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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월 Mar 01. 2023

ArtWorks 》 기억, 저장


465분의 267.


9cm X 12cm X 2.5cm

램스울 color mix / 코바늘 짧은뜨기     





15년 동안 외장하드 465GB 중 267GB를 채웠습니다.

크기도 무게도 없는 GB가

얼마 큼의 양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돼서

저장용량이 제일 큰 편에 속하는 걸 샀던 것 같습니다.

금방 다 채울 줄 알았었죠.


267GB에 나의 15년이 전부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해

파일로 전환되어 저장된 기억이 267GB일 뿐.

그 보다 훨씬 많은 수십 배, 수백 배

어쩌면 수천, 수만 배쯤 되는 기억이

내 머릿속에 있습니다.


매일 밤 잠자는 동안 우리의 뇌는

저장해야 할 기억과 지워야 할 기억을 구분해서

저장하고 삭제한다고 하죠.

안타깝게도 나의 뇌는 나와 생각이 다른 가 봅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네요.

저장해야 할 좋은 기억이 대신 지워진 걸까요.



외장하드에서 가장 오래된 폴더를 열어봅니다.

파일 이름이 전부 알파벳과 숫자라서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대충 눈에 띄는 걸 클릭하니 동생네 가족의 사진입니다.

유모차에 타고 있는 생후 4개월 조카를

동생과 제부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셋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네요.


그날이 기억납니다.

엄마와 함께 동생네 집에, 조카가 보고 싶어서, 갔다가

유모차에 조카를 태우고 짧게 산책한 후에

동네 쌀국숫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었죠.

자리가 없어 잠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사진에는 없는 엄마도 나도, 우리 모두 웃고 있었니다.


그날의 동생네 집도 동네 쌀국숫집도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때가 신기하도록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 2008년 8월 어느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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