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결코 변하지 않을

단편소설 [ 쩨쩨한 히어로 ]

by 정오월


사건


글이 이렇게 안 써질지 몰랐다. 회사에서 일하던 프로젝트마다 보고서를 써야 했기 때문에 내 이름이 적힌 두꺼운 책이 일 년에 두세 권은 만들어졌으니까 말이다. 그 책이 그 책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글을 쓰는 건 보통 사람들보다 잘한다는 자신이 있었고, 써야 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영감을 받아 자유롭게 쓰는 글은 재미있게 술술 써질 줄 알았는데. 어째 집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한글 프로그램을 열면 일하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은 무거워지고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회사에 다닐 때 주말에 일은 해야 하고 출근은 하기 싫어서 일거리를 싸들고 집에 왔을 때와 같다. 신경은 쓰이고 손에는 안 잡혀서 마음만 영 불편한 상황.


글 쓰는 환경을 바꿔보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적응에 실패한 후 일주일 동안 다시 집에서 심기일전해봤지만 또 실패했다. 이번엔 카페에 가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재즈카페는 말고. 요즘 핫 플레이스라는 카페들이 다 그렇다는데 테이블이 무릎 높이라서 노트북을 사용하기 불편하다. 들썩거리는 분위기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사장님이 틈만 나면 말을 걸기도 해서 안 되겠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내키지 않았다. 영감을 심화하며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엔 분위기가 너무 상업적이지 않나. J. K. 롤링이 해리 포터를 썼다는 카페도 프랜차이즈는 아닐 것 같다. 카페를 찾아다녀본 적이 없어서 어딜 갈지 난감하다가 지난주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와 같이 갔던 패스트푸드점 옆에 카페가 있었던 게 기억났다. 하얗게 말끔한 공간에 벽을 둘러 벤치형 의자와 작은 테이블이 나란히 놓여 있고 혼자인 손님 몇 명이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고 있어서 목소리 큰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갈 엄두가 안 났었지.


대문을 막 나서는데 좁은 골목길 안으로 승용차 한 대가 삐질삐질하면서 들어오는 중이었다.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내리면 따끔하게 한 마디 하려고 지켜보자니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상쾌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 거리가, 동네가 말끔해 보였다. 실제로도 길가에 군데군데 서서 보행 흐름을 끊어놓는 불법 주차된 차들이 안 보였다. 차를 신경 쓰지 않고 걷는 게 이렇게 좋구나. 최근 들어 경찰이 매일 서 있더니 아마 주차단속을 강화하는가 보다 싶어서 모처럼 일개 시민으로서 행정서비스의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지, 이러려고 공권력이 존재하는 거지.

카페에 도착해서 보니 이름이 의외로 ‘에스프레소 바’였다. 바가 없는데. 이건 ‘재즈카페’에 재즈가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조리함이라 당황스러웠다. 재즈는 형태가 없지만 ‘바’는 누구나 알고 있는 형태와 기능이 있지 않나. 그게 없으면서 어떻게 카페 이름에 ‘바’를 넣을 생각을 한 건지, 왠지 커피에 대해서도 신뢰가 가지 않아서 그냥 나갈까 했는데 이미 바리스타와 눈을 제대로 마주쳐서 그럴 수도 없었다. 다행히 메뉴에 에스프레소가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주문을 하고 제일 안쪽 모서리 자리에 앉아 카페를 둘러보았다. 양 옆자리에는 웬만하면 아무도 안 앉을 것 같았다. 바가 있다면, 통상적으로 바라는 공간이 바리스타와 손님 간의 긴밀한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오히려 바가 없고 이렇게 1~2인용 테이블만 있는 게 글쓰기에는 더 좋다는 생각에 이르니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카페 이름은 의식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사이 다 만들어진 커피를 받아서 테이블에 놓고 노트북을 켰다. 바리스타의 작업공간 안에서는 내 쪽이 안 보이니 이제부터 없는 사람처럼 앉아서 글을 쓰면 되는 거였다.


