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모든 것이 제자리에

단편소설 [ 쩨쩨한 히어로 ]

by 정오월


환원


계절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 동네는 여전히 이 작은 도시의 핫 플레이스들 중 하나이지만 성지순례하듯 몰려오던 행렬은 여름이 끝날 때쯤 사라졌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새로운 소식이 없자 관심이 사그라진 것이다. 재미 삼아 떠들면서 물고 뜯고 씹을만한 사건이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굳이 다 지난 일을 되새김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유명세가 남아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그 발걸음을 사로잡는 건 그 사이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들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딱 맞춰 만들어진 카페와 식당, 술집 몇 군데가 SNS에서 유명해지면서 새로운 인증샷 명소가 되었다. 덕분에 볼 거 없는 허름한 골목길에서 작정하고 멋을 낸 젊은이들이 어딘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걸 가끔 마주친다.

시에서는 우리 동네에 도시재생사업을 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한 지 두 달 만에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한다는 공고를 냈다. 그렇게 빨리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나? 날림으로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사업을 하겠다더니 고작 설명회가 다인가 싶기도 하고. 주민센터 출입문 앞에 붙어 있는 설명회 공고문을 꼼꼼히 읽었는데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것도 두 달 만에 수립된 계획도 영 기대가 되지 않는다. 무슨 먹자골목이나 젊음의 거리 같은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서 커다란 간판을 세우고, 예쁘지도 않은데 왜 있는 모르겠다 싶은 조형물을 설치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페인트 조각이 비듬처럼 떨어져 나갈 벽화를 그리는 게 다라면 안 하느니만 못할 텐데.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 시행을 위해서는 중심가로를 보행 위주로 정비하고 골목길도 차량 출입을 제한해서 걷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야겠다 싶어서 설명회 개최일시를 다시 확인하니 평일 오후다. 그 시간에 누가, 몇 명이나 설명회에 참석하려나.


동네를 거닐다 보니 큰 길가에, 골목 안쪽에 주차된 차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처음에 불법 주차한 차 한 대는 눈치가 좀 보였겠지만 그걸 보고 괜찮구나 하면서 따라 하는 차가 둘이 되고 셋이 되는 거지. 그래도 아무 일 없으면 금방 다섯이 되고 열이 되는 거고. 언젠가는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은 동네가 되겠구나. 차에 방해받지 않고 걷기 좋아서 붙여진 ‘걷고 싶은 거리’라는 별명은 결국 사라지고 전국 어느 도시에나 있는 ‘카페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



회자정리


동네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돌담길로 향한다. 소원은 이제 아무 의미 없다는 걸 할머니도 나도 분명히 알고 있지만, 직접 만나서 정리하는 일종의 절차 같은 걸 거치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니면 그냥 작별인사라도 하고 싶다. 지난 며칠 사이 가을이 완연해져서 제법 쌀쌀하니 앞으로 외출할 때는 겉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데 저 앞에 할머니가 보인다. 파마머리에 가을 옷차림, 키도 더 크고 걸음걸이도 다른 뒷모습인데 그 할머니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겠다. 바라긴 했지만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정말로 만나다니! 할머니를 불러 세우려고 서둘러 쫓아 가면서 보니 할머니 옆에서 누군가 같이 걷고 있다. 구불구불한 긴 머리에 키가 큰 남자. 혼자만 여름인 듯 짙은 하늘색 바탕에 커다란 파인애플 그림이 그려진 반소매 셔츠를 입은 그 역시 뒷모습만 보이는데 재즈카페 사장님이 확실하다. 그는 할머니 것이 분명한 검정 배낭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가끔씩 할머니를 내려다보느라 고개를 옆으로 반쯤 돌리기도 하면서 할머니와 걸음을 맞춰 걷고 있다. 크게 휘두르는 손짓이 즐거워 보인다. 설마 할머니에게 커피 얘기를 하는 중일까. 할머니는 쓴 게 싫다고 했는데.


더 쫓아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멈춰 서서 두 사람이 돌담길에 들어서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다. 재즈카페 사장님이라면 할머니에게 충분히 친절할 테고 할머니가 흥미로워할 만한 창의적인 소원을 얘기할 것이다. 그 소원이 무엇일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사장님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처럼 써먹을 데도 없는 소원 빌지 말고. 그는 충분히 행운을 얻을 자격이 있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이렇게 뒷모습을 보면서 작별인사를 하네요. 덕분에 평범하기 짝이 없던 제 인생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겼고, 저는 잠시나마 특별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잘 살겠습니다.’


