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보이즈
전쟁, 자유, 그리고 종이 위의 혁명
글: 감자공주 / 기획 에세이
1. 교실에서 처음 마주한 이름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친구가 수줍게 책상 밑으로 건넨 것은 낡은 흑백 인쇄물이었습니다. 무언가 얼룩진 이미지와 알 수 없는 영문 로고. "이게 미국에서 들어온 거래. 진짜 여자야."
한참을 바라보다 알게 된 이름은 "Playboy". 그날 이후 나는, 단지 금기를 넘는 호기심이 아니라, 어떤 다른 세계의 문화와 가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서툰 질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미군 PX와 펜트하우스,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피어난 욕망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미국은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 '정신적 안식처'를 주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공급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Playboy와 Penthouse.
전선의 군인들은 이 잡지를 통해 고향을 떠난 외로움과 긴장을 풀었습니다. 이 잡지들은 단순한 성적 콘텐츠를 넘어, 미국식 자유, 유희, 여유의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미군 PX(군용매점)는 이러한 잡지의 주요 유통처였고, 일부 군인들은 이 잡지를 보며 자유 세계에 대한 동경을 키워갔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에로티시즘'이 아닌, 문화적 도피처이자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3. 플레이보이 vs 펜트하우스 — 같은 듯 다른 두 세계
Playboy (1953): 휴 헤프너에 의해 창간. 마릴린 먼로가 첫 표지 모델. 예술 사진, 장문의 인터뷰, 자유로운 섹슈얼리티, 진보적 정치 칼럼으로 미국 중산층 남성의 삶을 담아냄.
Penthouse (1965): 영국에서 시작, 미국 진출 후 Playboy보다 더 과감한 노출과 도발적인 사진 구성으로 돌풍. 사회 비판적 내용보다는 자극적인 콘텐츠 중심.
플레이보이는 '세련된 자유', 펜트하우스는 '본능적 욕망'. 두 잡지는 20세기 후반 미국 대중문화의 양극을 상징했습니다.
4. 그 시절, 모델들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에 등장한 모델들은 단지 누드모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자기 몸의 주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대표했습니다. 어떤 이는 스타가 되었고, 어떤 이는 낙인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인기는 엄청났고, 잡지 한 권에 실리는 것은 마치 영화 한 편을 찍는 것 이상의 무게였습니다. 특히 아시아계 모델의 등장은 정체성, 다양성, 인종적 전복의 흐름을 담아내며 문화적 충격이 되기도 했습니다.
5. 일본과 한국의 ‘잡지 문화’, 그리고 통제의 간극
일본: 성인 잡지가 편의점에 진열되던 사회.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용이 크고, 오히려 하위문화로서 ‘미학적 포지션’도 갖춤. 사진뿐 아니라 만화, 에세이, 아트북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
한국: 1990년대까지도 성인 매체는 지하 유통 혹은 불법 복사본 위주. 규제 강하고, 문화적 포용성 낮았음. 이승희 사례처럼 "한국계 모델의 미국 활동"조차 논란이 됨.
한국에서는 ‘플레이보이’는 금단의 콘텐츠였고, 동시에 인터넷 초창기 세대의 ‘문화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6. 현재의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는?
플레이보이는 2019년부터 인쇄판 중단 →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
펜트하우스는 2016년 인쇄판 중단 → 현재도 디지털 잡지로 존재.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브랜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다만 지금은 성인 콘텐츠라기보다는 라이프스타일·젠더·문화 잡지로 변모했습니다. 페미니즘, 다양성, 젠더 정체성에 대한 인터뷰도 실리는 새로운 흐름.
7. 마무리 — 종이 위의 자유에서, 픽셀 속의 정체성으로
이제 우리는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를 더 이상 ‘금지된 책’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열었던 문은 분명 존재합니다. 표현의 자유, 욕망의 정치학, 여성의 주체성, 문화의 글로벌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에는, 교실 책상 밑에서 건네받은 흑백 인쇄물 한 장이 있었습니다.
그 종이의 기억은 이제 픽셀 속에 남아, 또 다른 세대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