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진짜로 원하는 것은

단편소설 [ 쩨쩨한 히어로 ]

by 정오월


무릉도원


도포자락 휘날리며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던 그림 속의 도사는 어느새 백발의 커트머리에, 분홍색 폴로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림 속의 할머니는 무거운 짐 없이 꼿꼿이 서 있어서 그런지 지쳐 보이지 않았고 86세 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내 쪽으로 다가오자 아이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또렷이 보였다. 할머니가 내 눈을 바라보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혹시 주변에 누가 있으면 이 벽화의 그림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사람 그림자도 안 보였다. 내가 정말 미친 건지 눈이 삔 건지, 확인이라도 해봐야겠다 싶어서 천천히 그림 속의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지만 누군가 보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다 싶어서 다시 손을 빼려던 순간 사방의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이 느껴지며 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곧바로 돌담길을 가득 메운 여름 한낮의 눈부신 빛과 함께 나는 벽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MRI 검사 기계 속에서 폭풍에 휩쓸리고 있는 듯 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잠시, 순식간에 모든 게 멈추고 고요해졌다. 눈을 감고 있는데 환한 빛이 느껴졌다. 급히 들이마신 공기가 낯설었다. 돌담길이 아니라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을 뜨니 할머니가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돌담길에 서서 들여다보고 있었던 벽화의 마지막 장면 속 그곳에서. 어떻게 왔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곳이 내 머릿속이 아닌 건 분명했다. 할머니는 나를 보며 웃음 짓고는 말없이 돌아서서 앞에 놓인 숲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른 쫓아 가 할머니 옆에 섰다. 난생처음 보는 낯선 풍경을 둘러보며 할머니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어느 순간 할머니를 놓쳐 버리면 영영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싹했다. 할머니는 걸음이 빨랐다. 이 세상의 할머니들은 걸음이 빠른지 할머니가 사실은 도사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세상에서 내가 늘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빨랐다. 그런데 힘들지 않았다. 숲 속의 오솔길이 점점 경사가 급해져 험한 오르막의 산길이 되고 절벽 끝에 올랐다가 몇 개의 계곡을 뛰어서 건너고 다시 숲길을 내려가 드넓은 벌판에 도착할 때까지 숨이 차지도 땀이 나지도 않았다. 할머니와 내가 걷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풍경이 우리의 옆을 지나갔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바깥을 바라볼 때의 상대속도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시간이, 세상이 통째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멈춰서 보니 끝이 보이지 않도록 드넓은 벌판의 한가운데였다.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초록색 풀들이 지표면을 채우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보라색의 작은 꽃들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와 나뿐. 구름 한 점 없고 오직 하나의 물감만으로 칠한 것 같은 파란 하늘은 거리도 깊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지평선의 한 지점으로부터 주황색 노을이 번지고 있어서 방금 그쪽으로 해가 졌다고 짐작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거대한 공간 안에서 바람은커녕 대류와 같은 공기의 움직임도 없는 것 같았다. 광활하지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얼마나 큰 지 가늠이 안 되고 모든 게 그대로 정지되어 있는 풍경이 마치 그림 같았다. 여기가 낙원인가, 생각했다.



호접몽


“여기가 낙원이라면 꿈꾸기 너무 허무하지 않아?”


할머니의 말투도 목소리도 그날과 달랐다. 덜 할머니 같다고 할까.

“고요하니까 평화가 느껴지고, 그 평화를 깰 존재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나도 왜 낙원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대신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할머니는 다 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낙원에 가보셨어요?”


설마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다는 선문답 같은 얘기를 듣게 되려나, 하는 순간 할머니가 웃었다.

“가면 거기가 낙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나도 따라나섰다. 길도 없고 방향을 가늠할 어느 것도 없는 벌판을 걷자니 내가 똑바로 가는지 굽이굽이 가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방향이나 길 따위는 걱정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내 발 밑에 깔리는 꽃들이었다. 걸음마다 밟히는 보라색 꽃들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그 때까지 이 들판에 서서 느꼈던 마음의 평화가 깨졌다. 꽃이 너무 많이 피어 있어서 아무리 해도 꽃을 피해 풀만 있는 땅에 발을 딛는 건 불가능했다. 열 걸음이 넘어가자 나는 곧 한 걸음에 수십 송이의 꽃들을 짓밟으며 걸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벽화에는 없는 뒷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했지? 마을을 떠나 어디로 갔는지. 거기에 가서 얘기해줄게.”


끝이 없는 것 같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더니 깊은 숲 속에 있는 작은 절의 마당에 도착했다. 일주문을 지나는 줄도 몰랐는데. 할머니를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대웅전 뒤로 가서 뒷마당의 제일 구석에 있는 작은 건물 앞에 섰다. 방 한 개만큼 작고 이름이 적힌 현판도 없는 그 건물은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있는 것 같았다. 불상도 불화도 없고 사방에 놓인 선반에 책과 둘둘 말린 종이, 여러 모양의 도자기와 조각품들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인사동 어딘가에 있는 골동품점 같았다. 할머니는 둘둘 말려 있는 종이 하나를 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돌담길에 있는 벽화와 비슷했다.


“마을의 우물가에서 새 때들이 내 정체를 눈치채는 바람에 곧바로 여기로 와서 이 그림 속에 숨었지. 그 새들이 온 천지를 돌아다니며 소문을 내 가지고 잠잠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여기 있어야 했어. 내가 뭐 좋은 일만 하고 돌아다녔겠어?”


할머니는 능글맞은 눈짓으로 자세한 설명을 대신했다.


