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하나를 지켜내는 일
비 오는 날, 젖지 않은 서류 한 장 그리고 플랫폼의 맹점
요즘 자영업하는 지인이 하나 있다.
플랫폼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그날은 퀵서비스를 잠깐 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그가 내게 휴대폰을 툭 내밀며 말했다.
“야, 이것 좀 하나 써줄래?”
“이벤트인데, 뭐 미담 같은 거 써서 응모하면 기프트카드 준다더라.”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써주지 뭐.”
처음엔 그냥 그랬다.
어차피 본인이 쓰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말 풀 줄 아니까.
그런데 그 이벤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순간,
문득 이상한 괴리감이 밀려왔다.
이벤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감동적인 퀵기사를 추천해 주세요."
그 감동은, 실명이 있어야 하고,
차량번호도 적어야 하고,
전화번호도 입력해야 한다.
기억 속 장면은 생생하지만
정작 시스템은 **“그 장면은 믿지 않겠다”**는 듯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추천하라는 걸까.
누군지도 모른 채,
비 오는 날 서류 하나를 젖지 않게 건네주던 그 손길을?
플랫폼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누가 해도 같은 결과”**를 추구하는 구조다.
얼굴 없는 기사, 이름 모를 드라이버.
하지만 우리는 그 익명성 속에서도 차이를 기억한다.
누구는 5분 먼저 와주었고,
누구는 “서류 젖지 않게 싸놨어요”라며 한 마디 더 건넸다.
그건 데이터를 넘어서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벤트는,
그 감정을 차량번호와 핸드폰 번호로 환원하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시스템은 애초에 자기 미담밖에 쓸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남의 감동을 적어주세요”라고 하면서
남을 아는 방법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이벤트는 플랫폼의 감동을 수집하겠다고 하면서,
플랫폼이 가진 고립성과 침묵의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짜여진 기획이다.
좋은 기획이었고,
의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리듬을 몰랐다.
그날 비 오는 길 위에서
한 퀵기사가 젖지 않은 서류 하나를
두 손으로 꼭 쥐고 나에게 건넸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내 폰에는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분명히 남아 있다.
그건 플랫폼이 쌓은 신뢰였고,
그 사람이 완성한 서비스였다.
그걸 증명하는 데
굳이 실명과 차량번호가 필요할까?
아마 진짜 감동은,
그런 번호들 너머에서
조용히 서류 하나를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
플랫폼 시대의 감동은, 늘 역설적이다.
우리는 얼굴 없는 시스템 속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작은 친절을 기억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그 기억을 번호와 데이터로 환원하려 한다.
기억을 기록하라면서, 기억의 본질은 묻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서류 하나를 꼭 쥐어 건네던 그 퀵기사의 손.
나는 그 손을 기억한다.
하지만 시스템은 묻는다.
“그 사람, 차량번호는요?”
감동은 데이터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건 여전히,
조용히 서류 하나를 지켜내는 손끝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