바라보느라 내가 다가가는 것도 전혀 모른 채, 할머니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