그때 카페 안에는 나 말고 혼자 온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사장인지 직원인지 알 수 없는 바리스타가 그리로 가서 손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은 지인 사이인 듯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없는 듯이. 카페라는 공간에서 대화하는 건 잘못이 아니며 심지어 내가 하려는 글쓰기보다 더 자연스러운 행태이므로 나는 속으로라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결국 눈은 노트북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손은 키보드 위에 놓은 채 귀로는 그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 전 이 근처에서 밤사이 수십 대의 차들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도시의 역사를 꿰뚫고 있지 못하지만 아마도 이 도시에서 일어난 가장 크고 신기한 사건일 것이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는 없었지만 몇 번의 클릭으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곳에 대해서 자세한 위치정보도 없고 사진도 얼핏 흐릿하지만 우리 동네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세상에! 그래서 경찰이 있었구나! 서울에서 일어났으면 바로 다음날 대서특필 되었을 텐데 지방 작은 도시의 존재감 없는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라 기사화되기까지 일주일이나 걸렸나 보다. 이토록 황당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뉴스


기사가 많지는 않았다. 한 언론사에서 기사를 썼고 몇 다른 데서는 그 기사를 받아서 썼는지 내용도 거의 같았다. 최소한 한 명의 기자는 취재하러 왔다는 건데 그걸 못 봤군. 그리 많지도 않아서 모든 기사와 기사마다 달린 댓글을 전부 읽었다. 댓글의 내용은 대부분 ‘나 저기 아는데’였고 요즘 사람들이 놀라움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는 과장된 표현들이 덧붙여진 정도였다. 기사 내용에 별 게 없어서 그런가 싶었다.

며칠 전 ○○시 도심 인근의 지역에서 밤사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수십 대가 일시에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차량 도난 신고가 빗발치자 경찰이 즉시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지금까지 도난 신고가 된 차량은 총 37대인데 아직 파악하지 못한 피해가 더 있을 수 있고, 하나의 사건인지 우연히 여러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으며 차량 도난 외에 추가적인 다른 범행이 있지는 않은 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다만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 설치된 CCTV의 영상을 모두 확보했으므로 이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곧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장 취재를 하지 않고 사진만 하나 구해서 경찰이 발표한 자료를 보고 쓴 게 아닌지 의심이 들지만, 섣부른 추론으로 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분명한 사실만을 쓰는 게 기자의 도리이기 때문에 그것밖에 쓸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동네 주민 인터뷰 하나 없는 빈약한 기사가 이해됐다. CCTV만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겠는데 왜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는지, 댓글을 보니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저 시골구석까지 가서 차를 몇십 대나 훔치나, 시골이니까 그렇게 훔치지 서울이면 택도 없다, 혼자서 하기엔 시간이 빠듯했을 테니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처럼 여럿이 한 번에 했을 거다, 40명은 너무 많다, 같은 시답잖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사건의 발생 경위를 짐작할 만한 그럴듯한 추론은 없었다. 기사 내용 중 ‘밤사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이라는 문구에 관심을 가진 건 나뿐인 듯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내가 상상했던 게 현실이 되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 동네가 뉴스에 나오는 게 신기할 뿐.



통로


카페를 나와서 4차선 도로를 건너 우리 동네로 갔다.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담배냄새가 훅 들이켜졌다. 몇 사람이 아직 문 열지 않은 가게 앞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일제히 피우던 담배를 끄고 꽁초를 길에 던지고는 옆의 옆의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저들을 꼭 집이든 화사든 잠시 앉아 있던 술집이든, 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데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겠지. 남들이 싫어하는 짓이라는 걸 아니까. 미안해하지도 않지. 이게 그렇게 나쁜 짓이면 나라에서 담배를 왜 파느냐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미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없어졌지만 그들이 꽁초를 버리고 아마 침도 뱉었을 그 길로 걷고 싶지 않았다. 불쾌함 이상의 폭력에 가까운 것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저들이 던져버린 꽁초를 그대로 그 입에 다시 물려줘야 한다’ 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거기까지 간 김에 벽화를 보기로 했다. 주황빛이 도는 붉은 벽돌을 쌓은 담장의 가운데에 병풍처럼 붙어 있는 여섯 개의 벽화는 하얀 바탕 위에 그림을 그리고 외부공간에 있으면서도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표면에 어떤 처리를 한 것처럼 보였다. 골목길의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걸으면서 보면 순서대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도시마다 한두 개쯤 있는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 비슷한 내용을 어디선가 보고 들은 것 같지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문 이야기.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맨 왼쪽의 벽화 앞에 서서 그림을 찬찬히 보고 한 걸음 옆으로 옮겨 다음 그림을 보았다.


