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담장의 그림을 보고 있었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다가가서 할머니 뒤쪽에 섰다. 몇 시간 전에 이 앞을 지나면서 나는 그저 벽에 그림이 있구나 하고는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한옥 건물과 비슷하게 주황빛이 도는 붉은 벽돌을 쌓은 담장의 가운데 부분에 병풍처럼 여섯 개의 벽화가 나란히 붙어 있다. 3절지 정도 크기의 하얀 화선지 위에 그린 수묵담채화 같은 벽화를 보면서 할머니가 찾던 ‘길에 멋지게 그려진 그림’이 이거였나 싶어 조금 허무했다. 도시재생사업 같은 걸 한다면서 골목길에 커다랗게 페인트로 그려놓은 건 줄 알았지 진짜 그림이었을 줄이야. 그래도 아까 지나면서 자세히 들여다봤더라면 할머니가 어디를 찾는지 바로 알아들었으려나, 나중에 다시 와서 벽화를 자세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할머니가 뒤돌아봤다.
“나 걱정돼서 쫓아온 거예요? 여기 못 찾을까 봐? 잘 왔어요. 와서 이 길 따라서 쭉 걸어갔다가 다시 와서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다 봤어요. 너무 멋있어서 사진도 다 찍어놨어요. 사진 다 찍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봤어요. 그런데 나 걱정돼서 다시 왔어요? 세상에, 고마워요. 친절하게 알려주고 이렇게 살펴주고.”
할머니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런 거긴 하지만 큰 목소리로 손짓을 하며 활기차게 얘기하시는 걸 보니 처음의 지친 모습에 비해 조금 더 젊어 보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찾던 곳이 여기가 맞는지 여쭤보았다.
“맞아요. 여기가 맞아요. 오늘 가보고 싶었던 데 다 가서 보고 마지막으로 여기 온 거예요. 친절하게 알려준 덕분에 멋진 그림 잘 봤어요.”
한양극장은 지도 앱에서 검색 안 되니 원래 없든 없어졌든 없는 게 분명하고 빨간 벽돌집이 모여 있다는 곳은 대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다 상관없었다. 할머니는 이제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 되는데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느라 너무 힘드니 시원한 곳에서 좀 쉬다 가고 싶다며 같이 뭘 먹자고 했다. 사주겠다고. 더 이상의 긴 대화는 몹시 부담스럽지만 잠깐이면 될 것 같고 요즘 부쩍 할머니가 된 엄마 생각이 나기도 해서 그러자고 했다. 우리 엄마가 밖에서 다니다가 힘든 순간을 맞닥뜨리면 누군가 나 내신 도와주길 바라면서. 그제야 할머니 손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터질 듯이 꽉 채워져 있는 쇼핑백이 보였다. 잠시라도 편하게 걸으시라고 대신 들어드리겠다며 받아 든 순간 너무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 친절도 습관이다, 안 해본 사람은 할 줄 모른다는 걸 깨달았고 민망했다.
"나는 달고 시원한 게 좋아요. 오늘 너무 더웠어요. 단 거 좋고 쓴 거는 싫어요."
두 번째 과제도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나는 달고 시원한 게 있고 큰 목소리로 얘기하면서도 눈치가 덜 보이고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으며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높이의 테이블이 있는 곳을 찾느라 분주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4차선 도로를 만나자마자 패스트푸드점이 보였다.
옥토끼
넓은 매장 안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한적한 자리를 골라 할머니는 앉아 계시게 하고 키오스크로 가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주문했다. 잠시 서서 기다렸다가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자리로 가니 그 사이 할머니는 무거운 걸 내려놓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한숨 돌린 듯했다. 어색하게 마주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하면서 보통의 어른들처럼 나이, 결혼 여부, 고향, 학교, 직장과 같은 신상정보에 관한 질문이 시작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가 팔십육 세예요. 나이가 아주 많죠?”
정말로 놀랐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도, 그런데도 혼자 여행을 하는 것도, 한참 어린 사람에게 반말을 전혀 안 쓰는 것도.
