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의 글쓰기 수업
1월 첫째 주부터 '글이다클럽'에 참여하게 된 이래, 둘째 주와 셋째 주를 모종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벌써 1월의 마지막 주이다. 시간이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빨리 간다. 나의 속도를 맞춰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무쪼록, 이번 주 '글이다클럽'의 글쓰기 주제는 '올해의 목표를 이룬 나를 인터뷰하기'였다. 어쩜, 사장님은 이런 재밌는 주제를 매주 생각해 내시는 건지. 나의 올해 목표는 사실 뭐, 출세? 이기는 하지만 낭만적인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목표 중 하나인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말했다. 근데 그냥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보다는 걸어서 알래스카까지 간 당신을 인터뷰해 보는 것 어때요?라고 물어보시는 거다. 어머, 진짜 웃기겠다 싶었다.
*이 글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갑니다. 사진들은 모두 AI가 만든 이미지입니다.
가고자 하는 집착, 걸어서 알래스카까지.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항상 소망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소설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나에게 ‘금지’ 내지 ‘할 수가 없음’인 상태에 놓인 무언가를 계속해서 소망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질 수 없음에 비참함이나 무너짐을 느끼게 되는데요. 오늘 저희 「어딘가 돌아있는 사람들」 매거진 20호의 테마인 ‘여행’에서, 첫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실 한씨(만 34세, 직업: 알 수 없음) 님을 모셔봤습니다.
처음「어.돌.사」매거진의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아, 솔직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여행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예전에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한비야 선생님도 있고... 근데 저처럼 유명하지 않은 사람도, 이렇게 핫한 매거진에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거에서 많은 이들에게 격려를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걸어서 알래스카까지 간 사람'으로 인스타그램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셨는데, 요즘 좀 어떠세요?
제 삶은 그대로예요. 오히려 저는 유명해지는 걸 누구보다 피하고 싶어서 막 협찬 제안도 보내주시는데, 다 거절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는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올렸을 뿐인데, 어떤 유머계정에서 그걸 무단으로 퍼갔어요. DM으로 "너 저작권 침해다" 라고 했는데, 그냥 무시해 버리더라고요.
그러셨군요. 사람들이 아마 한씨 님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나 봐요. 그래서 한씨 님이 직접 의도하신 건 아니었을지라도, 이 이야기가 그만큼 주목을 받았던 것 같네요.
그니까 이게 한 사람의 인생이 멀리서 봐야 아름답고 가까이서 봐보면 비극인 게 맞다니까요? 제 이야기는 생각보다 멋지지는 않습니다. 알래스카에 간 건 사실, 일종의 테스트였어요. 제가 더 이상 나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함일 뿐이었다고요. 가는 내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궁금하지도 않겠죠. 알래스카에 걸어가려면 어딜 통해서 가야겠어요? 북한을 건너가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알래스카보다 저는 북한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실제로 못 나올 뻔 하기도 했고요. 죽을 뻔했다고요, 저.
(인터뷰어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빠지는 인터뷰를 정상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보려 노력한다.) 아, 한씨 님. 제가 알래스카에 가신 계기를 아직 안 여쭤봤네요.
아, 저는 2년 전에 혼자 전기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왜 그, 요즘 사람들이 많이 타는 거 있잖아요. 오토바이처럼 생긴 거요.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 이륜차로 분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실손보험도 적용이 안 돼서 보상을 못 받았고요. 아무튼 수술하고 나서 지난 2년 동안은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 외곽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한 멀리 나가고 싶었어요. 전에는 1년에 세 번씩 해외에 나가 여행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왜 하필 목적지가 알래스카였나요?
어디든 나가고 싶었던 저는, 매일 구글어스로 방구석 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구글어스만 있으면 내 방에서 이집트까지도 갈 수 있죠.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도 서 보고, 마추픽추도 올라갔다 오고, 남극도 갔다올 수 있었고요. 그러던 어느 날, 깁스한 오른쪽 다리를 의자에 올려 둔 채 집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하나투어에서 낸 '시애틀 발, 7박 10일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이라는 배너 광고를 봤어요.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클릭했는데, 여행비가 너무 비싼겁니다. 무슨 7일에 600만 원 정도 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나는 수술비 때문에 돈이 없는 거지가 되었으니, 다 나으면 차라리 걸어서 가련다!" 그때는 장난으로 다짐했는데, 미친 척하고 진짜 한번 해 보고 싶은거예요. 그래서 가게 된 거죠.