어째, 애달프게 사랑한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인사말이 되었다.


사필귀정


결국 나는 취업을 했다. 백수생활 6개월 만에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거다. 물론 전에 다니던 회사는 아니다. 김 부장이 떠났더라도, 회사에서는 내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더라도, 또 막상 돌아가면 별 탈 없이 지내겠지만 옳은 답은 아닐 거고, 그래서 생각도 안 해봤다. 김 부장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다시 취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건 맞다. 그 전에는 오락가락 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이상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수 밖에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하던 일인 거고. 예전 같으면 잘 아는 사람에게 잘 아는 회사에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봤겠지. 경력자가 취업을 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니까. 그런데 무슨 자신감인지 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근무조건이 좋은 회사에 내가 먼저 문을 두드렸다. 올 해 초에 담당했던 프로젝트에서 외부 인사의 자문이 필요해 연락했던 게 전부인 그 회사의 임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데 내가 일할 자리가 있냐고, 기회가 있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이제껏 살면서 내가 한 가장 과감한 행동이었다. 곧바로 그 임원을 만났고 취업이 결정되었다. 다음 주에 첫 출근이다.


인맥이 좁은 업계에서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은 금방 퍼졌다. 다행히 소문에서 이전 회사의 퇴사 과정과 이후 6개월의 백수생활은 생략되었다.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한다는 깔끔한 포장 덕분에 누구에게도 저간의 사연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엄마에게 실직상태를 숨기는 처지이다가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한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였다.


“그래, 잘 됐구나. 너야 워낙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해서 내가 걱정이 없잖니. 좋은 소식 들려줘서 고맙구나. 축하한다. 아빠가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주말에 집에 와. 먹고 싶은 거 미리 얘기하고.”


이번에는 아무거나 다 괜찮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엄마가 요리 솜씨를 뽐낼 만한 메뉴를 생각해 봐야지.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회사생활이 전보다 나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다. 겪어봐서 알기 때문에 익숙할 뿐. 익숙하다고 괜찮아지는 건 아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는 거지. 아쉽다. 어쩌면 ‘소소한 정의구현’이 가장 필요한 곳은 회사가 아닌가. 불법, 부도덕, 비양심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소한 악행들이 수시로 은밀하게 또는 대놓고 벌어지는 곳이니. 아마도 나는 예전처럼 안 보고 안 들으며 흘려버리다가 거슬리는 게 있으면 마음속으로 저주나 하겠지.


정 대리가 내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어느새 메시지가 와 있다. 이직을 축하한다고.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정말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집

전통찻집이 있던 자리는 공사 중이다. 골목길에 면하는 부분이 전부 유리벽이 되어서 형태가 제법 갖춰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바 형태의 테이블이 가게 한가운데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놓인 걸 보니 카페인가 보다. 코앞에 카페가 생겨서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 커피는 좋지만 카페 때문에 골목이 어수선해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웃 가게가 손님 없이 조용하길 바라면 안 되는 거고. 한 골목 안에서 다같이 잘 살아야 하지 않겠나.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재즈카페를 찾아간다. 문을 연지 얼마 안 되는 시각인데 카페 안에는 빈자리 없이 손님이 앉아 있고 문 밖으로는 큰길까지 닿을 만큼 긴 줄이 서 있다. 길 건너편 가게 앞에 어르신 몇 분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재즈카페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사장님이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대충은 알겠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할머니가 흥미로워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카페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외에 무언가 더 있는 게 분명하다. 나중에 손님이 적을 때 다시 와서 사장님과 얘기하며 슬쩍 떠봐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동네에 카페가 생각보다 많고,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공사 중인 곳도 많다. 참 빠르게 변하는구나. 이 속도가 맞는 건가. 아니면 세상은 계속 이 속도로 변하고 있었는데 내가 못 본 것뿐인가. 나야 그저 동네가 떠들썩해지고 집값이 오르길 바라면 되는 건가. 그런 세속적인 생각은 속으로만 하고 겉으로는 동네의 거주민과 상인, 방문객 모두에게 바람직한 지속 가능한 활성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집 앞 골목에 도착하니 우리 집 앞에 주차된 차가 있다. 집에 들어가니 높은 담장과 창문을 가린 암막커튼 때문에 어둡고 작은 집은, 당연하게도 그대로이다. 동네가, 세상이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변하든 아무 상관없다는 듯 나의 작은 집은 너무나도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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