“그러다가 이 그림이 봉인돼 버렸지 뭐야. 바깥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라 나는 그림 속에서 손쓸 수도 없었어. 그렇게 오랫동안 그림 속에만 있다가 누군가 이 그림을 찾아냈고 또 누군가가 이 그림의 가치가 엄청나다고 하면서 시립미술관에 걸리고 나서야 그림에서 나올 수 있었지.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그림에 갇혀 있었더니 도술이 약해져서 그림에서 멀리 갈 수가 없더라고. 내 얘기가 있는 그림들을 찾아서 다니는 건 할 수 있게 됐는데 온전히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방법은 아직 모르겠어. 하필이면 시립미술관이 인적 없는 산자락에 있어서 그 주변만 맴도느라 영 지루했는데 돌담길에 벽화가 생긴 후로는 마실 다니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시립미술관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근린공원’이라는 가깝고 친근할 것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시가지 외곽의 산자락을 그대로 놔둔 것과 마찬가지인 곳. 처음으로 가보고 싶어졌다.



소원


"진짜로 할머니이신 건 아니죠? 벽화 속 이야기에선 아저씨던데요. 왜 바깥세상에서 할머니의 모습으로 다니세요? 건장한 젊은이의 몸이 훨씬 편하잖아요."


속으로 생각만 해도 할머니는 알 수 있겠지, 그래도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들을 거쳐서 할머니에게 직접 물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스쳐간 그 생각들도 다 읽었으려나.

“제일 편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도 않고 경계하지도 않거든. 무시하기 쉬운 존재랄까. 그런데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그게 또 유리해. 한없이 약하다는 걸 알고 두려울 게 없으니 쉽게 도움의 손을 내밀지. 즘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 없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가 싶은 순간에도 누군가 한 명은 꼭 다가오더라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말야. 할머니가 아니라면 어땠을까?"


얘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랬지. 엄마 생각이 나서.


"도사라고 뭐든지 다 알고 다 잘하는 건 아니야. 바깥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기도 하겠고. 사실 뭐 그렇게 크게 도움 받을 일은 없어. 소원은 재미로 들어주는 거야. 사람들의 소원을 듣는 게 재미있거든. 가끔 창의적인 소원을 들으면 짜릿다니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건 귀찮은데 이후에 반응을 보는 건 또 재미있고. 그래서 가끔은 밑밥을 던져. 재미있는 소원을 빌 것 같은 사람을 골라서 낚는 거지. 그리고 대뜸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지 않고 질문을 조금씩 바꿔서 색다른 답을 유도하기도 하고. 너도 그랬어.”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알아보았다니 역시 도사다. 세상 어디에나 있을 것 같으면서 그 어디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게 나의 존재감인데. 할머니는 나의 어떤 점을 꿰뚫어 본 걸까, 어떻게 보이는 걸까, 나에 대한 정보가 내 머리 위에 써 있는 건가 내 얼굴에 그려져 있는 건가, 아니면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번개 치듯이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걸까. 할머니는 나의 이런 궁금증들을 다 알고 있을텐데 답할 생각이 없는 듯 얘기를 이어갔다.


“나를 도와줬다고 해서 무조건 소원을 들어주는 게 아니야. 흥미로운 것만 들어주지. 네 소원은 이제껏 들은 것 중에 가장 흥미로웠어. 궁금했거든. 그게 저주랑 뭐가 다른 건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저주라니. 정의 실현이 아니고? 나는 이성과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저주라는 건 마녀가 나오는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건데.


“아직 너는 거기에 대해 별 생각이 없구나. 너를 여기로 불러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그게 궁금해서였어. 잘 기억해. 너에게 초능력을 준 게 아니고 너의 바람을 내가 이루어주는 거야. 그래서 그게 재미없고 귀찮기만 하면 나는 그만둘 거라고.”


할머니는 어느새 할머니가 아닌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원칙


내가 정확히 어떤 말을 했었지? 큰 죄가 아니라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벌주고 싶다고 했던 것 같네. 어느 정도 나빠야 벌을 받는지, 벌 받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지 현실성을 초월할 수 있는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지, 뭐 그런 기준이나 원칙이 있지 않을까? 영화 ‘데스노트’를 보니까 노트 사용의 원칙이 노트에 꼼꼼하게 적혀 있던데. 할머니가 자기 마음대로라고 했으니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걸까. 할머니 마음에 드는 게 뭘까. 할머니에게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처음 만났던 날처럼 할머니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사라졌다. 매뉴얼이라도 하나 만드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머니가 들을 거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말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이후 나의 행적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맨 처음은 불법 주차한 차들이었다. 그다음은 김 부장, 그리고 골목길에서 담배 피우던 사람들. 그중에 실현 방법이 불명확한 건 김 부장이었다. ‘똑같이 당해봐라’는 말 앞에 ‘누구와’가 없었다. 아버지인지 나인지, 그때 내가 뭘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김 부장은 이제 어떻게 될지, 소원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무효가 되는 건 지 궁금했다. 하룻밤에 자동차 수십 대가 사라진 걸 보면 세 번째 소원은 쉽게 실현되겠지.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눈앞에서 보고 내적으로 박수를 쳐야 하는 건데 확인할 수도 없으니 아쉬웠다.


실감이 잘 안 나서 그런지 담담했다. 어쨌거나 나쁜 쪽은 아니고 보통에서 좋음 사이 정도의 마음인 것 같았다. 정의라고 하기엔 조금 쩨쩨한 것 같지만 여태 살면서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처음 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진짜 영웅들이라면 거들떠도 안 볼 사소한 정의 구현하는 게 어쩌면 정말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이제부터 소원을 빌고 이후의 과정을 관찰하면서 소원성취의 메커니즘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담대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5. 결코 변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