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떻게 될지는 모르고

단편소설 [ 쩨쩨한 히어로 ]

by 정오월


수수께끼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쯤 지나자 음모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CCTV만 확인하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인데 밝혀진 게 없으니. 나 역시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른다. 나는 그저 사라지기만을 바랐으니까. 내가 상상했던 슈퍼맨처럼 할머니가 자동차를 양손에 한 대씩 들고 날아가 태평양 한가운데로 던졌을 수도 있고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자동차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이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돌담길의 벽화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내 지식과 상식의 범위 안에서 설명 가능한 답을 도출하려고 골몰하는 중일 것이다. 이 건을 통해서 알게 된 건 나의 소원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이지 않거나 현실성이 없어도 된다는 것.


‘맞나요? 그냥 저에게 초능력을 주셨다면 나도 이렇게 머리 아플 일 없고 할머니도 귀찮지 않고 서로 좋았을 거 같네요.’


할머니는 대답이 없고, 대답을 하더라도 내가 알아들을 수 없으니 경찰이 뭔가 알아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도 이후 후속 기사가 있는지 찾아봤다. CCTV에 찍힌 게 없다는 기사 내용은 음모론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사건이 곧 해결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경찰에 따르면 CCTV 영상에서 결정적인 범죄 장면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동차들이 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장면과 사라진 장면은 있지만 그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서 이동되는 모습은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로 단서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찰이 이미 주변지역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시작했으나 사건이 밤늦은 시각에 발생한 탓에 상점들이 모두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은 후라서 목격자가 없으며, 대부분의 건물이 노후하고 영세한 특성상 CCTV를 설치하지도 않아서 단서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CCTV에 범행 장면이 포착되지 않은 데 대해 카메라나 영상에 대한 조작 등의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지적하면서, 범행 이후 수십 대의 차량이 이동한 과정을 추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사는 몇 개 안 났지만 이후로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기사 내용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주로 기사의 마지막 문장 속 ‘CCTV 카메라와 영상에 대한 조작 여부’와 ‘범행 이후 차량 이동과정의 추적’에 대한 음모론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불법 주차된 차량’이라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쌤통이다’, ‘길에 불법 주차한 차들은 탱크로 싹 다 밀어 버려야 한다’ 같은 댓글들 중에 얼핏 ‘누가 제대로 교훈을 줬네.’라고 쓴 걸 보고 뜨끔했지만 그게 정말이라고, 그 누군가가 한 사람일 거라고는 아무도 짐작 못하는 것 같았다.



새옹지마

음모론의 불길은 엉뚱한 방향으로 번졌다. 우리 동네가 유명해진 것이다. 자동차 수십 대가 감쪽같이 사라진 길이라며 인증샷을 찍으러 사람들이 몰려왔다. 카메라를 치켜들고 혼잣말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튜버겠지. 우범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고 동네 분위기가 흉흉해질까 봐 걱정하던 동네 주민들은 전화위복이 되려나 보다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사라진 자동차들이 대부분 외지인들의 차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뉴스 기사의 내용처럼 ‘노후하고 영세한’ 지역 특성상 거주민이나 상인들 중에는 차를 가진 사람이 드물다. 아직까지 이 동네에서 차를 도난당했다며 억울한 사정을 토로하는 사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TV 뉴스에 얼굴을 가린 채로 나와변조된 목소리로 가슴을 치면서 억울하고 막막한 심경을 토로한 피해자가 누구인지 동네 사람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길가에 작게나마 그늘이 드리워지는 곳이 있으면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외지인들을 구경했다. 사진 찍는 사람이 보이면 여기가 바로 그 사건 현장이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알려주고, 유튜버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면 본 적 없는 사건의 경위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하면서. 이제 길을 걷다가 차를 피하는 대신 사람들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며칠만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틀렸다. 인터넷에는 인증샷과 함께 우리 동네의 위치정보와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는 방법, 근처의 주차장이 어디에 있으니 차를 가지고 간다면 꼭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가라는 당부가 담긴 게시물이 매일 여러 개씩 생겨났다. 인명피해가 없어서 그렇지 심각한 사건인데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러게 애초에 왜 잘못을 하느냐’, ‘당해도 싸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 반박이 쏟아져 금방 묵살됐다.


그러는 와중에 사건의 원인이, 불법 주차가 사실이지만,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어쨌거나 께름칙한 데다가 무슨 일이 또 일어날까 봐 동네 주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으며 인증샷 찍는 사람들의 눈초리도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우리 동네에서 함부로 주차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우리 동네 이름을 입력하면 '걷고 싶은 거리'가 연관 검색어로 제시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증샷을 찍으러 찾아온 사람들은 곳곳을 걸어다니며 동네 안에 있는 카페와 식당을 찾았다. 최근에 생긴 뜬금없이 멋진 가게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잘 안 가는 오래된 슈퍼 앞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거나 옛날식 통닭집 앞에 줄을 서면서 재미있어 했다.


이렇게 된 김에 동네를 활성화하기 위해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슬슬 돌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걷기 좋은 거리가 되었고 전국 어느 지역에도 없는 차별화된 스토리가 생겼으니. 사건이 해결되든 미결로 남든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고 유명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시에서 우리 동네에 도시재생사업을 우선 시행하고 점차 시내까지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도심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지방의 소도시로서는 제법 야심 찬 구상을 발표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만이었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곧 수립할 거라고, 시에서 주도하기보다는 경험 많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 될 거라고 당당한 포부를 덧붙였다. 배가 산으로 갈 게 분명했다.



