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할 수 있기 때문에
단편소설 [ 쩨쩨한 히어로 ]
속수무책
나는 왜 그런 걸 바랐을까. 사소한 나쁜 짓에 벌을 주고 싶다니. 내가 워낙 순발력이 없기는 하다. 별거 아닌 질문에도 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과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먼저 생각하느라 종종 뜸을 들인다. 사실 그게 맞지 않나? 게다가 그렇게 어렵고 중요한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라는 건 몹시 불합리하다.
‘어차피 직접 듣지 않아도 다 아시잖아요. 시간을 충분히 주시면 보다 창의적인 소원을 생각해낼 수 있을 거고요. 소원 실현에 대한 매뉴얼과 더불어서 소원의 선정 방식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셔야 하겠는데요. 제가 한 번 정리해 볼……. 아니에요. 뒤에 말은 취소예요. 회사에서 일할 때 하던 말이 습관적으로 나와서 그런 거였어요.’
갑작스럽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면 늘 바라던 바를 떠올리게 되겠지. 그렇다면 내가 뭘 갖고 싶다거나 어떻게 되고 싶다는 대답을 떠올리지 못한 건, 갖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인가.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소원 하나씩 품고 사는 건가.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정답도 없는데 뭐. 그저 할머니가 했던 저주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범죄까지는 아니어도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사소하지만 그게 정의라고, 너도 한 번 당해봐라 했던 바람들이 저주나 마찬가지였던가. 나의 존재가 세상 돌아가는데 딱히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일상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저주를 퍼부으며 살아온 건가. 내가 바란 건 ‘잘못을 저지른데 대한 대가’이고 아무한테나 해코지하는 ‘저주’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자신이 없었다.
결국은 무심코 저주의 말을 뱉어 버림으로써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낮에 동네를 걸어 다니다 보니 여태 살면서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자꾸 보니까 관심이 가고, 아무데서나 불쑥 솟아오르고 있는 고층건물들이 눈에 띄고, 이 작은 도시에서 그렇게 높은 건물이 왜 필요한 지 모르겠고 그 때문에 도시경관이 엉망이 되고 있는 게 짜증 났다.
‘저 쓸데없이 높게 짓고 있는 건물들 싹 다 사라져야지.’
내뱉어 놓고는 아차 싶었다. 그건 저주가 맞았다. 내 눈에 꼴 보기 싫다고 해서 그게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개발사업이 아무리 관련 규정을 준수한다고 해도 주변지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애초에 벌 받을 대상도 아니고 내가 바로 후회하기도 했지만 혹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한동안 마음을 졸여야 했다. 몇 달 전에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대로변을 덮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저주와 마찬가지인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이후로 늘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문제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을 바라면 할머니가 흥미를 안 느끼고 무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또 주저하게 되었다. 나에게 생긴 능력을, 사실은 할머니가 대신해주는 거지만, 세상이 좋아지는데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속만 복잡해지고 생각도 마음대로 못하고 실제로 하는 건 없었다. 이럴 줄 정말 몰랐는데.
근원
할머니는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냐고 물어 놓고는 왜 초능력을 주지 않고 할머니가 대신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인 시스템인데. 만약에 내게 초능력이 있어서 사소하게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벌줄 수 있다면 어땠을까. 불법 주차를 하고,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을 초능력으로 혼내주면 그들은 그게 자기가 저지른 잘못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될까? 그래서 잘못이 고쳐질까? 세상이 달라질까? 아닐 거 같다. 그들은 운이 나빠서 재수 없는 일을 당한다 생각하고, 잘못을 계속 저지르며, 세상은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나는 기운이라는 걸 믿는다. 카르마라고 하던가. 사소하더라도 잘못을 행하면 세상에 나쁜 기운이 생기고 그 나쁜 기운은 저절로 해소되지 않으며, 잘못이 늘어나면 나쁜 기운도 쌓인다고.
잘못한 사람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서 고치도록 유도하는 게 올바르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게 올바른 방식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올바른 방식이 세상 모든 일에 통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들이 몰라서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 해도 되는 행동인지 아닌지에 대해 말 그대로 생각이 없는 거다.
‘어머, 나는 생각도 못했네.’
알게 되었으니 이제 달라질 것 같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알고 나서도 떠올리지 못한다. 애초에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어쨌거나 문제가 아닌 거니까.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야.’ 그런 건 없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인 거지.
몰라서가 아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다. 나라에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라고, 긴급하게 있던 법을 바꾸고 새로운 법을 만들면서 강제로 의무화하기까지 하는데 그래도 안 듣는 사람들이 있다.
‘괜찮아, 나는. 나는 멀쩡해. 밖에서는 마스크 안 써도 괜찮아.’
‘길에 쓰레기 좀 버리면 어때. 치우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사람도 없는데 신호를 다 지킬 필요는 없어.’
법도 있고 사회적 규범도 있고 양심도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건 그거고, 나는 괜찮아. 항상 지킬 필요는 없어. 지금은 괜찮으니까.’
벌금 몇 만 원짜리의 사소한 잘못 뿐이 아니다. 치사하고 비열하고 악랄한, 세상의 모든 나쁜 짓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다. 그렇다면 저지르고 나서 벌주는 것보다 애초에 나쁜 짓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하느님도 못하는 일이고.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세 달 전까지는 나는 회사와 집을 오가며 사는 게 다였다. 내 일 밖에 몰랐고 일에 지쳐서 세상 돌아가는 건 대충 흘리며 살았다. 안 보이고 안 들리고 그래서 모르는 채로, 사소한 저주나 퍼부으면서. 그런데 지난 3개월 동안 백수로 살면서 그동안 흘려보냈던 감정의 풍파를 한꺼번에 다 겪은 것 같다. 오죽하면 건물이 높다는 이유로 분노했을까. 회사일이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회사 밖도 만만치 않다.
