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가르던 소리, ‘쌕쌕이’
6.25 참전 미군USA ‘쌕쌕이(F-86 세이버)’ 이야기
하늘을 가르던 소리, ‘쌕쌕이’
✈ 하늘의 칼끝
한겨울 압록강 상공, 푸른 하늘이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는 곧 찢어졌다.
“적기 확인! 2시 방향, 고도 8천!”
무전기에 섞인 숨 가쁜 목소리가 울렸다. 조종사 로버츠 대위는 고개를 돌렸다. 은빛 날개를 번뜩이며 다가오는 실루엣—MiG-15였다.
그는 스로틀을 밀어붙였다. F-86 세이버의 J47 엔진이 포효하며 기체가 떨렸다. 몸은 시트에 파묻혔고, 혈관은 압력을 견디며 터질 듯 울부짖었다.
두 기체가 교차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탄환의 선이 허공을 갈랐다. 따다다다! 미그의 포화가 세이버의 꼬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금속이 타는 냄새가 조종석 안으로 스며들었다.
“쌕쌕이, 버텨라…!”
그는 속으로 중얼리며 급강하했다. 후퇴익 날개가 공기를 가르며 ‘쌕’ 하는 소리를 냈다. 한국의 민간인들이 붙여준 그 별명처럼.
하늘은 순식간에 춤판이 되었다. 미그는 상승하며 우위를 노렸고, 세이버는 기동성으로 맞섰다. 고도와 속도가 교차하는 순간, 운명도 교차했다.
조준선이 붉게 깜빡였다. 로버츠는 방아쇠를 당겼다.
기관포 여섯 문의 불빛이 동시에 터져 나갔고, 은빛 미그가 하늘에서 불덩이가 되었다. 검은 연기가 뒤엉켜 흩날렸다.
숨을 몰아쉬던 그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쟁의 하늘은 언제나 푸르렀지만, 그 푸름 아래서는 늘 누군가의 삶이 불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하늘에서 쌕쌕 소리 들리면 모두, 귀를 막았지.”
그때 ‘쌕쌕이’라 불리던 전투기는 바로 미 공군의 **F-86 세이버(Sabre)**였다.
은빛 동체가 햇볕에 번쩍이고, 하늘을 가르며 ‘쌕쌕’ 소리를 내던 모습은 한국전쟁 당시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히 새겨졌다.
1. 왜 ‘쌕쌕이’였을까?
제트엔진의 고주파음이 공기를 베듯 울려 퍼지면서, 한국 사람들 귀에는 ‘쌕쌕’ 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이름도 단순하게, 기억하기 쉽게 ‘쌕쌕이’가 되었다.
2. 미그와의 하늘 싸움
1950년대 초, 북한과 중국, 소련은 MiG-15라는 신형 전투기를 앞세웠다.
고속·고고도에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며 UN군 폭격기를 위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F-86 세이버였다.
세이버는 공중에서 MiG-15와 치열한 ‘미그 앨리(MiG Alley)’ 전투를 벌였다.
속도, 기동성, 조종사의 기술이 맞붙었던 하늘의 결투였다.
당시 미군 기록에 따르면, F-86이 MiG를 압도적으로 격추하며 전세를 바꿔놓았다.
3. 한국 민중의 기억 속 쌕쌕이
민간인들에게는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존재했다.
하늘을 가르는 굉음에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전투기가 날아가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장면 같기도 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은 쌕쌕이를 ‘죽음의 그림자’이자 ‘희망의 날개’로 동시에 기억했다.
4. 그 후퇴익의 상징성
F-86 세이버의 가장 큰 특징은 ‘후퇴익(뒤로 젖혀진 날개)’이다.
직선익에서 벗어나 속도를 극대화한 디자인은 이후 제트 전투기의 전형이 되었다.
기술적 진보가 전쟁터에서 사람들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 작가의 말
쌕쌕이의 그림자는 여전히 전쟁세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었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하늘을 지키는 수호천사의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가 평화로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시절의 굉음을 견뎌낸 세대 덕분일지도 모른다.
✈ F-86 세이버 (North American F-86 Sabre) 기본 제원
제작사: 노스 아메리칸 항공사 (North American Aviation)
최초 비행: 1947년
배치 시기: 1949년 미 공군 실전 배치
크기 & 무게
전장(길이): 약 11.4 m
날개폭: 약 11.3 m
전고: 약 4.5 m
최대이륙중량: 약 7,940 kg
성능
엔진: 제너럴 일렉트릭 J47-GE-27 터보제트 (추력 약 5,910 lbf)
최대 속도: 약 1,100 km/h (마하 0.9, 당시 준음속급)
항속 거리: 약 1,600 km
실용 상승 한도: 약 15,000 m
무장
기본 무장: M3 브라우닝 12.7mm 기관총 6정
추가 무장: 로켓, 최대 900kg 폭탄 장착 가능
특징
후퇴익 디자인 → 고속 비행에 유리
한국전쟁 당시 MiG-15와 공중전(MiG Alley) 에서 활약
미 공군, 영국 공군, 캐나다, 일본 등 다양한 동맹국이 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