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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Feb 23. 2023

소풍

때로는 아이에게 소풍은 긴장이다

소풍은 어린것에게 긴장이었다.   

  

혹시나 내일 비가 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잠이 들어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이미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방문 틈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기에 눈곱을 뗄 겨를도 없이 김밥을 마는 엄마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연년생 삼 남매의 김밥은 이미 산이 되어 쌓여 있었다. 이번엔 꼭 햄이 든 김밥이 먹고 싶었으나 역시나 분홍 소시지가 들어있었다. 탄탄하게 말린 김밥은 은박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기고, 힘이 없이 야들야들한 도시락은 노란 고무줄로 고정을 해야만 했다. 아이는 행여나 도시락이 찌글어질까 조바심 내며 가방 맨 밑에 반듯하게 넣고 그 위로 과자 몇 봉지와 사이다 한 병, 물통을 넣고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로 향했다. 소풍지는 언제나 그렇듯 학교부터 4km 가까이 떨어진 동물원이었다. 어린 걸음으로 한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6학년을 선두로 4학년, 3학년, 2학년, 1학년, 5학년 순으로 열을 맞추어 걸었던 아이들의 행렬은 그야말로 볼만했다.  


소풍에서 주요 행사는 수건 돌리기와 장기자랑, 보물 찾기였다.

동물원의 넓은 잔디광장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반별로 둘러앉아 수건 돌리기와 장기자랑을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줍은 아이에게 그 시간은 항상 두근거림이었다. 아무도 내 뒤에 수건을 두지 않아 계속 앉아 있으면 어쩌나, 나도 하얀 수건을 들고 친구의 뒤를 쫓고 누구의 뒤에 수건을 놓을지 고민하고 싶었다. 어느 때는 바람대로 머리칼을 날리며 뛰기도, 어느 때는 괜스레 애꿎은 풀만 뜯기도 하였다. 그나마 수건 돌리기는 괜찮았다. 수건 돌리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장기자랑에서 아이는 6년 내내 몸만 배배 꼬다가 자리에 앉곤 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리 노래하며 춤을 추어야지 생각만 하며, 얼른 그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렸다.     


한껏 작아진 마음이 풀어지는 건 점심시간이었다. 보통 반 단위로 크게 원형으로 둘러앉고 그 안에서 친한 친구들 가족과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는데, 아이는 자신의 반에서 먹기보다 반장을 도맡아 하던 오빠나 동생 반에서 주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아이가 찌그러지기 쉬운 은박 도시락에 김밥을 쌌던 이유도 아이 집의 찬합은 대부분 선생님의 도시락-엄마는 반장이던 오빠와 동생 반 선생님의 도시락을 찬합에 정성스레 싸야 했다-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름 찌그러지지 않게 잘 넣어도 아직 어린 손길이라 도시락은 거의 항상 찌그러졌고 김밥 역시 아침의 예쁜 모양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찌그러진 김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점심시간 이후엔 모두가 기다리는 보물 찾기가 있었다. 꼬맹이에겐 넓게만 보이던 장소에 여기저기 보물이라고 적힌 하얀 종이가 숨겨져 있었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를 신호로 아이들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보물 찾기에 몰두했다. 기대감에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어린것 역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하지만 친구들 눈에 그리 잘 띄는 하얀 종이가 아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았는지……. 아이는 흡사 자신이 쓰레기 줍는 소녀 같다고 느꼈다.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기 시작하면 아이가 찾을 수 있는 보물이 적힌 종이는 점점 줄어들었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고사리 같은 손에 하얀 종이를 쥔 아이들은 선생님 앞으로 모였다.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 소소한 보물이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다만 선생님 앞에 서지 못한 아이들-엄마의 치마꼬리를 쥐고 울상을 짓던 아이나, 저런 건 별로 신경 안 쓴다는 아이나, 이번에도 역시 못 찾았구나 실망하는 아이들 말이다-의 얼굴에 스치던 옅은 아쉬움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보물 찾기를 끝으로 소풍은 막을 내리고 아이들은 집으로 향한다. 운동화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와 무거워진 다리, 긴장이 준 피로함을 빈 가방에 넣어 10리 길을 걸어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다. 소풍을 다녀온 날은 하루를 일찍 마무리한다. 

먼지처럼 분분히 날리는 꿈 속에서 아이는 원을 그린 친구들 뒤를 신나게 달리고, 박수를 받으며 노래와 춤을 마치고, 양손 가득 보물이라고 적힌 하얀 종이를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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