‘읍성 안에서 가장 외지고 작은 마을에 어느 날 도사 하나가 평범한 홀아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그를 친절하게 받아들였고 도사는 정체를 숨기고 어울려 살았다. 보름달이 뜬 밤에 도사가 우물의 물을 마시려는데 그 정체를 알아챈 새 떼 수십 마리가 갑자기 날아와 달려들었다. 동네에서 천애고아로 외로이 사는 청년이 우연히 그 광경을 보고 새 떼를 쫓아 우물에 빠져 죽을 번한 도사를 살렸다. 도사는 청년에게 감동해 정체를 밝히고 소원을 들어주겠다 했고,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을 받고 살면서 고마운 마음을 품어온 청년은 온 마을이 우환 없이 풍요롭기를 바랐다. 도사는 한 번 더 감탄하며 청년의 소원을 들어주고는 울창한 숲길로 들어가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고마워하며 청년의 이름을 따서 우물의 이름을 짓고 도사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새로이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림은 설명하는 글 하나 없이 설화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고 그림체도 좋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담장들 한가운데에 있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어 바라보기 좋겠고 차분한 길의 분위기를 해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옥을 지은 목수도 담장을 쌓은 미장공도 벽화를 그린 화가도 모두 장인이고 예술가일 것 같았다.



권선징악


선녀와 나무꾼, 금도끼 은도끼 같은 수많은 이야기들과 교집합이 있어서 익숙하지만 착한 사람들이 행운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따뜻하게 와닿았다. 그래,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다고 해도 돌아가는 근본 원리는 옳을 거야. 인류의 역사 어디에도 ‘권선징악’이 있지 ‘권악징선’은 없잖아. 악보다는 선을 숭상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거지. 청년도 마을 사람들도 선한 마음으로 살며 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는 인과관계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했다. 아, 지난주에 길을 헤매던 할머니를 도와드렸지. 그건 정말 순수한 행동이었어. 돌이켜 생각하자니 머쓱하지만. 어쩌면 그 할머니가 나에게 물어봤던 게……. 정확하게 뭐였더라?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얘기였는데. 에이, 말도 안 되지. 내가 벽화에 너무 몰입했나 보다. 그런데 도사는 어디로 갔을까? 원래 있던 곳으로? 거기가 어딜까? 담장에 코끝이 닿을 듯이 바짝 다가가 그림의 마지막 장면에서 삿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면서 어두운 숲길로 들어서는 도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사님,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어디로 가면 당신을 만날 수 있죠? 나에게도 선한 마음이 있다면 내 소원을 들어줄 건가요?’


내가 한 곳을 너무 뚫어지게 바라봐서 착시 현상이 일어난 건지 그림 속의 도사가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 가끔 안경알의 가장자리로 보면 뭔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거겠지. 그런데 아까는 분명 도사의 오른쪽 발이 왼쪽 발에 앞서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깨너비로 양 발을 벌리고 서 있네.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고 좀 전이지만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 잘못 본…….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생각마저 멈췄다. 그림 속의 도사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내 쪽으로 향해 서는 것이었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서 혹시 내 눈앞에 있는 벽화는 그대로인데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나의 신경계에 문제가 생겨서 엉뚱한 게 보이고 있나, 순간적으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냈다. 이제 도사는 삿갓을 들어 올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현실이든 내가 미친것이든 간에 피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도사와 내가 눈을 마주친 순간 그림 속의 도사는 그때 그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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