고립무원
집과 동네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갔는데, 겨우 반나절 있는 동안 몹시 지쳤다. 한여름 무더위에 본격적인 휴가철이라 도서관이 한산할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시원하고 시설 좋은 도서관은 지난달에 갔을 때보다 더 붐볐다. 그만큼 진상도 늘었겠지. 사소하게 이상한 사람들을 여러 명 봤고 작은 일로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중에 한 손에 깁스를 한 할아버지가 멀쩡한 손으로 도서관에 구비된 모든 신문을 한 장씩 넘기는 게 최악이었다. 속도가 빠른 걸 보면 애초에 읽을 생각은 없는 게 분명하고 있는 힘껏 넘기는 동작은 마치 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탁구의 스매싱 동작 같다고 할까.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지 왜 그러는지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따귀 때리는 것 같은 소리를 천 번쯤 듣고 나니 귀가 얼얼하고 머리가 띵해서 밖으로 나갔다.
도서관을 벗어나려고 경사가 급하고 뙤약볕을 피할 수 없는 골목길을 걷는데 마침 근처 초등학교에서 하교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넓지 않은 골목길에 간신히 폭이 좁은 보도를 확보하고 난간을 설치해서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놨는데, 어린이들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앞 뒤 옆 일체 살피지 않으며 안전 따위 생각도 안 하고 정신없이 장난치며 걸었다. 폭이 좁은 보행로를 걸을 때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와는 다른 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지쳤는데 피난길에 휩쓸린 기분이었지만 난간이 있어서 차도로 내려서 걸을 수도 없었다.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나를 보았을 게 분명한 몇 명의 어린이가 와서 부딪치는데 어릴 땐 부주의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고, 알고 있지만 어린이가 싫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오래전에 그런 어린이 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싫어졌다.
드디어 아수라장 같은 골목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버스가 다니는 길가가 차라리 조용하게 느껴졌다. 차도를 등지고 서서 정류장 앞의 한산한 가게를 바라보며 약간의 평온을 느끼려던 순간 길고양이를 발로 차는 아이가 보였다. 너도 한 번 엉덩이를 걷어차여 봐야겠구나, 생각하는데 가게 안에서 여자가 뛰어나오더니 아이의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면서 혼냈다. 엄마인 것 같았다. 나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상황이었을 테지. 어쩌면 나의 바람이 초스피드로, 아이 엄마의 손을 통해 완벽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일까. 어려웠다. 슬슬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소나기
오랜만에 우리 집 앞에 주차한 차를 보았다. 그것도 눈앞에서. 내가 집 앞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그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차 문을 닫으면서 주저했다. 빠듯하더라도 그냥 찻집 가까이에 대는 게 낫겠다고, 남의 집 앞에 주차하자니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옆에 있던 전통찻집 사장이 괜찮다고, 이 자리가 주차하기 편하다고 하면서 운전자를 데리고 가게로 들어갔다. 그들이 나를 등지고 서 있어서 못 보긴 했지만 나를 봤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웃 간에 어쩌고 하면서 뭐 어떠냐고 했겠지. 이 인간이 이제껏 우리 집 앞 골목을 자기네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던 거다. 지네 가게 앞은 비워두고. 아무래도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몇 번인가 우리 집 앞에 놓여 있던 쓰레기도 그 인간이 버린 것 같다. 낡아빠진 캐리어 안에 그만큼 낡은 남자의 반바지인지 속옷인지가 들어 있었지. 아귀가 딱딱 맞네.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더니 호구로 봤구나. 이 인간 다시는 마주치기도 싫다고, 그 가게가 없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기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려 골목을 나왔다. 산책을 하기엔 지쳐서 재즈카페로 향해 걷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걸음을 돌리는 것보다 카페로 빨리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서둘렀지만 소나기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거세진 비를 피해 바로 옆에 있는 상가 건물의 입구로 들어갔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인가 싶고 그저 빨리 빗줄기가 가늘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위층에서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갈 줄 알고 문 옆에 비켜서 있는데 발소리의 주인공이 내 옆에 서더니 말을 걸었다.
“혹시 지금 시간 좀 있으세요? 5분이면 되는데."
불길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면 오늘의 외출을 최악으로 마무리 짓게 되겠는데.
"저는 위층에 있는 음악학원 선생님이거든요."
아, 다행입니다, 선생님.
"며칠 후에 피아노 대회에 나가는 학생이 지금 연습 중인데 혹시 들어줄 수 있나 해서요. 우리 학생이 혼자서 연주는 참 잘하는데 사람들이 앞에 있으면 너무 긴장을 하는 타입이라 모르는 사람 앞에서 연주하는 연습 좀 하려고요. 정말 죄송한데 5분만 시간 내주시겠어요?”
어차피 멍하니 서 있느니 그것도 좋겠다 싶어서 선생님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앉아 있는 몇 명의 사람들 옆에 앉으니 선생님이 피아노 앞에 앉은 학생을 간단히 소개했고 곧 연주가 시작됐다. 고등학생 정도, 작은 체구에 어려 보이는 연주자는 놀랍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줬다. 피아노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데도 처음에는 약간의 긴장이 느껴졌는데 이내 연주에 심취한 것 같았다. 우아하면서 격렬한 움직임은 나비의 날갯짓 같았고 피아노 소리는 폭풍처럼 몰아쳤다. 음악을 전혀 이해 못 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뭉클한 느낌이 들었고, 이게 감동이구나 싶었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멋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겠는가. 누군가의 노력 덕분에 내가 감동을 느끼다니 공짜로 귀한 걸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카르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쁜 걸 없애는 것보다 좋은 걸 하는 게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