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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셔터를 누르기 전,

그녀

by 마루

내가 셔터를 누르기 전,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2G7A0100.jpg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들이
그녀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렌즈를 통해 본 감자공주의 얼굴에는
늘 그렇듯 여러 감정이 겹쳐 있었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슬픔.

눈은 크게 떠 있었지만
그 안에는 공격성이 없었다.
입술에는 미세한 긴장만 남아 있었고,
연출된 표정은 아니었다.

보여주기 위한 얼굴이 아니라,
어쩌다 마주쳐
들켜버린 얼굴 같았다.

나는 그 상태를 보고 싶었다.

그녀는 크롭 톱과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내 프레임 안에서
그녀는 야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믿는다.
야함은 노출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방향이라는 것을.

내 카메라는
그녀의 몸을 훑지 않았다.
특정 부위를 강조하지도 않았다.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 사진은
몸을 보는 사진이 아니라,
마음을 보게 되는 사진이 되었다.

그녀의 어깨는
아주 조금 안으로 말려 있었고,
팔은 자연스럽게 몸 쪽으로 모여 있었다.

열린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를 접고 있는 자세.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쪽에 가까운 몸의 언어.

노출된 옷을 입고 있어도
몸은 닫혀 있었다.

나는 그 모순이 좋았다.

창가에서 들어온 빛은
부드럽고 얕았다.
그녀를 꾸미지 않는 빛.
존재만 남기는 빛.

섹시해지라고 놓은 조명이 아니라,
거기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는 빛.

프레임도 마찬가지였다.
과한 각도도,
극적인 클로즈업도 없이
눈높이를 유지했다.

나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바라보고 싶었다.

이 사진 속 감자공주는
“나 예쁘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 지금 이런 상태야.”

그래서 이 사진의 중심에는
매력보다
취약함이 있다.

화려한 카메라도,
렌즈의 스펙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디를 찍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였다.

나는 몸을 찾지 않았고,
감정을 찾았다.

결국 이 사진은
야함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라,
감자공주가 말하지 못한 순간을
조용히 받아 적은 사진이 되었다.

빗방울 맺힌 창가 앞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을 눌렀다.

셔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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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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