“내 고향이 여기예요. 여기에서 태어났는데 떠난 지 오래됐어요. 나이도 많이 먹고 옛날 생각이 나서 큰맘 먹고 왔어요. 오는 김에 티비에서 본 멋진 곳들을 찾아다녔는데 가는 데마다 친절한 분들이 길을 잘 알려주지 뭐예요. 덕분에 여행 잘했어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할머니는 오늘 다닌 곳들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마치 옛날 얘기를 듣는 것처럼 할머니의 얘기를 들었다. 모르는 할머니가 혼자 여행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는 상황이 낯설었지만 얘기는 지루하지 않았고 가끔씩 할머니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하고는 거리가 먼 패스트푸드점인데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크게 울리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건너편에 앉은 어린 녀석이 이 쪽을 보면서 눈을 흘기거나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눈치를 주지만 않았다면 나도 할머니 얘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드리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이제 일어날 때가 됐구나 싶을 때쯤 할머니가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제껏 어느 누구도 나에게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만약에요, 정말 만약에 뭐든 마음먹은 대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 어떨 거 같아요? 그 힘으로 무엇을 하겠어요?”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극단적으로 세속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처음 보는 할머니가 질문을 하니 어떤 답을 의도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요즘 관심사인가? ‘막강한 능력’ 같은 게?
“큰 죄는 아니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정도의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을 벌주고 싶어요.”
순간 할머니의 눈이 커지고 눈동자가 짙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몹시 흥미롭다는 듯.
“왜 큰 죄가 아니고?”
누구라도 그렇게 되물었을 것 같다.
“큰 죄를 지으면 어떻게든 걸리잖아요. 죄가 드러나서 벌을 받고 욕을 먹고요. 물론 죄에 비해 처벌이 약해서 속 시원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요.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죄지은 사람이 죽고 나서라도 밝혀질 거라고요. 그런데 작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넘어가요. 벌도 안 받고 욕도 안 먹고. 끝까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고쳐지지도 않죠. 하지만 그 잘못들은 이미 저질러졌잖아요.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고 말입니다. 세상에 저질러진 나쁜 일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있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쌓이는 것 같다고 할까요.”
대충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고 솔직한 내 생각이긴 한데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성격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딱 좋을 말이었다. 아차, 싶은 마음에 할머니를 보니 아까보다 더 커다란 눈 더 짙은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문득 할머니 얼굴의 주름이 희미해진 것 같고 짧은 머리 때문인지 남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원하게 잘 쉬었어요. 나 이제 기차 타러 가면 돼요?”
할머니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단지 내가 주문하면서 이미 계산했다는 걸 모르고 있다가 나가면서 계산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잠시 큰 소리가 났고, 아까 그 어린 녀석이 또다시 한숨을 쉬면서 도리질을 했지만 말이다.
'이 놈아, 네 부모님이 아직 젊으셔서 네가 안 늙어봐서 너는 모른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원망스럽지만 이해도 되니까. 듣기만 해서는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게 있다. 나도 어릴 때는 몰랐고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된 후에야 알게 되었으니.
단독주택
할머니가 택시에 타는 걸 보고 나서 집으로 향했다. 해는 이미 다 져서 어둑어둑했고 길은 여느 때보다 멀게 느껴졌다. 십여분 걸어서 집 앞 골목에 다다랐다. 이 동네, 이 집을 선택한 데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마당 있는 집’이어야 했고, 마당 있는 집들 중에 내가 살 수 있는 작고 낡고 싼 집이 이 동네에 있었을 뿐. 다니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그럭저럭 사는 게 내 몫이겠거니 하면서 다른 삶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남들 다 사는 똑같이 생긴 집, 가난과 평범함 사이의 주거생활을 대표하는 방 한두 개짜리 다가구주택을 벗어나면 내 삶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았다. 어쩌면 그때 나도 모르게 작가로서의 삶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꼭 글 쓰는 게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나 혼자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국전쟁 이전에 목조주택으로 지었다가 30년쯤 후에 콘크리트를 써서 대충 리모델링을 하고, 이후 또 30년쯤 지나서 너무 낡아 썩었다는 표현이 맞는 부분만 겨우 손보는 정도로 수선한 1층의 단독주택, 집과 담장이 같은 붉은 벽돌로 마감되었고 기와지붕이 3분의 2 정도 남아 있어서 겉모습은 조금 예뻐 보일 수 있다. 어딘가에는 물이 새는 틈이 있고 그 틈으로 바람은 물론 벌레들도 드나들고 있다는 것과, 그만큼 불안정해서 큰 태풍이나 지진에 붕괴될 위험 같은 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보도블록으로 포장된, 차가 지날 수는 있지만 보행자 전용도로라고 할 수 있는 골목길에 있는 작은 집. 사람도 차도 이 골목에 붙은 건물 어딘가에 살거나 용무가 있어야만 오가는 고요한 집. 존재감 없이, 다른 이의 존재도 느끼지 않고 사는 걸 얼마나 꿈꾸었던가.