지금은 살림살이가 나아지셨나요?
네, 서울시에 민원을 넣었거든요. 사고 당시에 밑바닥이 모래로 덮여 있었어요. 도로에 모래가 깔려 있는데 왜 안 치워서 내가 미끄러지게 했냐, 이거죠. 그리고 운이 좋게 보상금을 받게 되었고요.
축하드려요.
알래스카를 걸어서 가시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루트가 장난 아니잖아요? 북한 다음에 러시아, 그리고 배를 조금 타고 알래스카로 들어가는 루트였는데요. 일단 공산 국가들을 뚫고 가기 위해 주짓수와 생존 무술을 익혀야 했고, 걸어야 하니까 줄어든 다리 근육을 회복하려고 근력 운동을 하루 2~3시간씩 강행했죠.
북한은 정말 위험했을 것 같은데요?
아뇨, 그냥 북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됐으니까, 사실 크게 위험한 일은 없었어요. 생긴 게 똑같잖아요, 걔네랑 우리랑. 막상 가 보니까 뭔가 찡하기도 하고요. 제가 죽을 뻔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먹을 게 없어서였어요. 북러 경계선인 두만강 즈음에 도달했을 때, 피골이 상접한 저를 보고 본인도 넉넉지 않은 살림을 털어 구원해 주셨던 북한의 내 동포 김효성 아저씨에게는 아직도 자기 전에 축복 기도를 올리고 잡니다.
베링해협부터는 배를 타고 건너가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면 그전까지는 러시아의 동쪽 끝자락을 계속 걸어 올라가셨다는 건데, 거의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너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힘들다고 하면 힘들었고, 할 만했다고 하면 할 만했어요. 다리가 부러지기 전에는 백패킹도 즐기는 사람이었거든요. 제 1인용 텐트는 1.5리터 생수병보다도 가벼워서 크게 부담도 없었고요. 저는 뭐 할 일도 없고, 그저 돌아다니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에 정말 느긋하게 다녔어요. 내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없었고, 오늘 꼭 도달해야 하는 장소도 없었어요. 그저 목적지를 향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가기만 하면 됐거든요. 중간중간 텐트를 치고 자고, 마을이 나타나면 거기서 며칠 묵고요. 그러다 사람들과 친해지면 그 집에서 며칠 더 묵기도 하고. 그러면서 묵은 빨래도 다 하고요. 호텔비 같은 건 필요 없었어요.
알래스카에 도착해서 어떤 기분이셨나요?
‘허무하다’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보통 희열을 느끼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가 느낀 감정은 허무였어요. 도착한 순간, 할 일이 사라진 거죠. 이제 알래스카를 좀 더 즐기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취업하게 되면 겪을 그 수모들만 떠올랐어요.
기분을 어떻게든 전환시켜 보려고 일부러 여행하는 동안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말을 걸어 주면서 집까지 초대해 주고, 보드카와 양고기를 대접해 줬던 엘레나, 나탈리야, 맥심, 타티야나, 블라디미르. 사람은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정말이더라고요.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2년 동안 이룰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그 욕망을 마침내 폭발시키듯이 이뤄 내신 일을 보고 많은 분들이 영감을 얻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씨님의 과거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픔이 저처럼 일시적인 것이라면 딛고 일어나는 게 쉽지만, 아픔이 영구적인 것이어서 무언가를 꿈꾸는 것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차라리 미쳤으면 좋겠어요. 꿈꾸던 것들을 어떻게든 이룰 거라는 집념에 미쳤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는 불쌍하지 않거든요. 그냥 잠시든 영원히든 이 상황에 처해 있을 뿐이고, 이 상황은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매거진의 제목처럼, 어딘가 돌아 있는 채 살아보도록 합시다.
fin.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글쓰기 수업에서 이 글을 읽는데(그 때는 미완성 본이었다.) 나는 웃겨서 글을 읽다가 자주 멈추었고, 다른 분들도 함께 웃어주었다. 옆에 계신 분께서 올해에 그러면 정말 알래스카를 가는건지 물어보셨다.
갈거다. 다만, 안전하게 밴쿠버를 향해 국적기를 탄 다음, 거기서 크루즈를 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