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한자'를 정해보시오.

나같은 맥시멀리스트가 2026년을 하나의 '한자'로 정할 수 있을까?

by 한씨

일본에서는 매년 올해의 '한자' 하나를 정한다고 한다.

그것 참 좋은 것 같았다. 미니멀리즘적이고,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가. 그리고 한 해의 철학을 정할 수도 있고.

그래서 이번 글쓰기 모임에서는 우리도, 2026년의 '한자'를 각자 정해보기로 했다.


<선이며, 線, ‘줄 선’ 자라고 합니다.>


2025년 작년에는 삶에 있어서 가지가 너무 많았다. 많은 것을 재다 보니까, 어떤 것은 가지가 뻗어 나가다가 부러지고, 어떤 방향은 마침내 길게 뻗어 나갔지만 힘이 없어서 꺾어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또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결정되고 정해졌다. 아마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과 비슷하게, 맨땅에 헤딩이던지 간에 가지를 쳐봐야 진정한 줄기가 나오는 현상일 것이다. ‘아 이쪽은 내 길이 아니구나’, ‘아 이쪽은 내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구나’, ‘어?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는데, 자꾸 가지네?’ 등, 연말이 되어서야 그런 식으로 정리가 되었다. 그러니 이 기세를 그대로 타서, 2026년에는 곧은 선처럼 살고 싶다.


그 선에는 자석이 달려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탈해도 금방 날 끌어당겨주었으면 좋겠다. 때로는(아니 사실 생각보다 자주) 스스로를 조절하기가 참 힘든 법이다. 그런 기질을 타고났는데 어쩌랴. 그럴 때면 나의 힘이 아닌 이 선의 힘을 빌리고 싶다. 달이 지구를 당분간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자성이 누군가에게는 속박당하게 되는 지루한 길이 될 수 있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자유를 주는 자성일지도 모른다. 내가 뚝심 있게 걸어갈 수 있을 자유, 그리고 다른 방향에 한 눈을 팔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게 될 자유 정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아에 대한 탐구를 더 이상 하지 않을 자유이다. 누군가는 ‘내 안에 답이 있다’라고 주장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안에 답은 없었다. 나를 관통하는 수많은 흐름들만 있을 뿐이고, 그 흐름들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실행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보면서는 그냥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살아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과연 누구인지를 탐구할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선대로 걷는 것은 생각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 해 들어서야 비로소 삶이 좀 더 단순해지니까, 숨이 어느 정도는 트인다. 선이 있다는 건 그래서 참 좋은 것 같다. 그는 내 안의 기준이 되어 주기도 한다.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 거고. 가장 재밌는건, 그러다가 통제력을 잃어서 선을 넘으면 그만큼 또 재밌는 것이 없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