그런데 요즘 동네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카페와 식당이 몇 군데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볼 것도 없는 이런 동네에 가게를 차린다고 사람들이 오겠냐 싶었는데 어떻게들 알고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집안에 있으면서 길가에 있는 카페에서 바깥에 설치한 스피커로 크게 튼 음악이 들리고,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질 뿐 아니라 우리 집 앞에 서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내뿜는 연기 냄새를 맡기도 한다. 그리고 그놈의 불법주차! 떡하니 남의 집 앞에, 골목길을 가로막고 주차해 놓은 꼴을 자주 본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의 분위기는 다 깨지고 안 그래도 좁은 골목길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남겨 놓은 번호로 전화해서 차를 빼라고 하고, 번호가 없으면 주차하면 안 된다는 메모를 차 유리창에 붙여 놓는데 한도 끝도 없다. 오늘처럼 이렇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의 차가 집 앞에 떡하니 있는 게 제일 먼저 보이면 솟구치는 짜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 망했으면! 불법 주차한 차들 다 태풍에 날아가 태평양 한가운데 빠져버렸으면! 차 주인들이 갑자기 사라진 소중한 차를 찾을 수 없어서 울부짖는 꼴을 보고 박장대소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마음속으로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누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이 골목 안에 유일하게 있는 가게인 전통찻집 사장이다. 민머리에 늘 무채색의 생활한복을 입고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기 때문에 스님처럼 보여서 그런지 말투도 도인을 흉내 내는 것만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타입이고 괜히 가까워지면 억지로 가게에 가서 좋아하지도 않는 전통차를 사야 할까 봐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걸 본 후로는 멀리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가뜩이나 기분도 영 좋지 않은 상황에 충분히 지나칠 수 있는 걸 큰 소리로 불러 세워 인사를 하니 무시하고 싶었지만, 좁은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날까 봐 대충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좋은 건 금방 잊어도 안 좋은 건 두고두고 회자되는 법이니까.
부지불식
저녁을 먹고 나서도 왠지 헛헛한데 배가 고픈 건지 마음이 허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군것질을 했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걸 보아 마음을 채워야 하는 거였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서 딱히 뭘 하지도 않았으면서 피곤한 하루를 돌이켜 보다가 더 피곤해졌다. 그러면서 속은 더부룩하고.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별거 없이 살면서 내가 뭔가 이루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달리기뿐이었다. 내 팔자에 운수나 요행은 없다는 걸 일찌감치 인정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내가 한 것만큼만 가지면 좋겠다고, 내가 노력에서 손에 넣은 걸 빼앗기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하고는 이거다 싶었다. 내가 달리는 만큼 거리와 속도가 기록으로 남았다. 정직하고 정확해서 좋았다.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한다고 그만큼의 성과가 나지 않는다. 사는 게 다 그런데 달리기만은 그렇지 않다.
달리기 좋은 산책로가 갖춰진 하천변까지 가서 본격적으로 달리기엔 힘들고 과식한 죄책감을 조금 덜 수 있으면 되므로 간단히 동네를 크게 한두 바퀴 돌기로 했다. 집 앞의 골목길을 벗어나 근처의 달리기 좋은 길을 찾아갔더니 길가에 주차된 차들이 즐비하다. 일방통행 도로변 양측에 걷기 좋게 넓은 보도가 조성된 거리에는 가로수를 비롯한 시설물 때문에 불가능한 부분을 제외하고 차들이 보도를 다 차지하고 있다. 불법주차마저 제대로 하기는 귀찮아서 일방통행로를 지나는 차가 불편하든 말든 대충 걸쳐서 주차한 차들도 있었다. 뛸 수가 없었다. 보도를 걷다가 차도에 섰다가, 차가 지나면 피했다가 하면서 화가 솟구쳤다. 차라리 인도가 있는 블록 가장자리의 간선도로변으로 크게 돌아야겠다 싶었는데 거기도 인도 위에 올라가 주차된 차들이 있었다. 건물 1층이 비어있다고 밤마다 제 집 주차장처럼 남의 건물 앞 인도에 주차를 해놓는 것이었다. 이것들 다 사라졌으면, 지금 이 동네에 불법주차 놓은 차들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달리면서 상상했다. 슈퍼맨이 불법 주차한 차를 양손에 한 대씩 들어 올리고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태평양으로 날아가 떨어뜨리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