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말

by 샤인


때론 어떤 상징이나 묘사된 그림보다 직접적인 말 한마디, 단어 하나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주로 사진과 텍스트로 작업 한다. 그녀의 작품은 개념 미술과 페미니즘으로 분류된다. 1989년 워싱턴에서 시작된 낙태법 철폐 시위를 위해 제작한 포스터<Your body is a battleground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는 어떤 그림보다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여성의 몸을 여성 자신이 아닌 사회적권력과 남성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처음에는 낙태 지지 문구를 넣었으나, 나중에는 설명적인 낙태 문구가 빠지고 <Your body is a battle ground>만 남아 좀 더 포괄적인 의미와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바라 크루거는 잡지 이미지에 글자를 붙여가며 작업을 한다. 그녀의 작품은 함축적의미의 텍스트를 사용하여 말과 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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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말이 없고, 주장이 강하지 않은 성격이었다. 대학시절 워낙 조용하여 내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졸업 식 때 와서 이야기한 친구도 있었다. 부모님 반대에 떠난 유학이었기에, 미국에서 수업을 들으며 대학원 준비를 하였다. 당시 포트폴리오와 지원 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리는데 너무 초조했다. 솔직히 입학허가를 받지 못하면,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대학원 총 인원을 5-6명 뽑는데, 그 중 동양인은 한 명만 뽑거나 없을 수도 있다. 당시 지원한 학생만 10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확률적으로 어려웠다. 고민하다가 어느 날 교수에게 미팅 신청을 했다. 만나서 지원 서류에 대한 내용과 함께 갑자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만약에 이 학교에서 네가 나를 뽑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잘 보여도 힘든 상황에, 교수를 만나 협박을 한 것이다. 그때 그녀가 놀라 당황하여 동공이 커지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다음날, 지원한 다른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이 학교도 랭킹을 다투는 학교이다. 인터뷰 요청인데, 비행기를 타고 갈 거리라 주저했다. 왜냐면 지금 있는 학교에서 합격통보를 받으면 이미 친구도 사귀었고, 또 이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편하게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입학 담당자 말이 전화로도 인터뷰가 가능하고, 지금 바로 전화를 바꾸어 주겠다며 말이 끝나자마자 담당 교수를 바꿔 주었다. 준비되지 않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런 저런 질문으로 거의 40분넘게 통화 한 후에 그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학교에서 어드미션(입학허가)을 주어도, 지금 있는 OOO학교가 되면 거기에 있을 거 아니냐?” 는 말이었다. 그 말은 그렇다면 입학허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로 전날 만나 거의 협박 위주로 얘기 한 후라 어찌 될지 몰랐다. 급한 마음에

“아직, 이 학교에서 입학 통보를 못 받았다. 만약에 네가 지금 나에게 입학허가를 내주면 나는 주저없이 너희 학교로 가겠다.” 말이 끝나자 마자 바로 “너는 합격이다”고 하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기뻤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그 다음날 미팅했던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모님께 너의 입학 소식을 알려도 된다’는 말이었다.


침묵은 금이고, 겸손은 미덕이란 말은 동양에서는 통하나 서양에서는 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의견을 분명히 해야만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의견이 분명할수록 인정 받는다. 만약에 그때 그렇게 강력한 말은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이 막다른 상황이 되면, 자기가 몰랐던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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