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틈의 카메라
〈돌틈의 카메라〉
군대를 다녀온 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 시절의 많은 장면들이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단 하나, 잊히지 않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찍힌 사진이 아니라, 사라진 사진이다.
그날은 셋이었다.
나, 준호, 민수.
우린 대학 선후배였고, 방학을 맞아 충북 단양으로 여행을 떠났다.
축구공 하나를 들고 버스를 탔고,
나는 오래된 올림푸스 수동 카메라를 챙겼다.
현대칼라 필름 24컷짜리,
제천에 있는 사진관에 맡기면 직접 암실에서 현상해주던 시절이다.
노동동굴을 보고, 강가를 걷고,
우리는 다시 제천으로 내려왔다.
닭갈비와 고량주가 생각났다.
터미널 뒤편, ‘송원 닭갈비’.
돼지기름을 철판에 바르며 불맛을 입히던 작은 방 안 식당.
테이블은 삼각형으로 배열돼 있었고,
우린 둘러앉아 술잔을 부딪혔다.
그 특유의 고기 기름 냄새,
쌉쌀한 고량주의 목 넘김,
여름 저녁의 열기까지—그 공간은 닫혀 있었고,
공기조차 잊을 수 없다.
그때 명화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누군가 한 명 더 들어왔다.
가죽 자켓을 입은 긴 생머리의 여자.
낯설지 않았지만 익숙하지도 않았다.
명화의 후배일까, 친구일까.
그녀는 방 안쪽 벽을 등지고 앉았다.
말이 없었고, 표정도 없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한 장 찍을게요.”
우린 웃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얼굴이 보이지 않게.
플래시가 터졌고,
사진 속에는 그녀의 뒷모습만이 남았다.
검은 머리카락, 윤기 흐르는 가죽의 질감.
그리고 세 명의 웃는 얼굴.
며칠 뒤,
나는 그 필름을 인화하지 못한 채 군에 입대했다.
그 카메라는 나와 함께 부대에 갔고,
운전병이었던 나는 가시방에 그것을 보관했다.
어느 날부터 그 카메라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사라졌다.
당시엔 단순한 장난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누군가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진에 얼굴을 남기지 않았고,
카메라는 끝내 현상되지 못했다.
1년 전, 민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야, 그때 그 여자 기억나냐?”
“응… 있었지. 근데 누구였지?”
며칠 전, 명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제천에서 닭갈비 먹은 거 기억나?”
명화는 대답했다.
“닭갈비? 나 그런 기억 없어.”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세 명은
그녀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그녀가 누구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며칠 전, 우연히 산책하던 길.
원주시 동화산 택지, 푸르지아 아파트 앞 주택가.
사진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진관의 돌틈 사이에서 나는 그 카메라를 발견했다.
내가 군대에서 들고 다녔던,
가시방에 보관했던,
사라졌던 그 카메라.
올림푸스 수동.
비를 맞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인테리어 장식처럼 박혀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바라봤다.
그 안엔 아직도
현상되지 못한 필름이 들어 있었을까.
그녀의 뒷모습은 남아 있을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날
사라진 건 카메라가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것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기억 속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한 장면이
우연이라는 이름의 파편을 타고 다시 깨어났습니다.
단양의 여름, 제천의 좁은 방,
그리고 오래전 사라졌던 카메라.
나는 그것들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아니, 잊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돌틈 사이에 끼워진 익숙한 검정 바디의 카메라를 보았을 때,
나는 알았습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요.
이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건,
그날 찍힌 한 장의 사진 때문입니다.
그 사진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인화된 사진은, 지금 내 손에 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사진 속
등을 돌린 그녀가 누구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뒷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아직도 조용히, 선명하게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