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혜진과 동훈이 신혼집을 마련했다.
같은 동네라서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두 사람과 영화를 보고 치맥도 즐긴다.
동훈의 양팔은 지금도 수난을 겪는다.
이제 남친 대역은 맡기지 않는다.
누군가 거절 잘하는 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디자인 회사가 새 건물로 이사를 했다.
집과 가까워져서 아침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새로 나온 명함을 받았다.
선임 디자이너 임윤정.
엄마의 성이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일상은 여전했다.
얼마 전, 예원이 예쁜 딸을 낳았다.
누가 봐도 정후와 다은이는 붕어빵이었다.
하지만 예원은 눈코입이 자신을 닮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혜진이 아무리 봐도 아빠를 닮았다고 했다.
예원은 입술을 내밀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선 정후의 입이 귀에 걸렸다.
혜진은 아이를 좋아하지만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동훈은 내심 바라는 눈치였다.
주말에 큰맘 먹고 방 청소를 했다.
할머니의 유품이 담긴 상자를 꺼내 보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학창 시절 일기장을 발견했다.
책장 사이로 스티커 사진이 나왔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나만의 추억이었다.
사진 속 아저씨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바보...”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곰돌이 키링은 7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스티커 한 장을 떼어 휴대폰 케이스에 붙였다.
늦은 여름휴가를 신청했다.
팀장님이 의아해했다.
“자기, 남친 생겼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선배도 한 마디 했다.
“괜찮은 사람 다 거절하더니...”
알람소리에 눈을 비볐다.
꼭두새벽부터 여행 준비로 바빴다.
줄인다고 줄였지만 백팩에 짐이 가득 찼다.
할머니의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그런 내가 어색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좋았다.
설렘을 가득 안고 집을 나섰다.
평소의 출근길 지하철과 다른 풍경이었다.
김포공항은 이 시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내 창가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곰돌이 키링을 만지작 거렸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어느새.
제주도에 도착했다.
혼잡한 공항을 빠져나왔다.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바이크 샵에 들러 스쿠터를 빌렸다.
주인아저씨의 도움으로 백팩을 단단히 고정했다.
시내를 벗어나 탁 트인 해안도로를 달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한 햇살과 포근한 바다의 향기였다.
예쁜 풍경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젊은 부부와 아이가 함께 뛰노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가 넘어지자 아빠가 다가와 안아주었다.
금방 울 것 같던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노부부가 촬영을 부탁했다.
어릴 때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라고 했다.
두 분의 모습이 혜진과 동훈이를 보는 것 같았다.
되돌아온 할아버지가 스카프를 어디에서 샀는지 물었다.
할머니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한다고 하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다이어리에서 사진을 꺼냈다.
엄마와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모습이었다.
두 분은 무엇이 즐거웠을까.
사진 속 등대를 찾고 싶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직 그대로 일까.
너무 궁금했다.
도로를 달리다가 비슷한 장소가 보이면 잠시 멈추었다.
바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주의 풍경을 담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여름을 즐겼다.
노을이 조금씩 짙어졌다.
(최종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