대화


일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커지고 있는 걸 보니 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졌다. 길에서 가게에서 귀동냥으로 듣는 거 말고 대화 내지는 토론을 하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후보는 집 앞 골목에 있는 전통찻집. 안타깝지만 차도 싫고 사장도 싫어서 피해 다닌 지 오래됐다. 대문을 나서면 무조건 찻집의 반대방향으로 걷는다. 목적지가 찻집 방향에 있으면 돌아서 간다. 동네를 걸으며,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눈 감고도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아는 이곳에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기는커녕 아는 사람도 없다. 가끔 골목길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을 마주치면 이웃인가 보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굳이 이웃사촌을 만들 필요를 못 느꼈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재즈카페 사장님이 떠올랐다.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달 넘게 매주 한 번씩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사장님과 꽤 많은, 내 입장에서는 수다에 가까운 얘기를 나눴지. 재즈카페가 있는 골목은 제법 큰 상가들이 모여 있어서 사람도 많고 오가는 얘기도 많을 것 같았다. 카페에 가서 늘 앉는 자리에 앉았다. 문 가까이에 있고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서 사장님이 일하는 걸 지켜보게 되는 자리. 사장님은 그 사이에 원두 세 가지 중에 두 가지가 바뀌었다며 각각의 원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했고, 나는 이번에도 사장님의 마음이 둘 중에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걸 느끼며 그 원두를 골랐다.


“그 원두는 지금 추출 세팅이 딱 맞게 되어 있어요.”


모처럼 반가운 말이었다. 곧 주문제작 한 건지 조금은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하는 신기하게 생긴 그라인더가 이 세상의 모든 모터로 돌아가는 기계들 중에 가장 느릴 것 같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속도로 돌아가며 원두 가루를 조금씩 쏟아냈다. 사장님은 양손으로 테이블 짚고 그 앞에 가만히 서서 원두가 분쇄되는 걸 지켜보다가 그라인더가 멈추자 천천히 분쇄된 원두를 포터필터에 넣었다. 저울에 올려놓고 아이스크림 먹을 때 쓰는 작은 스푼으로 섬세하게 덜어냈다가 다시 더 담는 걸 보니 원두의 양을 아주 정확히 맞추려는 것 같았다.


‘이러니 영 어색한 분위기에 자리도 불편한데 내가 여기를 오는 거지.’


포터필터를 머신에 장착하고 수동 머신의 레버를 아래로 내리고 초시계를 작동하고 머신의 레버가 제 자리로 돌아가고 추출 시간과 용량을 확인하고. 에스프레소 한 잔이 추출될 때까지의 과정이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드디어 사장님은 뿌듯함과 자신감과 더불어 자애로움이 넘치는 표정으로 작은 커피 잔을 내 앞에 놓았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줄 때 그런 표정이었을까, 아니면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무한 복제하느라 바빠서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걸 나눠주는 건 제자들이 했을까, 성경에 그렇게 자세한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든 건 아마도 사장님의 헤어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리

커피는 맛있었고 사장님과의 대화는 실패했다.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내가 듣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었다. 커피로 시작한 대화를 커피 외의 주제로, 동네 떠들썩한 사건에 대한 얘기로 전환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사장님은 그런 건 못 들어봤고 모르고 있고 생각 안 해봤다고 하면서 매번 커피 얘기로 돌아갔다. 사장님의 관심사가 오로지 커피뿐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어도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사장님은 틈만 나면 손님에게 말을 거는데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손님에게도 커피에 대한 취향, 자신이 만든 커피에 대한 의견 외에 묻는 걸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손님의 나이나 성별 같은 것도 전혀 구분 없이 누구나 똑같이 대하는 것 같다. 누구를 특별히 배려하지도, 누구라고 해서 쉽게 대하지도 않고 말이다. 커피 앞에 누구나 동등하다, 그건가. 사람에 대해 편견이 없는 건지 사람에게 아예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상냥하다. 그것도 매우. 욕과 영어를 반씩 섞어서 말할 것 같은 모습을 보며 느리고 부드러운 말투를 들으면 눈과 귀가 따로 노는 느낌이다. 좁은 이마와 치켜 올라간 눈썹, 가느다란 눈매 때문에 예민한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커피 맛을 보느라 잠깐 마스크를 벗었을 때 복숭아처럼 뽀얗고 통통한 볼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사장님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바깥을 보다가 잠시라도 시선이 스치면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언제나 커피 얘기였다. 커피 말고 아무것도 관심 없어 보이는 이 사람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하늘에서 커피가 쏟아지게 해달라고 할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게 해달라고 할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할까. 물어보면 분명 신나서 얘기하겠지만 오랜만에 다른 사람과 긴 대화를 했더니 피곤해져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이제 그냥 더운 게 아니라 무덥다고 해야 하는 날씨 때문인지 동네가 조용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뙤약볕 아래 서서 인증샷을 찍고 있고 길가에 앉아서 부채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골목길을 서성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조용했다. 혹시 가게 안에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고 있을까 싶어 일부러 편의점에 들러서 탄산수와 맥주를 사고 과일가게에서 복숭아를 사고 꽃집 앞에서 화분을 보는 척 괜히 서 있기도 했으나 물건 값을 계산하느라 주고받은 얘기 말고는 들은 게 없었다. 더워서 지치고 손도 무겁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전통찻집 사장이 웬일로 자기 가게에 있지 않고 저 앞에서 나를 향해 걸어온다. 순간적으로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르게 지나치면서 인사를 했다. 어딘가에 급히 가는 길인 것처럼. 집까지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속마음을 들키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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