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 시루섬의 비 앞에서

by 마루

기자된 나는 단양의 하늘을 가르며 천천히 걸었다.


취재 일정 중 잠시 들른 길이었지만, 발걸음은 이상하게 단양역 앞에서 멈췄다.


갈변한 4차선 도로 건너 작은 시루섬 쉼터, 백일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동상과 그 앞의 비석이 눈길을 붙잡았다.




비석 표면에 맺힌 빗방울이 흘러내리며 문장들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손끝으로 그 습기를 닦자, 돌결 사이로 오래된 기억이 밀려올 듯 했다.


비석 표면에 맺힌 빗방울이 흘러내리며 문장들을 흐릿하게 지우고 있었다.

손끝으로 그 습기를 닦자, 돌결 사이로 오래된 기억이 밀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콘크리트 물탱크에 팔까지 끼운 채, 버티려 했지만…

그 아기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9일 오전 08_47_23.png


그 순간, 비석의 표면이 물결로 변했다.


탁탁—

작대기가 나무둥치 옆에 박히며 물의 높이를 재는 소리. 한 칸, 두 칸, 세 칸… 네 칸.


물은 이미 사람 가슴께를 넘었고, 저 멀리 합수 지점에서는 소와 지붕, 통나무가 황토빛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잿빛이었다.



사이렌이 울렸다.


“우아교 느티나무 옆 농협 옥상에 다수 고립!

긴급 구조 필요!”


그 시절엔 119도경찰도 구조도구도 미비헸다

한 경찰관이 달려와 트럭에서 타이어 주부를 꺼냈다.

여러 개를 줄로 묶고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잡으세요! 밀리면 안 됩니다!”



주부를 붙잡고 그는 물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황토 물결이 그를 삼킬 듯 덮쳤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옥상에 닿아 사람들을 하나둘 태우고, 줄을 당겨 끌어냈다.

열 명이 넘는 이들이 그렇게 구조됐다.


그때 기자였던 ‘나’—아직 어린 아들이었던 나는, 그것이 내 아버지라는 걸 알아보고 숨이 막혔다.


‘저러다 무슨 일이라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를 향한 벅찬 존경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수해가 끝난 뒤, 단양여고 앞에 군용 헬기가 내려앉았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내렸고, 그는 젖은 코트를 걸친 아버지의 손을 꽉 잡았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내 가슴 속에서 젖은 채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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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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