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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밀랍 아래에 담긴 이야기

메이커스 마크, ‘불완전함의 미학’

by 마루


붉은 밀랍 아래에 담긴 이야기 — 메이커스 마크, ‘불완전함의 미학’


그날, 우연히 짧은 영상을 보았다.

화면 속에서 짙은 붉은 왁스가 녹아내리며 유리병을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

불길처럼, 피처럼, 혹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흘러내린 붓의 잔상처럼.

그건 바로 Maker’s Mark(메이커스 마크) — 세계에서 가장 ‘손맛이 살아있는’ 버번 위스키였다.


이 병은 ‘붉은 치마를 입은 위스키’라 불린다.

왜냐면 대부분의 술병이 밀랍을 깔끔히 찍어내는 반면,

메이커스 마크는 아예 병목을 뜨거운 왁스 속에 “푹” 담그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동작 하나에, 이 브랜드의 철학이 전부 담겨 있다.


손으로 담근 한 병의 위스키


켄터키의 증류소에서 메이커스 마크는 여전히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병을 밀랍에 담근다.

작업자는 병을 들어 올려 붉은 왁스에 천천히 담그고, 그 순간의 각도와 속도, 손끝의 미묘한 떨림에 따라 왁스의 모양이 결정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 똑같은 모양의 메이커스 마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아이디어는 창립자 빌 새뮤얼스의 아내, 마저리 새뮤얼스(Margie Samuels) 여사에게서 나왔다.

그녀는 말했다.


“완벽하게 똑같은 건 재미없잖아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녀의 말대로, 어떤 병은 왁스가 치맛자락처럼 흩날리며 흘러내리고,

어떤 병은 살짝만 찍혀 수줍게 고개를 숙인 듯하다.

때로는 투어 중에 관광객이 직접 왁스에 병을 담그며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병들은 “실수작”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리지널로 불린다.


공장의 리듬, 장인의 손끝


메이커스 마크의 작업장은 음악이 흐르듯 리드미컬하다.

직원들이 병을 왁스에 담그는 손동작이 일정한 템포로 반복되고,

붉은 왁스는 부드럽게 흐르며 병을 감싼다.

하루 수천 번, 같은 동작이지만 — 단 한 병도 똑같이 나오지 않는다.


이 불균일함은 단점이 아니라 브랜드의 개성이다.

그들은 균일함이 주는 편안함 대신, 손의 흔적이 남은 불완전함을 택했다.

그게 바로 ‘핸드메이드’의 진짜 가치다.


게다가 메이커스 마크는 일반 버번보다 밀(Wheat) 함량이 높다.

덕분에 맛이 부드럽고, 마신 뒤엔 매운 여운이 거의 남지 않는다.

거친 손맛의 외형 속에 숨겨진 이 부드러움 —

그 묘한 대비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다.


불완전함이 아름답다


가끔은 인생도 그렇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손끝이 떨려 왁스가 조금 더 흘러내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불균형 속에야말로 진짜 나가 담긴다.


어쩌면 완벽하게 일치하는 세상보다,

조금씩 다르고 삐뚤어진 모습이 더 인간답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메이커스 마크의 병들은 오늘도 붉은 왁스 속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중 가장 과하게 흘러내린 병을 들고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내 거야. 세상에 이 병은 단 하나뿐이거든.”


작가의 말


메이커스 마크는 단순한 위스키가 아니다.

그건 ‘사람의 손이 만든 시간’의 기록이다.

완벽하게 동일한 공산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 브랜드는 오히려 불완전함으로 완벽함을 증명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삐뚤어진 왁스 자국 하나에도, 인생의 온기가 묻어있다.”



“붉은 치맛자락이 흩날리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불완전한 완벽함.”

메이커스 마크의 붉은 밀랍이 증명하는, 손맛이 빚어낸 브랜드 이야기.



하이오렌지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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