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전의 돼지

신안에서 본 그 돼지

by 마루

극락전의 돼지

신안에서 본 그 돼지


그날은 유난히 눅눅하고 조용한 여름날이었다. 전남 신안의 작은 박물관을 무심코 들어섰을 때, 유리 진열장 속에 놓인 도자기 돼지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낯익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 돼지의 형상은 한국 전통과는 어딘가 달랐다.

둥글지 않고 길쭉했으며, 눈매는 마치 쥐처럼 날카롭고 몸은 서양 돼지에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돼지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페이스북 캡쳐




며칠 뒤 나는 경주 불국사로 향했다.

그 낯선 기억이 내 마음을 자꾸만 두드렸기 때문이다. 극락전에 이르렀을 때, 나는 뜻밖에도 그 유사한 형상의 돼지를 다시 마주했다.

극락전의 현판 뒤, 아무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그 깊은 틈 속에, 나무로 깎인 작은 돼지 하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장인의 기억


이야기는 신라 후기에 이른다.

서역에서 건너온 한 장인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주조 기술로 이름을 알렸고, 왕실의 요청으로 불국사에 종을 만들게 되었다.

고향을 떠난 그는 경주의 생활에 외로움을 느꼈고, 불국사를 자주 찾았다.

극락전 앞에 서서 탑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는 작은 나무를 깎아 고향의 돼지를 만들었다.

그 돼지는 장인이 어린 시절 돌보던 돼지의 형상이었고, 종을 만들기 전 마음을 다잡는 부적이기도 했다.

그는 매일같이 극락전에 앉아 그 돼지를 쥐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종이 완성된 날, 그는 그 돼지를 몰래 극락전 현판 뒤에 넣었다.

말없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언젠가 누군가 이 돼지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때, 제 기원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종과 돼지


장인이 만든 종은 시간이 지나며 '현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종은 완벽했고, 그 소리는 멀리 바다 건너까지 닿았다.

하지만 장인은 그 종의 내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극락전의 돼지에 마음을 남겼다.


세월은 흘러, 장인의 이야기는 사라졌다.

아무도 그 돼지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았어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을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그 돼지는 조용히, 현판 뒤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현재


나는 다시 극락전 앞에 서 있었다.

그날 박물관에서 본 도자기 돼지를 떠올리며, 눈앞의 나무 돼지를 바라보았다.

형상은 닮아 있었다. 쥐 같은 눈, 길쭉한 몸, 고개를 든 자세까지.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신안의 도자기 돼지와 불국사의 나무 돼지는 같은 기억의 파편이었다.


그 돼지는 단순한 복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지인의 감정, 기억, 그리고 소망이 응축된 조각이었다. 종이 울릴 때마다 그는 그 소리 너머에 고향의 냄새를 떠올렸고, 극락전 뒤편의 돼지는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지금, 당신의 소원이 전해졌어요."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실존하는 불국사 극락전의 나무 돼지 형상과 신안에서 발견된 도자기 돼지에 대한 작가의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불교 교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며, 픽션으로 구성된 이야기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작가는 이 돼지 형상이 왜 그렇게 숨겨졌는지, 왜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는지를 상상하며, 그것이 하나의 인간적 감정이나 기억의 전달이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불국사는 한국 불교의 상징적 공간이며,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조형물은 여전히 많은 영감을 줍니다.

이 소설도 그 연장선에서, 작은 형상 하나에 담긴 시간의 무게와 인간의 외로움, 그리고 소망을 상상해본 결과물입니다.


오해의 소지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본 작품은 픽션이며, 특별한 종교적·정치적 의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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