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문이 열리고,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사자

by 마루

낡은 문이 열리고,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무더운 여름 햇살이 아스팔트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원주역 플랫폼에 서자, 어쩐지 오래된 기차 찐계란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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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 순간, 잊고 있던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검은 도포를 두르고 망자의 뒤를 묵묵히 따라오던 저승사자.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전설의 고향 속 모습이었다.

그 서늘한 기운은 두려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안겨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저승사자는 다르다.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그는 세련된 코트를 걸치고, 카페 한 모퉁이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손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들고, 죽은 자의 영혼을 차분히 기록한다.

K-컬처 속 저승사자는 무대 위에서 날카로운 춤선과 매혹적인 눈빛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두려움의 상징은 어느새 신비롭고 매력적인 존재로 변해 우리 곁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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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소반 위에 생쌀과 동전을 올려 망자의 길을 밝혀주던 풍습. 조상들의 마음은 현대의 저승사자 이미지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형식은 바뀌었으나, 망자의 여정을 위로하고 새로운 길을 응원하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손님, 기차 출발합니다.”


역무원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손끝에서 굴러가던 동전이 서로 부딪히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순간, 어쩌면 이 동전들이 옛날 이야기 속 망자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이 스쳐 갔다.

과거의 전설은 그렇게 현재의 내 곁에서 다시 말을 걸고 있었다.

낡은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그 사이로 또 다른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의

전설 속 저승사자는 여전히 변주되며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오래된 기억과 현대의 상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죽음조차도 한 편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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