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와 뱀
감자공주 장편 픽션소설 〈신라의 씨알〉
1부. 사리와 뱀
경주 바닷가, 대왕암을 향해 달리는 길.
문무대왕이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킨다는 전설이 나를 불렀다.
그러나 불국사도, 석굴암도 아닌, 나는 어째서인지 감은사지로 향했다.
쌍탑.
쌍둥이처럼 마주 선 두 탑은 하얀 이빨 같았다.
고요한 절터에 홀로 서 있는 두 탑은 마치 시간의 입구.
무심코 바라보는데, 해설사 건물 앞에서 갑자기 여자들의 탄성이 터졌다.
“꺄악!”
하수구 근처에서 뱀 한 마리가 흐물흐물 기어 나왔다.
놀란 여인들이 뒷걸음질치고, 누군가 작대기를 들고 뱀을 후려쳤다.
뱀은 타닥, 비명을 지르듯 몸을 틀었고, 축 늘어진 채 숨을 멈췄다.
나는 긴 막대기로 조심스레 뱀을 들어 올려, 절터 구멍 안으로 흘려보냈다.
뱀의 살결이 손끝에 닿는 순간, 목덜미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지나갔다.
그 절터 한쪽, 잔장한 단청이 그려지고 있었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 남녀 화공들.
그 중 한 여자가 내게 말했다.
“그걸 본 사람이에요.
사리암이 나올 때. 제가 국립과학연구원에서 있었어요.”
그녀는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사리함 안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씨알’ 하나가 들어 있었다고.
알보다 작은 금속 조각. 전자현미경으로만 보이는, 그러나 확실히 ‘소리’를 담은 종.
2부. 종, 그리고 장인
그 여인의 기억 속엔 정밀한 공예의 순간이 있었다.
서역계 장인. 신라 사람이 아니었던 그.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부리부리한 눈매.
그는 외부에서 신라로 들어온 철공 예술가였다.
그는 동판 위에 수은과 금을 섞어 4겹, 5겹의 도금을 입혔다.
그걸 나무틀로 압을 줘 눌러낸 후, 금속 구슬을 만들었다.
불을 댈 때마다 구슬은 각에서 원으로, 물처럼 변했다.
그는 종을 만들고 싶었다. 아주 작은 종.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
종 안에는 금 실을 잘라 만든 세 개의 구슬이,
은 함량을 조절한 금 접착제로 붙여졌다.
소리를 담기 위한 ‘마지막 공정’이었다.
그는 묻는다.
“이 종에서 소리가 날까?”
바람 한 점 불면, 그 딸랑이는 진동했을까.
그 고요한 진동이 신라 전역을 울렸을까.
아니면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을 건드렸을까.
3부. 능 앞의 돌
나는 탑을 떠나 또 다른 공간으로 걸었다.
지도도 없이, 이름도 없이.
뭔가에 이끌리듯.
그리고 도착한 곳. 왕릉.
그 앞에 선 거대한 무인상.
그 얼굴. 곱슬머리, 부리부리한 눈.
팔을 품에 안고 정면을 응시하는 서역계 장군의 석상.
나는 숨을 멈췄다.
“그 사람이다.”
씨알을 만들던 장인의 얼굴.
그가 지금은 돌로 변해 능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무릎 꿇었다.
종이 울렸다.
내 정수리에서부터 울린, 아주 깊고 투명한 소리.
‘따랑…’
어쩌면 실제로는 들리지 않았을 그 소리.
하지만 나는 확실히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중얼였다.
“안다 공교…”
그 순간, 탑과 능의 거리는 사라졌다.
종은 울렸고, 신라는 살아 있었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실화의 조각과 역사적 기록, 그리고 감각의 기억으로 엮여 있다.
감은사지는 경주 대왕암 인근의 실제 절터이며, 문무대왕의 유언에 따라 신문왕이 세운 호국 사찰이다.
감은사지의 쌍탑은 현재도 남아 있으며, KBS 역사다큐멘터리에서는 이 탑에서 발굴된 사리함과
그 안의 ‘알보다 작은 금속 풍경’에 대해 다룬 바 있다.
그 풍경에는 실제로 세 개의 점 형태 도금 흔적이 있으며,
현대 기술로도 재현이 어려운 초정밀 세공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소설의 장인은 이 유물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 인물이다.
또한 원성왕릉(괘릉)의 무인상은 실제 경주에 존재하며,
서역인의 외모를 지닌 조각상으로 확인된다.
현실에서는 감은사지와 괘릉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소설은 이 두 장소를 감각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다.
이 픽션은 역사 위에 놓인 감각의 진동이다.
그 종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분명히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