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그 번호, 진짜 꿈에서 봤다니까
그날 꿈은 좀 이상했어
어둑한 방이었고
텔레비전이 혼자 켜져 있었고
웬 기계 목소리가 숫자를 읊더라
삼… 십일… 이십일… 삼십이… 삼십칠… 사십이
뭔가 이상한 게
그 숫자들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되게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눈을 떴고
한밤중이었고
메모장을 켜서
그대로 적었지
진짜로 그렇게 적었다니까
그리고 다음날
편의점에 갔고
로또 용지를 들고
그 숫자를 적었고
천 원짜리를 내밀었지
그게 다야
물론 안 됐지
당첨 같은 건 없었어
근데 이상하게
그 숫자를 버릴 수가 없더라고
왜냐면 그건
꿈에서 온 거였거든
누가 준 것도 아니고
계산해서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안에서 튀어나온 어떤 감정 같은 거였어
그 뒤로 매주
그 번호를 다시 적었어
바꿔봤자 안 맞을 거 같았고
그 번호는 마치
나한테 말 거는 느낌이었달까
내가 너 기억한다고
그때의 나를 잊지 않았다고
그런 느낌?
사람들은 로또 번호를 자꾸 바꿔
자동으로 돌리고
생일 넣고
동네 번지수 넣고
그 마음도 이해하지
근데 난 아니야
나는 그냥
그날 밤 꿈속에서 본 그 숫자에
조금 더 마음이 가
그게 뭐랄까
내가 바라고 있는 게 뭔지
내가 도망가고 싶은 게 뭔지
그 숫자들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거든
누가 그러더라
“그런 건 다 심리야”
그래 맞는 말이지
근데 심리면 어때
우리 사는 게 다 마음 가지고 사는 건데
어떤 유튜버가
로또 천 장을 사서 실험하더라
1등은 없었고
2등도 잘 안 나왔대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어
“재밌었어요 이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그 말이 좋더라
사람 일은 모른다
그러니까 해보는 거다
그게 게임이고
그게 기억이고
그게 사는 거지 뭐
나는 아직도
그 번호 적어서 산다
이번 주에도
아마 또 꽝일 거고
근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진짜 중요한 건
그 번호가
지금도 내 꿈속 어딘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그 느낌
그러니까 말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 번호를 기억해
그게 꼭 당첨되라는 의미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숫자들이
내 삶의 어떤 장면으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또 적는 거야
그 번호를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